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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부활 꿈꾸는 '냉동인간'…축복인가 저주인가?

[월드리포트] 부활 꿈꾸는 '냉동인간'…축복인가 저주인가?
불멸의 영생을 꿈꾸는 인간의 본능은 예나 지금이나 다름이 없을 겁니다. 천하를 통일한 뒤 불로장생까지 얻기 위해 불로초를 찾아 멀리 한반도까지 사람을 보냈던 중국 진나라의 시황제가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시 황제는 사후에도 부활과 영생을 꿈꾸며 영원히 자신을 보필할 수천의 병마용을 자신의 황릉에 넣어두기까지 했습니다. 이집트 룩소르 피라미드에서 발견되는 석관 속 미라들도 영원히 살고자 했던 왕들의 몸부림입니다. 그냥 막연한 바람이 아니라 다시 깨어날 그 때를 대비해 미라가 누워있는 자리에서 밖으로 빠져나갈 비밀통로까지 만들어 두었습니다.

부활을 꿈꾸는 미라의 현대판인 '냉동 인간'이 요즘 중국에서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중국에서 꽤나 이름이 알려진 충칭의 60대 여류 작가 두훙(杜虹)이 대륙에서는 처음으로 인체냉동수술을 받았습니다. 지난 5월 30일 5시 40분 두훙이 췌장암으로 숨을 거두자 옆방에서 대기하고 있던 미국인 외과의사 2명은 바빠졌습니다.
즉시 그녀의 체내에 응고방지제와 항균약 등을 투입해 혈액이 응고되는 것을 막는 한편 특수제작 장치로 심장에 압박을 가해 혈액순환이 계속되도록 조치를 취했습니다. 인체 냉동 수술의 핵심은 혈액 대용인 관류액의 투여입니다. 세포 속 수분이 응고돼 결정상태가 되면 세포를 파괴할 수 있기 때문에 관류액의 빙점을 낮추는 것이 중요합니다.

인체 냉동 처리가 끝나자 의료진은 두훙의 신체를 드라이아이스로 영하 40도 상태가 유지된 얼음관에 넣어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알코어(Alcor) 생명연장재단으로 이송했습니다. 알코어 재단은 앞으로 50년 동안 영하 196도로 설계된 특수 용기에 두훙의 냉동된 머리를 보관할 예정입니다. 2065년 재단은 당시 과학기술을 이용해 두훙의 뇌를 해동해 신체와 결합시켜 부활을 시도한다는 계획입니다.
중국 1호 인체 냉동 피실험자가 된 두훙의 인체 냉동은 췌장암 말기 시한부 판정을 받은 엄마에게 딸이 제안하면서 이뤄졌습니다. 인터넷에서 태국인 부부가 종양에 걸린 딸을 미국알코어 재단에 보내 냉동했다는 기사를 봤던 겁니다.

전신 냉동을 할 경우 약 200만 위안, 우리 돈으로 약 3억 6천만 원, 머리만 냉동할 경우 75만 위안, 약 1억 4천만 원의 비용이 든다는 얘기를 듣고 두훙씨 가족은 신체 전부가 아닌 머리만 냉동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알코어 재단은 베이징에서 곧 중국 내 두 번째 인체 냉동 수술이 있을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죽은 사람을 냉동 보존하다가 소생시킬 불멸의 의술이 개발된 뒤 해동시켜 되살려 낸다는 '인체냉동보존술(Cryonics)'의 개념을 처음 창안한 건 로버트 에팅거(Robert Ettinger) 박사입니다. 에팅거 박사가 이른바 '냉동인간'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2차 대전 이후부터 입니다.

