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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뉴스] '해고가 제일 쉬웠어요'



취직하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무엇일까요? 계약서를 쓰는 일입니다.

고용인과 피고용인이 노동 조건에 합의하고 이를 명시적으로 남겨놓는 겁니다.

그런데 보통 한 번 쓰는 계약서를 84번이나 쓴 사람이 있습니다.

롯데호텔에서 일용직 아르바이트로 일한 대학생 김 모 씨입니다.

김 씨가 쓴 계약서 장수는 김 씨가 롯데호텔 뷔페식당에서 주방보조로 일한 날수와 똑같습니다. 

김 씨가 일한 날이 불규칙했던 걸까요? 아닙니다. 

김 씨는 2013년 말부터 다음 해 3월까지 매일 9-10시간 정도를 그곳에서 일했습니다.

[김 씨 / 한수진 전망대 인터뷰 중 : 처음엔 뽑아서 쉽게 쓰다가 언제든지 탄력적으로 인력 운영을 하려면 필요에 따라서 쉽게 해고를 해야 하니까, 그런 의도가 깔려있다고 생각한다.]

매일 계약을 새로 맺는다는 것은 매일 계약이 끝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다음 날 계약을 맺지 않으면 기업이 번거롭게 해고처리를 하지 않아도 되는 겁니다.

실제로 롯데호텔 인사과는 김 씨가 취업규칙 열람을 요구하자 다음 날 '더 이상 나오지 않아도 된다'고 전화로 통보했습니다.

롯데호텔이 중앙노동위원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김 씨처럼 매일 계약서를 쓴 노동자가 연간 900명에 이릅니다.

이뿐만 아닙니다.

지난 7월, 1년 이상 롯데호텔에서 일한 또 다른 김 모 씨(26)도 갑자기 해고 통보를 받았습니다.

일용직 근로자라도 주당 15시간씩 1년 이상을 일한 경우 퇴직금을 받을 권리가 있기에, 김 씨는 호텔 측에 퇴직금을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그런데 호텔 측에서는 서류 한 장을 내밀었습니다.

향후 어떠한 이의제기나 부당해고 구제신청 등을 하지 않는다고 적힌 합의서였습니다.

당연히 지급해야 할 퇴직금을 주면서 이의 제기를 하지 않는다는 조건을 덧붙인 겁니다.

이런 서약서를 쓴 사람도 확인된 사람만 13명에 이릅니다.

[김 모 씨/전 롯데호텔 일용직 노동자 : 화가 났죠. 서명하기는 싫었지만 이걸 해야 퇴직금을 준다고 하니까 서명할 수밖에 없었죠.]

논란이 일자 롯데호텔 측은 합의서 작성이 관행이었다고 해명하고 앞으론 합의서 대신 퇴직금 수령 확인서를 받겠다고 밝혔습니다.

앞서 84번의 계약서를 썼던 김 씨가 중앙노동위원회에서 부당해고 판정을 받은 후 롯데호텔 인사과장은 그에게 합의를 제안했습니다.

소를 취하하고 언론에 알리지 않는 대가로 3천만 원을 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김 씨는 돈을 거절하고 행정소송을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계약서로, 다음엔 합의서로, 마지막엔 돈으로... 

노동자의 입을 막고 구렁이처럼 넘어가려는 뻔뻔한 태도.

무엇이 잘못됐는지 고민조차 하지 않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은 아닐까요?

기획/구성: 맥스, 김민영 그래픽: 이윤주
 

(SBS 뉴미디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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