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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죽은 사람의 얼굴이 말하려는 것은…25살 청년의 억울한 죽음

[취재파일] 죽은 사람의 얼굴이 말하려는 것은…25살 청년의 억울한 죽음
지난 밤 악몽을 꾸느라 자다 깨다를 반복했다. 끝내 약속도 취소한 채 휴일 하루 온종일 집에 있었다. 악몽 속 나는 죽은 사람의 얼굴을 보았다. 며칠 전 취재 과정에서 사진으로 본 25살 청년이었다. 청년의 얼굴은 반복해서 등장했고, 그때마다 꿈은 뚝뚝 끊겼다. 잠에서 깨어났기 때문이다. 땀이 식어 새벽 찬 공기엔 많이 추웠다.

사건팀 기자를 하면서 몇 차례 시신을 보았다. 죽은 사람의 얼굴은 대개 잠든 사람의 그것과 다를 게 없다. 지금 당장 내 곁에 누워 자고 있는 사람의 얼굴을 들여다보면, 죽음 뒤 그의 얼굴을 미리 볼 수 있다. 평온하고 평범한 모습, 그런데, 이번에 만난 죽음의 표정은 달랐다.

눈썹 짙은 청년의 얼굴은 심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굳게 입을 다물었는데, 고통과 괴로움이 전해졌다. 국과수 부검감정서에 실린 사진이었다. 휘리릭 종잇장을 넘기다 그 사진이 나왔을 때, 내 옆엔 청년의 어머니가 앉아 계셔 당황스러움을 내색할 수 없었다. 어머니는 더 이상 그런 사진을 보고 동요하지 않았다.

아들이 떠난 지 1년이 채 안되었다. 감정서 여기저기엔 볼펜으로 그은 밑줄과 물음표가 보였다. 어려운 의학용어를 풀어 설명하고,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곁에 깨알같이 적어두었다. 글씨를 빽빽이 써넣어 흰 공간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이해되지 않는 죽음을 이해하려 노력한 흔적이었다.

두부 전체에 두피하출혈이 형성되어 있는 소견을 봄.
이마의 우측 부위에서 발생 후 시간이 경과한 피하출혈 소견을 보고…
늑골 아래에서 비교적 신선한(=최근임을 의미) 피하출혈을 보며,
늑골은 가골(골절되었다가 붙은 뼈)이 형성된 부위가 다시 골절된…


아들은 정신지체 3급 장애인이었다. 장애인복지법에 따르면, 3급 정신지체는 지능지수 50 이상 70 이하에 해당한다. 교육을 통해 어느 정도의 사회 직업적 재활이 가능한 수준이다. 실제로 근처 일반고를 졸업했을 정도로 비장애인과 지내는데 무리 없었다. 숨지기 얼마 전까지 헬스 트레이닝에 푹 빠져 있었는데, 생전 사진 속엔 건장한 근육질의 청년이 활짝 웃고 있었다. 당시 몸무게가 78kg이었다고 한다.

아들에겐 장애가 하나 더 있었다. ‘틱장애’였다. 불규칙적으로 몸을 빠르게 움직이거나 찡그리는 표정을 짓는 증상이다. 그 때문에 오랜 기간 약을 복용해 왔는데, 성인이 되고 나서부터 피운 담배 때문에 약의 효과가 크게 떨어져 어머니의 고민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근본적으로 틱장애를 치료하는 것과 동시에 건강을 위해선 시급히 담배를 끊어야 했다. 대학병원에 입원 치료를 알아본 것도 그 때문이었다.

입원 수속을 마친 날 오후, 몇 달 전부터 다니고 있던 동네 태권도장 관장에게서 다른 용건으로 전화가 왔다. 아들이 곧 입원치료를 시작한다고 말했더니 관장은 한사코 말리며 체육관에서 하는 합숙 훈련을 제안했다. 정신지체 장애인이 틱장애로 입원 치료까지 받았다는 소문이 나면 좋을 게 없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관장은 장애인 태권도 지도자 자격증을 소지하고 있었다.

아들이 그렇게 합숙 훈련에 들어간 이후, 어머니는 자전거를 타고 하루 두 번 아들과 도장 사람들이 나눠 먹을 따뜻한 밥과 반찬을 만들어 실어 날랐다. 도장은 아파트 단지를 가로 지르면 나타나는 건물 4층에 있었다. 관장은 아들이 어머니에게 의존하는 경향이 강하다며, 당분간 만나지 않는 편이 좋겠다고 말했다. 홀로 25년을 키워온 외아들이었다. 음식은 늘 관장과 사범들의 손에 전해졌다. 가끔 아들이 건물 창문 밖으로 몸을 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어머니를 배웅했다. 합숙기간 동안 한 번도 아들과 만날 수 없었다.