연합군으로 참전해 벨기에 아르덴 숲 지역에서 독일군과 전투 중 중상을 입은 에팅거는 다리를 절단해야 할 절망적인 상황에 처했습니다. 하지만 천만다행으로 뼈 이식 수술로 다리를 보존하는 데 성공한 에팅거는 앞으로 의술이 발달하면 신체 일부뿐 아니라 생명을 영구보존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공상과학소설' 같은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각고의 노력 끝에 1964년 펴낸 책 '냉동인간(The Prospect of Immortality)'에서 에팅거는 "미래 의학이 냉동 보존한 시신을 해동시켜 질병으로 손상되거나 냉동으로 기능이 멈춘 장기를 고칠 수 있을 것"으로 예측하면서 '인체냉동보존술' 개념을 제시해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다소 황당해 보이는 이런 생각을 실행에 옮겨 1976년에는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과 함께 디트로이트에 냉동보존연구소(Cryonics Institute)를 세웠습니다.
회원제로 운영되는 이 연구소에는 현재 미래의 고객인 회원이 2천 여 명 가입해 있으며 이 연구소 냉동실에는 200구 가까운 시신과 애완동물 등 짐승도 70마리 넘게 냉동보관 중입니다. 냉동 탱크 속에서 회생을 갈망하는 시신들 중에는 1977년 사망한 에팅거 박사의 어머니와 먼저 사별한 두 부인도 포함돼 있습니다.

에팅거 박사가 직접 냉동 처리를 맡았습니다. 에팅거 박사 그 자신도 지난 2011년 7월 디트로이트 인근 자택에서 노환으로 아흔 둘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며 알코어 재단의 106번째 고객이 됐습니다. 미국과 러시아를 포함해 전 세계에는 300구 가까운 인체냉동신체가 보관돼 있습니다.

메이저리그 마지막 4할대 타자였던 테드 윌리엄스도 그 중 한 명입니다. 인체냉동기술 회사도 여러 곳이 조용히, 그러나 꽤나 성업중입니다. 부활에 대한 이들의 갈망에도 불구하고 미시간 주는 연구소를 '묘지'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그게 '냉동 인간'에 대한 일반인들의 회의적인 인식인 셈입니다.
그렇다면 정말 '냉동인간'의 부활은 가능한 일일까요?

매우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하지만 이론적으로는 가능합니다. 일단 시신을 얼음통에 넣은 뒤 심폐소생기로 호흡과 혈액 순환 기능을 복구해 산소 부족으로 뇌가 손상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그런 다음 피를 뽑고 정맥주사를 놓아 세포의 부패를 최대한 지연시켜 냉동캡슐이 있는 곳으로 서둘러 보냅니다. 냉동캡슐이 있는 보조시설에서는 시신의 가슴을 절개하고 늑골을 분리하며 혈액을 모두 제거한 뒤 기관의 손상을 막는 특수 액체를 넣습니다.

물론 특수 액체라고 해서 냉동 과정에서 세포가 손상되는 것을 완벽하게 막을 수는 없습니다. 온도가 급속히 떨어지면 물이 얼음으로 바뀌면서 부피가 10%가량 증가해 세포 구조를 파괴하는 '결빙 현상' 때문인데, '나노 기술'이 세포 소생을 도울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습니다.

미세한 기계가 해동 중인 인체 내에 투입되어 수조 개에 이르는 세포들을 하나하나 복구한 다음 환자를 소생시키도록 하겠다는 것입니다. 수십 나노미터(nm) 크기의 로봇팔들이 세포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골라내기와 붙이기를 무수히 반복한다면 가능하긴 합니다.

역으로 말하면 이런 수준의 '나노 기술'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냉동 인간이 소생하는 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얘기도 됩니다.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은 100억 개 이상의 신경세포로 가득 차 있는 뇌입니다. 뇌의 기능, 특히 기억력을 다시 살려내는 일이 가장 풀기 어려운 숙제입니다.

