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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기독교인 나라에서 케밥은 그만!"

[월드리포트] "기독교인 나라에서 케밥은 그만!"
짜장이냐 짬뽕이냐? 우리가 중국 음식을 주문할 때 한 번쯤 생각하는 질문이다. 프랑스인들도 간단한 식사를 할 때 비슷한 고민을 한다. 햄버거냐 케밥이냐? 프랑스인들은 1년 동안 햄버거를 10억 7천만 개, 케밥을 3억 1천만 개 먹었다고 한다. 케밥은 1초에 10개씩 팔리는 셈이다. 패스트푸드 분야에서 햄버거가 여전히 강자이지만, 케밥이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이런 추세이니 햄버거와 케밥을 놓고 고민할 만 하다.
          
케밥은 쇠고기, 양고기 등을 양념해서 불에 구워 채소와 함께 먹는 음식이다. 중동, 중앙아시아, 지중해 지역에서 주로 먹는다. 케밥의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이 있다. 유목 민족인 몽골인들이 빠른 시간에 이동하기 위해 케밥을 만들어 먹었다는 설이 있다. 터키의 전신인 오스만 제국 군인들이 고기를 잘게 썰어 칼에 꽂아 재빨리 구워 먹고 전투를 했다는 주장도 있다. 그리스에서는 케밥과 유사한 꼬치구이인 수블라끼를 만들어 먹던 유적이 발굴되기도 했다.
          
유럽에서는 터키를 케밥의 원조로 보는 경향이 있다. 1971년 독일 베를린에서 한 터키 출신 이민자가 삼촌이 운영하는 식당에서 일하다, 케밥을 팔아야겠다는 아이디어를 냈다고 한다. 이것이 현대 유럽식 케밥의 기원이다. 유럽에서는 회전한다는 뜻인 되네르(döner) 케밥이 대세이다. 큰 꼬챙이에 고기를 수직으로 끼워 화덕 앞에서 회전시켜 굽고, 바깥 쪽부터 익혀 잘게 썰어 먹는 방식이다. 프랑스에는 케밥이 1990년대에 들어왔다고 한다. 20년쯤 지난 지금 프랑스는 유럽에서 독일 다음으로 케밥을 많이 먹는 나라가 됐다.
          
도네르 케밥
도네르 케밥
프랑스에서 잘 나가던 케밥이 논쟁거리가 됐다. 프랑스 남부 랑그독 지방의 베지에 시장이 ‘안티-케밥’을 선언했다. 로버트 메나르 시장은 도심 내 역사 유적을 보호하기 위해서 시의 승인 없이는 어떤 식당도 새로 열지 못한다고 밝혔다. 명분은 그럴 듯 했는데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속내를 드러냈다. 메나르 시장은 “우리 나라는 유대-기독교인의 나라인데 지금 이민자가 너무 많다”고 운을 뗀 뒤 “식당 분야에서도 케밥이 너무 많다”고 강조했다. “베지에 시에 케밥 식당이 20곳이라며, 앞으로는 더 열수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케밥은 터키 또는 중동 음식이고, 중동은 이슬람교를 믿으니 기독교 국가인 프랑스에서 허용해서는 안 된다는 논리다. 메나르 시장은 반 이민정책을 주장하는 극우정당 국민전선(FN)의 지원을 받고 있다.
          
시장의 발언이 알려지자 페이스북에는 내년 5월 베지에 시에서 ‘케밥 국제 축제’를 열자는 제안이 올라왔다. 중동 음악과 춤을 추며 채식주의 케밥 등 다양한 케밥을 즐기는 행사를 개최하자는 것이다. 벌써 3만명 넘게 관심을 보였다. 베지에 시청 앞에서 수십 명이 모여 케밥을 먹는 시위가 벌어지기도 했다. 샤를리 에브도 테러 때처럼 “나는 케밥”(Je suis Kebab)이라는 구호도 등장했다. 이에 질세라 시장은 트위터에 “베지에 시가 케밥의 수도가 되기를 원하지 않는다. 케밥 식당은 우리 문화와 무관하다”고 거듭 주장했다. 주요 언론사인 르몽드도 논란에 가세했다. 르몽드는 베지에 시에 등록된 식당 가운데 절대 다수가 프랑스식이라고 보도했다. 유럽과 미국 등 범 기독교 문화권 식당이 전체의 88%를 차지하고 있는데, 케밥 식당이 조금 늘었다고 금지할 필요가 있느냐는 취지였다.
          
케밥을 먹으면 이슬람화할 것이라는 메나르 시장의 주장은 엉뚱해 보인다. 한국인이 초밥을 먹으면 일본인이 될 수 있으니 일식당을 금지해야 한다는 논리와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메나르 시장이 케밥을 거론한 이유는 무엇일까? 프랑스는 다음 달 지방선거를 치른다. 극우정당인 국민전선은 “경제가 어려운데 이민자는 너무 많고, 그들에게 우리 세금을 쓸 수 없다”는 논리를 편다. “이민자를 본국으로 돌려보내자”라는 주장도 한다. 이민자가 많은 독일이 프랑스보다 더 잘 사니 불황의 근원이 이민자라는 주장은 근거가 빈약하다. 그런데도, 국민전선은 여론조사 1위를 기록하고 있다. 프랑스인들이 누군가에 화풀이를 하고 싶은데 국민전선이 가려운 곳을 긁어주고 있기 때문이다.
          
반 이민자 진영에서 케밥 금지는 새 프로파간다(propaganda) 수단이 될 수 있다. “보라! 늘어나는 케밥 식당. 이민자들, 특히 무슬림이 이 땅을 점령하고 있다”. 대부분 웃고 넘기겠지만, 일부에게는 “그럴 수도 있겠다.”라는 공포심을 자극한다. 정치에서 공포는 매우 효과적인 무기다. 국민전선이 케밥을 터부(taboo)하고 나선 이유다. 메나르 시장은 프랑스는 백인 기독교인의 나라라는 도그마(dogma)도 세우고 싶어한다. 어느 사회든 도그마와 터부가 판을 치면, 그 사회는 갈수록 야만화하고 갈등은 증폭되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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