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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하반신 없는 '농구공 소녀'의 도전기

[월드리포트] 하반신 없는 '농구공 소녀'의 도전기
14억에 육박하는 중국에 과연 몸이 불편한 장애인들이 얼마나 될까요? 세계 최대 인구 대국이니 만큼 아마도 장애인 인구 역시 세계 1위일 겁니다. 지금껏 중국에서 이뤄진 장애인 인구 조사는 1987년과 2006년 이렇게 단 두 차례였습니다. 2006년 조사 당시 통계에 따르면 전체 중국 인구의 6.43%에 달하는 8천297만 명이 각종 장애를 안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남북한의 인구를 합친 수보다 훨씬 많습니다.

하지만 제가 살고 있는 베이징시를 포함해 어디를 다녀 봐도 장애인들을 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만큼 이들에 대한 사회적 배려나 복지가 아직은 바람직한 수준에 와 있지 못하기 때문에 겁니다. 여전히 지하철이며 버스며 교통수단엔 장애인들을 위한 시설이 부족하고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장소에도 이들을 위한 휴식 공간은 찾기 어렵습니다.

장애인을 뜻하는 중국어는 ‘殘廢人(찬페이런)’ 혹은 ‘殘疾人(찬지런)’입니다. ‘廢人(폐인)’은 중국 고대부터 역모자 출신의 노비나 거지 등 사회적으로 천한 신분의 사람을 뜻하는 말이었기에 신 중국이 들어선 이후 그나마 순화해 ‘疾人(질인)’ 질병 앓는 사람이란 의미로 장애인들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분명히 중국이란 나라을 이루는 중요한 일원들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투명인간처럼, 아니 감추고 싶은 치부인양 많은 장애인들은 그렇게 사람들 눈 뒤에 숨어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런 중국 장애인들에게 롤 모델로 여겨지는 한 소녀가 있습니다. 올해 나이 19살인 첸훙옌(錢紅艶)이 그 주인공입니다. 중국 남부 고원지대인 윈난성의 한 시골 마을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난 그녀는 금세기가 막 시작된 지난 2000년, 겨우 네 살의 나이에 끔찍한 사고를 당합니다. 육중한 자동차 밑에 두 다리가 깔리면서 골반 아래쪽을 완전히 절단한 어린 여자 아이는 하반신 없이 이후의 삶을 살아가야 할 운명을 맞았습니다.
가정 형편 탓에 의족도 못해 준 가엾은 손녀에게 할아버지는 어느 날 농구공을 잘라 만든 임시 의족으로 허리 아래를 고정시켜줬습니다. 목발에서 잘라 만든 고무 지지대를 손으로 지탱해 가며 균형을 잡는 일은 너무도 힘겨웠습니다. 둥근 농구공을 두 다리 삼아 지내게 되면서 몸의 균형감각은 누구보다 탁월하게 훈련됐고 자신에게 닥친 불행에 맞서 견고하게 버티어내는 내면의 힘도 차츰 길러지게 됐습니다.

2005년 딱한 사연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그녀는 '농구공 소녀'란 별명을 얻게 됐습니다. 특히 취재 차 찾아 온 기자들 앞에서 묘기를 보여주겠다며 물구나무서기를 해보이며 환하게 웃는 그녀의 천진한 미소가 전파를 타면서 많은 시청자들이 안타까움과 함께 응원을 보내줬습니다. "의족을 해 주겠다", "병원 치료비를 도와 주겠다" 이런저런 후원자들이 나서기도했지만 세상의 관심은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또래 아이들이 하나 둘 학교에 입학해 공부를 시작했지만 선뜻 '농구공 소녀'를 받아 주는 학교는 없었습니다. 한 해, 두 해 지나도 집 주변에서만 맴돌 수 밖에 없던 그녀가 성인이 된 들 세상 어디에서도 일자리를 구하는 건 불가능해 보였습니다. 막막한 앞날에 대한 두려움과 걱정이 쌓여가면서 그렇게 밝고 낙천적이던 그녀의 얼굴에도 시름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갔습니다.