그리고 지난해 10월 28일, 합숙을 시작한 지 2달이 지나, 아들은 시신이 되어 돌아왔다. 부검 결과 갈비뼈 7대가 부러지고, 머리엔 피가 고여 있었다. 피부가 괴사하고, 욕창이 생겨 있었다. 몸 곳곳의 뼈가 부러졌다가 시간이 지나 저절로 붙은 흔적이 확인됐다. 몸무게는 56kg, 합숙을 시작하기 전보다 20kg이 줄어 있었다. 아들은 합숙 내내 심각한 폭행에 시달리고 있었다. 관장은 재판에서 훈육의 일환이었다고 진술했다. 

아들은 골방에서 시름시름 앓았지만, 사범들은 세미나 참석을 위해 잠시 외국에 나가있던 관장에게 ‘저러다 곧 죽을 것 같다’는 내용의 메시지를 보내기만 했을 뿐이었다. 아무도 죽어가는 아들을 병원에 데리고 갈 생각하지 않았다. 숨지기 전날, 신음 소리는 유독 크고 길게 흘러나왔다. 통화에 방해된다며 사범은 아들이 누워있던 방문을 굳게 닫았다. 닫힌 방문 너머에서 아들은 말 그대로 '홀로' 죽었다. 
각목과 나무봉 등으로 피해자의 온몸을 지속적으로 때려 피해자에게 머리, 가슴, 배, 허리, 엉덩이, 팔, 다리 등의 피하출혈, 다발성 늑골 골절, 우폐 손상, 엉덩이, 다리 등의 피하조직 괴사 및 피하조직 좌멸, 폐혈창 등을 가하여 피해자는 2014. 10. 28. 10:30경 위 체육관 본관에서 다발성 손상 및 그에 합병된 감염증으로 사망하였다.

…얼굴과 온 몸에 멍이 들고 열이 나고, 음식물을 제대로 먹지 못하였으며, 절뚝거리며 걷는 등 정상적인 보행이 불가능하였고…밤낮으로 계속 오줌을 싸고, 몸이 급격히 야위어가고 몸을 움직일 수 없어 계속 누워 있는 바람에 욕창이 생기는 등…

… 피고인 유**(사범)이 김**(관장)에게 “**(숨진 고 씨)이 죽 먹이고, 약 먹였는데 상태가 메롱입니다.”라고 답변하였는데, 위와 같은 ‘메롱’이라는 의미에 대하여 피고인 유**은 수사기관에서 “심각하고 안 좋다는 뜻이었다. 피해자의 몸 상태가 매우 좋지 않다는 뜻이다.”라고 진술하는 등…

…“고** 미치겠다. 계속 창고에 오줌싸서. 미치겠네 이노마 사람 되기 전에 죽을 거 같다.”라는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냈고…피의자신문과정에서 경찰의 “그 말은 그 상태라면 고**이 어쩌면 죽을지도 모르겠다라고 생각을 한 것 아닌가요?”라는 질문에 “예, 맞습니다.”라고 답변…

…음식을 가져다주러 체육관을 방문한 피해자의 어머니에게 피해자의 건강상태에 대하여 알리지 않았고, 단지 해열제 등의 약을 구입하여 피해자에게 먹이거나 피고인 조**에게 전달하여 주기만 하였을 뿐 피해자를 의료기관에 데리고 가는 등의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고 그대로 내버려 두었다.
                                                           
 - 서울동부지방법원 2015고합98 판결문 中


아들이 숨진 날, 어머니는 그것도 모르고 어김없이 자전거를 타고 도장 문 앞에 아침밥을 두고 왔다고 한다. 아들을 마구잡이로 때린 관장과, 그런 사실을 모른 척 눈감고 방치한 사범들이 먹을 음식이었다. 어머니는 아들과 20년 가까이 살았던 그 동네, 그 아파트에 여전히 살고 계시다. 유품은 하나도 남김없이 없앴다. 생전 사진 몇 장 만이 부검감정서와 함께 상자에 들어 있다. 집 곳곳엔 마리아상과 묵주, 교황의 사진이 있었다. 무슨 힘으로 버티며 사시냐 했더니 '재판이 아직 많이 남아있다'고 했다. 

유기치사 혐의로 기소된 사범들의 1심 판결문엔 '피고인들은 자신들이 통상적인 보호조치를 하였다는 취지로 변명하는 등 범행을 부인하면서 진정한 반성의 태도를 보이지 않고 있다'고 적혀 있다. 재판부는 아들을 죽음에 이르게 한 관장 김 씨에게 징역 4년 6개월을 선고했다. 사범 세 명 중 폭행 장면을 목격했던 김 모 씨에겐 징역 1년 8개월, 나머지 사범 두 명에겐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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