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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장애인들은 왜 과격하냐고요?

[취재파일] 장애인들은 왜 과격하냐고요?
10월 26일 오전 7시, 시청역 앞 8601번 버스 정류장 앞에 전동휠체어 부대가 등장했다. 8601번은 얼마 전 도입하여 시범운행하고 있는 김포~서울을 오가는 2층 광역버스이다. 일반 버스보다 2배 정도 많은 70여 석 규모여서 출퇴근 시간에 더 많은 승객을 태우기 위해 도입하였다. 경기도는 김포시 뿐 아니라 남양주시 등에 서울을 오가는 5개 노선에 2층 버스 9대를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내년 상반기까지는 10대를 더 들여오겠다는 계획이다.

이른 시간부터 14명이 넘는 장애인이 모인 건 경기도가 야심차게 운행을 시작한 8601번 버스를 타기 위해서이다. 2층 광역버스에는 장애인석이 있다. 그렇다고 14명이 다 탈 수 있는 건 아니다. 장애인석은 단 1석 뿐이기에, 단 1명만 탈 수 있다. 그런데 왜 14명이 모였을까?

현재 8601번 2층 버스는 단 1대가 시범운행 중이다. 이들은 오전 7시부터 모였지만, 실제 2층 버스는 8시가 다 되어 도착하였다. 드디어 2층 버스가 도착하였다. 정류장에 줄을 선 장애인 승객을 보고 기사는 새삼 놀란 눈치이다. 일단 타고 온 승객을 정류장에 내려주고, 장애인 승객을 태우기 위해 버스를 앞뒤로 움직인다. 2층 버스에는 뒷문 쪽에 휠체어가 올라올 수 있도록 만든 수동식 경사로가 있는데, 이걸 인도에 내리려면 차도와 보도의 폭을 잘 맞춰야 하기 때문이다. 경사로를 내리는 일이 쉽지가 않다. 버스 기사는 차를 앞뒤로 5~6번 움직인 뒤에 간신히 간격을 맞추었다. 적당하다 싶자, 기사는 차를 세우고 뒷문에 와서 경사로를 내린다. 경사로가 내려오자마자, 장애인들이 버스로 달려든다.
장애인석에 전동휠체어를 탄 장애인 1명이 얼른 올라탔고, 더 이상 들어갈 수가 없는데도 휠체어 2대가 더 들어오려 한다. 미처 들어오지 못하고 경사로에 비스듬히 서 버렸다. 다른 장애인들은 잽싸게 버스를 에워싸 버렸다. 휠체어에 타고 있던 서너 명의 장애인들은 주변의 도움을 받아 버스 밑으로 들어가 누웠다. 진영을 갖춘 뒤 이들은 외쳤다.

"장애인의 이동권을 보장하라!"
2층 버스 탑승 시도는 플래시몹처럼 이뤄진 장애인 단체의 이동권 보장 촉구 집회였다. 비장애인을 위해서는 2층 버스를 도입해 한 명이라도 불편을 줄이겠다고 하면서, 장애인을 위한 이동권에 대한 고려는 전혀 없다는 것이었다. 버스에 장애인석 1개 정도 마련해 주었으면 되는 게 아니냐, 언제 탈 지 모르는 장애인석을 추가로 만들어 이용 횟수가 훨씬 많은 비장애인이 불편을 초래할 수도 있는 것 아니냐는 의문이 나올 수도 있다. 장애인들은 이런 인식이 바로 장애인에 대한 차별에서 나온다고 말한다.

만약 장애인 2명이 등교 또는 출근을 해야 해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면, 1명은 먼저 버스를 탈 수 있지만, 나머지 1명은 장애인석이 있는 다음 버스를 타기 위해 1~2시간을 기다려야만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장애인석이 마련된 광역버스는 없다. 경기도나 인천에 집이 있는 장애인들은 코 앞에 광역버스 정류장이 있어도, 탈 수가 없다. 비장애인들은 서울까지 가는 광역버스를 타면 1시간이면 충분하지만, 장애인들은 지하철과 저상버스를 번갈아 타고 가야해 2~3배가 넘는 시간이 더 걸린다.

 그렇다면 지자체가 버스 도입 전에 장애인 단체와 논의를 했으면 되지 않는가라는 의문이 들었다. 장애인 단체 관계자는 한숨을 쉬며 말한다. "이미 의견을 다 전달했어요." 하지만, 반영이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장애인 단체 의견 청취를 통해 나온 건 장애인석 1석 설치 뿐이라는 것이다. 장애인석이라고는 달랑 1석 있기는 하지만, 그것도 전동휠체어 정도 탑승이 가능하다. 길이가 긴 전동스쿠터는 탑승하기가 어렵다. 장애인이 어떤 보장구를 이용하는지에 대한 검토가 없었다는 얘기이다. 

장애인들이 오죽 답답했으면 '기습 시위'를 벌였을까 싶다. 하지만, 버스 기사와 탑승객, 도로를 오가는 출퇴근 차량 운전자들도 답답한 모습이었다. 가뜩이나 바쁜 시간, 버스 운행은 막혔고, 도로 또한 막혔기 때문이다. 오도가도 못하게 된 출퇴근길 시민들은 발을 동동 굴렀다. "도청에 찾아가서 담당자들이랑 논의하면 되지 않나요?" "장애인들은 왜 과격한 건가요?" 시민들은 묻는다.

갑자기 뚝 떨어진 기온에 바람까지 불어 체감온도가 굉장히 낮은데도 시위는 2시간 이상 이어졌다. 무엇보다 버스 아래에 누워서 시위하는 장애인들이 걱정이 되었다.

"왜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건가요?"
"이렇게 하지 않으면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아요."

그들이 과격해질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담당자와 이야기를 하면 그게 끝이다. 언론에 알리려고 해도, 다수의 문제가 아니기에 귀 기울여주지 않는다.  지나가는 사람들을 붙잡고 이야기를 해봐도, "그러게 집에나 있으라"는 말이나 듣지 않으면 다행이다. 그나마 도로에 드러눕고, 차도를 점거하고, 경찰에 끌려나가고 해야 "어... 왜 그러지?" 관심을 가져 준다는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지금의 이동권을 얻어낼 수 있다고 한다. 

내 문제가 아니면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사회, 당사장의 의견을 형식상으로 듣는 정부와 지자체, 생생한 화면이나 '클릭 수'나 '시청률 숫자'로 이어질 것 같지 않은 내용에는 무심한 언론, 다같이 장애인 단체가 '과격 단체'가 되도록 내몰고 있는 건 아닐까. 굳이 몸을 도로에 내던지는 시위를 하지 않고서라도, 장애인들이 마음껏 도로를 오갈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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