그러던 차에 그녀에게 은인이 나타났습니다. 2007년 윈난성 장애인협회의 지원으로 중국에서 처음으로 장애인 수영팀을 만든 한 코치가 그녀를 찾아와 수영을 해보자고 권했던 겁니다. 새로운 삶의 목표를 선사 받은 그녀는 그날로 이 팀의 창설 멤버가 됩니다. 하지만 수영선수의 길은 험난한 가시밭길 그 자체였습니다. 상반신뿐인 몸으로는 물에 떠 있기 조차 어려웠습니다. 피나는 연습에도 불구하고 방향감이나 속도, 어느 것 하나 나아지는 게 없었습니다. 그야말로 좌절의 연속이었습니다.
하지만 출구 없어 보이는 절망의 상황에서 발상의 전환이 이뤄졌습니다. 몸이 작은 만큼 부력에 유리하고 물과의 접촉면이 작으니 그만큼 속도내기도 수월하다는 코치의 격려는 결국 의기소침해 있던 소녀를 춤추게 했습니다. 자신감을 얻은 그녀는 성과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이듬해 윈난성 장애인경기대회에서 3관왕에 오르더니 2009년 18세 이하 전국장애인수영선수권대회에서는 금메달 1개와 은메달 2개를 따냈습니다. 여세를 몰아 2011년 전국장애인경기대회에서는 여자 평영 100m에서 동메달을 따내며 3위를 차지했습니다. 장애인 올림픽 예선전 출전 자격도 받았습니다.

희망의 빛, 그 한가운데 서있던 그녀에게 다시금 시련이 찾아왔습니다. 그녀를 누구보다 아꼈고 그녀에게 새로운 생명이나 다름없는 농구공 다리를 만들어줬던 할아버지가 갑작스레 세상을 떠난 겁니다. 충격과 실의에 빠진 그녀는 혼신을 기울여 준비해 온 올림픽 예선전에서 탈락하고 말았습니다. 낙담한 그녀는 고향 집으로 내려가 은둔생활로 들어갔습니다.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며 자신이 정말 원하는 건 메달이나 유명세가 아니라 자신이 장애에 굴하지 않고 그 누구보다 인생을 즐기며 활기차게 사는 법을 깨우치는 것임을 느끼게 됐습니다. 그것이 자기를 전적으로 믿어주고 사랑해 준 할아버지의 간절한 소망이었다는 것도 깨달았습니다.
다시 용기를 얻은 소녀는 수영장으로 돌아와 전보다 더 많은 땀을 흘렸고 재기 무대였던 지난해 윈난성 장애인 수영대회 100m 평형에서 우승했습니다. 한때 어깨를 짓누르든 성적 부담에서도 어느 정도는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그의 현재 팔 길이를 바탕으로 측정한 164센티미터 신장에 맞춰 제작한 최신 의족까지 갖춘 그녀는 이제 새로운 꿈을 꾸고 있습니다. 내년 저 멀리 브라질에서 열리는 리우 올림픽에 참가해 '영웅'이 아닌 '벗'으로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수많은 중국 장애인들에게 보여주는 일입니다.

지난 1990년 '장애인보장법'을 제정하며 그들에 대한 복지 정책에 눈을 뜬 중국은 1994년 '장애인교육조례'와 2007년에 '장애인취업조례'를 차례로 시행하면서 적어도 시스템적으로는 기본적인 틀을 갖춰 놓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평등, 참여, 공생이라는 개념에서 그들을 바라보기보다는 시혜적인 차원에서 접근하고 있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장애인 가구의 월평균 소득은 전체 평균의 절반에 못 미치고 노동 가능 연령대 장애인들의 실업률은 전체 평균의 3배나 높습니다. 위태로운 공 위에 몸을 기탁한 채 수없이 고꾸라지면서도 세상이라는 벽에 당당히 맞서 온 그녀의 도전기는 오늘날 중국사회에, 그리고 세상에 과연 무엇을 웅변하고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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