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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아들 결혼자금 묻어뒀다 '먼지'로 날려버린 엄마

[월드리포트] 아들 결혼자금 묻어뒀다 '먼지'로 날려버린 엄마
중국인들의 취미는 돈 세는 것이고 특기는 돈 숨겨두기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만큼 중국인들에게는 은행 같은 금융기관보다는 자기만의 사금고에 모셔 둔 현금을 더 믿는 습성이 있다는 얘기입니다.

남들의 눈을 피해 집안 구석구석에 몰래 현금을 숨겨두다 보니 종종 안타까운 사고도 생기기 마련입니다. 장쑤성에 사는 장 씨 가족의 사연도 그 중 하나입니다. 이 집 어머니는 장성한 아들의 결혼자금으로 마련한 돈 10만 위안, 우리 돈 1천8백 만 원을 부엌 바닥에 숨겨놓고 4년 동안 보관해 왔습니다.

나름 철저하게 밀봉한다고 돈 다발을 비닐봉지로 몇 겹을 둘러싸고 두꺼운 철제 깡통 안에 넣은 뒤 다시 상자에 넣어 부엌 바닥에 단단히 묻어뒀습니다. 혹시라도 꺼내 쓰고 싶은 욕심이 생길까봐 묻은 뒤로는 절대 다시 열어보지도 않았습니다. 넉넉지 않은 살림이었지만 꽁꽁 감춰둔 돈으로 언제고 아들 장가 보내는데 문제없을 것이라는 생각에 든든한 마음으로 살아왔습니다.

어머니의 바람대로 아들은 짝을 만나 결혼 날짜를 잡아왔습니다. 집안 형편을 빤히 아는 터라 아들은 수시로 결혼비용 걱정을 했지만 믿는 구석이 있었던 어머니는 혼자 속으로 빙그레 웃곤 했습니다. 그런데 4년간 감춰뒀던 비상금을 꺼내 사용하려고 부엌 바닥을 파 상자를 연 어머니는 비명 소리와 함께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선홍빛 잉크로 마오 주석의 얼굴 초상이 그려져 있던 중국 최고권 지폐 100위안 다발이 온통 삭아서 푸석푸석 형편없이 부서져 버렸기 때문입니다. 어머니 나름대로 밀폐시켜 보관한다고는 했지만 온도와 습도, 진공 여부 등을 과학적으로 계산해 손상없이 보관해주는 은행의 사금고에 비할 바는 못됐기 때문입니다.

10만 위안이라는 큰 돈을 먼지로 날려버릴 처지에 놓인 어머니는 울부짖으며 은행으로 달려가 도움을 호소했습니다. 안타까운 사연에 은행과 금융계 관계자들은 방법을 찾아보고는 있지만 아들에게 멋진 결혼선물을 하고 싶었던 어머니의 소박한 꿈은 연기처럼 사라질지 모를 위기에 처했습니다.
올 초에도 후난성에서 비슷한 일이 있었습니다. 작은 건설회사를 운영하는 가장이 난로 속에 숨겨뒀던 20만 위안, 약 3천6백 만 원이 잿더미로 변해버린 겁니다.

이 돈은 가장인 남편이 직원들에게 밀린 임금을 주기 위해 친구와 지인들에게 빌린 돈이었는데 난로에 돈 뭉치가 숨겨진 줄 모르고 아내가 난로에 불을 지피다가 홀라당 타버린 겁니다.

부랴부랴 타다 남은 지폐더미를 들고 은행으로 달려갔지만 "지폐의 남은 면적이 절반보다 작으면 새 지폐로 교환해줄 수 없다"는 은행의 답변을 듣고 발을 돌려야 했습니다.

이처럼 중국에서 현금을 집안에 숨겨두는 일이 빈번한 이유는 우선, 은행에 대한 신뢰가 높지 않기 때문입니다. 짝퉁의 천국인 중국에는 가짜 은행들도 판 치고 있습니다. 수많은 시중 은행과 유사한 이름의 간판을 내걸고 보통 은행과 똑같은 시설과 내부 장식을 갖추고 유니폼까지 맞춰 입은 가짜 은행창구 직원들이 고객들에게 예금을 받는 겁니다. 창구와 대기표 발행기, ATM까지 똑같아 왠만한 사람이면 속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감쪽같습니다.
장쑤성에서는 이런 가짜 은행이 무려 350억 원의 예금을 받아 사라진 사기 사건까지 벌어졌습니다. 무려 21억원이나 되는 큰 돈을 예금했다가 떼인 피해자도 있었습니다.
얼마 전에는 심지어 세계적 투자은행인 골드만 삭스를 베낀 짝퉁 금융회사까지 등장했습니다. 중국 선전시 금융가에는 '골드만삭스 (선전) 파이낸셜 리싱'(Goldman Sachs (Shenzhen) Financial Leasing)이란 이름의 금융회사가 벌써 2년 넘게 영업중인데 얼핏보면 우리가 잘 아는 골드만삭스 선전 지점쯤으로 착각할 수 있지만 전혀 무관한 사기 회사입니다.

(미국계 투자은행인 오리지널 '골드만삭스 그룹'의 명칭은 'Goldman Sachs Group'으로 표기합니다) 이 회사는 마카오의 도박업체들과 연계된 조직폭력단체의 돈 세탁 작업까지 해 온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런 가짜 은행이나 금융회사 말고도 부지기수의 가짜 금융사이트들도 판치고 있는 게 중국입니다.

집에 몰래 현금을 숨겨두는 또 다른 이유는 냄새나는 검은 돈이 많기 때문입니다. 시진핑 정부 들어 반부패 사정 바람이 불기 전만해도 집에 1, 2억 위안(약, 180~360억원) 묻어 둔 비리 공무원들이 상당수였다고 합니다.

혹시라도 뇌물로 받아 둔 돈이 금융계좌추적으로 걸릴 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벽장 속이나 천장 위, 화장실 바닥 아래, 심지어 침대 매트리스 아래 뭉칫돈을 감춰두기 바빴던 겁니다. 그러다보니 최근 비위 공직자 집안 압수수색을 실시해 트럭 몇 대분의 귀금속과 현금을 날랐다는 언론 보도를 심심찮게 접하게 됩니다.

중국은 GDP 대비 저축률이 50%가 넘는 나라로 이를 바탕으로 기업들이 수월하게 자금을 변통해 30년 넘게 두 자리수 경제성장이라는 기적을 일궈 왔습니다. 하지만 최근 경기 둔화조짐에 한껏 달아올랐던 주식시장 마저 폭락하자 중국 정부는 단기처방으로 위안화 평가 절하와 금리인하 조치를 취하고 있습니다.

은행에 돈을 맡길 메리트는 자꾸 떨어지고 금융사기의 위험성은 자꾸 높아져 가는 상황에서 서민들은 오늘도 집안 구석 어딘가에 돈 다발을 숨기고 있을 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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