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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년 동안, 저는 딸을 죽인 살인범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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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에겐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보물이 있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예쁠 뿐만 아니라 유명 디자인 학교를 다니며 백악관에 작품이 전시될 정도로 능력까지 뛰어났던 제 딸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제 딸에게 우울증이 찾아왔습니다. 혼자 깊은 호수에 뛰어드는 등 증세가 심해져 여러 가지 치료 방법을 수소문하다 한 교회 수양관을 찾았습니다.

하지만, 이 길이 사랑하는 딸과의 마지막이 될지 몰랐습니다. 딸과 함께 수양관에서 머문 첫날 밤 오두막에 갑자기 불이 번졌습니다. 정신없이 빠져 나왔는데 다른 방에 있던 딸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딸을 구하지 못한 죄책감과 슬픔에 가슴이 찢어질 지경이었지만, 세상은 그럴 시간을 저에게 오래 주지 않았습니다. 제가 제 딸의 살해자이자 방화범으로 몰렸기 때문입니다.

답답했습니다.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미국 검찰은 제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자신들이 확보한 증거라고 들이대면서 알아듣기 힘든 영어로 압박했습니다. 

딸을 구하지 못한 나 자신을 자책하며 아내에게 건넸던 ‘내가 딸을 죽였다’는 말은 어느 새 잔혹한 살인범의 자백으로 둔갑했고, 오두막에서 딸을 찾으려다 넘어진 것 때문에 셔츠에 묻은 피는, 딸을 살해한 증거가 되어 있었습니다.

석유화학 제품이었던 셔츠에서 당연히 발견될 수 있는 기름 성분은, 방화를 저지르기 위해 기름을 뿌렸던 흔적이 되었습니다.

저는 분명, 새벽에 전기가 합선되어 불꽃이 튀는 장면을 목격했습니다. 하지만  변호사도, 검사도, 판사도 아무도 제 말을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제 변호사는 저의 동의도 구하지 않고, 제가 일으킨 화재가 아니라 딸이 자살을 하기 위해 방화를 저지른 것으로 몰아가면서 변호를 이어갔습니다. 

결국 저는, 의견을 제대로 말도 못한 채  ‘무기징역 선고’를 받았습니다.

저는 너무나 억울했습니다. 항소심과 재심 청구를 했습니다. 하지만 8번의 재심 청구는 모두 기각되었고, 그렇게 전 ‘25년’동안 감옥에 갇혀 있었습니다.

이제 끝이구나 생각했습니다. 포기하려고 마음을 먹고 있었습니다. 그 때 희망이 찾아왔습니다. 2012년에 연방항소법원에 마지막으로 한 항소심이 받아들여졌기 때문입니다.

제가 연방항소법원에 제시한 ‘무죄 보고서’에, 검찰은 제대로 된 반박도 하지 못했습니다. 심지어 사고 당시 처음 기록된 수사기록 보고서에는 ‘사고로 인한 화재’라고 정확히 쓰여 있었습니다. 

당시 건물 화재 책임을 지고 있는 사람이 이 사건을 담당했던 미국 검사의 아버지였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을 땐 분노를 참기 쉽지 않았습니다. 

2014년 9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평생을 갇혀 있을 거라 생각했던 감옥에서 석방됐습니다. 그리고  2015년 8월 19일, 연방항소법원의 ‘유죄 유지 거부’에 따라 완전한 자유의 몸이 됐습니다.

저는 이제 딸을 죽인 악마라는 비난은 벗었습니다. 그리고 세상에 다시 돌아왔습니다. 

그 동안 25년이 흘렀습니다. 제 나이는 어느 새 80살이 됐습니다. 그러나 억울함을 벗었다고 감격하기엔 저는 너무 많은 것을 잃었습니다. 저는 도대체 누구를 원망해야 하는 걸까요….

(SBS 스브스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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