아직 사람에게 해동 기술이 적용되지는 못했지만 이미 쥐를 동면시켰다가 부작용 없이 깨어나게 하는 실험이 성공리에 이뤄졌다는 얘기도 들립니다. 미국 시애틀의 워싱턴대학과 프레드 허친슨 암연구센터 연구팀은 쥐를 '황화수소'(H2S) 80ppm이 주입된 공간에 넣고 인공 동면상태로 만들었다 다시 깨어나도록 했습니다.

국내 과학자들의 연구도 활발합니다. 극지연구소라는 곳에서는 극한의 추위에서 생존하는 극지 생물들이 얼어죽지 않고 살아가는 것에 주목해 극지 생물들이 '결빙방지 물질' 또는 '부동 단백질'이라고 부르는 천연동사방지 물질을 지녔음을 밝혀냈습니다.

이 물질과 그 메커니즘을 활용해 작은 생물이나 장기 등을 냉동보관할 수 있다면 냉동 인간의 해법도 찾을 수 있다고 연구진은 전망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냉동인간'이 허황된 얘기만은 아니라는 분위기 속에 얼마 전에는 급기야 '냉동인간' 부활을 놓고 거짓말 논쟁이 불거지기까지 했습니다.

플랭클린 원정대의 일원으로 1845년 북극지방을 탐험하던 중 사망한 탐험가 존 토링톤 관련 소문입니다. 1983년 북극에서 과학자들에 의해 발견된 존 토링톤의 시신은 완벽에 가까운 상태로 보존돼 있어 냉동 인간 연구에 큰 도움을 줄 것으로 예상됐습니다.

당시 과학자들은 피부조직 샘플만을 체취한 뒤 시신을 그 자리에 다시 매장했습니다. 하지만 1998년 냉동 인간을 연구하는 독일의 리히터 박사팀이 비밀리에 시신을 꺼내 연구를 계속했고, 최근에는 존 토링톤의 시신이 부활했다는 소문까지 흘러나온 것입니다.

리히터 박사팀은 존 토링톤이 다시 살아나 숨을 쉬며 주변을 의식할 정도로 건강이 회복됐다고 주장했지만 어쩐 일인지 부활한 모습은 공개하지 않고 있어 진실 여부에 대한 의혹이 커져만 가고 있습니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과학이 쉼없이 발전한다면 '냉동인간'이 가능할지 모릅니다. 그 날이 오면 시간을 이동하는 '타임머신'도 필요 없을 겁니다. 아마 그때가 되면 천안문 광장에 누워있는 마오쩌둥의 미라처럼 수많은 중국인들이 부활을 꿈꾸며 냉동실로 행하는 날이 올지도 모를 일입니다.
하지만 이 대목에서 하나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냉동인간'의 부활이 가능해진 세상이라고 과연 행복하기만 할까요? 우선, 윤리성의 문제입니다. 정말 냉동인간 부활이 가능하다면 인체의 장기를 사고 파는 일이 성행할 것이고 사람을 죽이는 일에 대한 죄책감이나 징벌조차 완화될 수 밖에 없어 인간의 존엄성이 도전 받게 될 것이 뻔합니다.

더구나 인류에게 유익하지 못한 인물들이 사라지지 않고 거듭 살아나 영원한 악인으로 인류를 위협하는 일도 피할 수 없게 될 수 있습니다. 어쩌면 죽은 사람의 부활 여부를 결정하는 자가 미래에 가장 강력한 권력자가 될 지도 모릅니다. 불행히도 그런 권력이 악인의 손에 넘어간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인간이 설령 죽지 않는 영생을 얻는다고 해도 만일 그 세상이 인간성이 말살된 지옥과 같은 곳이라면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하고 깨어남을 거듭해야하는 '좀비'같은 존재가 되어 그리스신화 속 시지프스처럼 영원한 형벌을 받아야 할지도 모릅니다. 불초로를 찾아 세상 천지를 헤맨 진시황의 부하들이 결국 빈손으로 돌아간 것도 다 인간 세계의 순리를 지켜내기 위한 필연적 귀결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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