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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노인, 노인 하지 마요, 기분 나빠"…몇 세부터 노인?

[취재파일] "노인, 노인 하지 마요, 기분 나빠"…몇 세부터 노인?
  엄마는 53년생. 만 61세가 되었던 지난해부터 국민연금을 받기 시작했다. 현재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지내시는 터라, 한 달에 몇십만 원이라도 나오는 게 '참 다행이다'라고 말씀하신다. 한 달에 한 번 통장을 볼 때는 '흐뭇'하지만, 통장을 덮고 나면 꼭 한숨을 쉬신다. "에휴, 나도 이제 할매구나.." 동년배 다른 어르신들보다 흰머리도 없었던 엄마인데, 이제 어느덧 머리카락이 희끗희끗해지고 주름도 꽤 늘어서 '엄마도 나이가 드는구나' 안타까웠는데, 정작 엄마는 연금을 받기 시작하니 '진짜 노인'이 됐다고 생각하시나 보다.

  사실 요즘 주변을 돌아보면 60대를 '노인'이라고 칭하기에는 미안한 게 사실이다. 건강 관리, 자기 관리가 철저해서 나이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젊어보이는 분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공식적인 '노인'의 정의, '노인의 연령'이 있을까. 그 어디에도 없다. 다만 고령자들을 위한 복지 정책의 대상자 연령에서 '노인의 연령'을 추정할 수 있다. 노인장기요양보험법, 도로교통법, 기초연금법, 노인복지법 상의 경로우대 대상은 모두 '65세 이상'이라고 정하고 있다. 이것을 통해 우리나라에서 '노인'은 '65세 이상'을 일컫는다는 걸 알 수 있다. (치매 검진이나 건강 보장 사업에서는 '60세 이상'을 대상자로 보고 있다. 예방적 점검이 필요하기 때문에 연령대를 확대한 것이다.)
 
  그런데, 지난 5월 한국노인회가 이런 암묵적인 사회적 합의를 바꿔보자는 제안을 내놓았다. 노인의 법적 연령을 '70세 이상'으로 올리자는 안건을 정기이사회에서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노인회가 이런 결정을 내린 건 젊은 세대를 위한 배려 때문이다. 초고령사회를 앞두고 노인 복지 수요를 줄여야 젊은 세대의 세금 부담을 덜 수 있다는 것이다. 

  노인회의 '노인 연령 상향' 문제 제기에 이어, 보건복지부가 19세 이상 국민 500 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그랬더니, 노인회의 결정과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설문 응답자의 53%가 '노인'은 '70~74세'라고 답한 것이다. 다음은 '65~69세', 현재 통용되고 있는 '노인' 연령이다. 특히, 70세 이상 응답자 가운데에서는 '노인'이 '75세 이상'이라는 응답이 무려 31.6%나 나왔다. 10년 전, 8.6%에 비하여 엄청나게 증가한 수치이다. '나 아직 살아있어'라는 자신감이 반영된 대답이지 않을까 싶다. 동시에, '난 아직 노인 아냐'라고 손사래를 치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도 든다. 

  국제적으로 인정되고 있는 '노인'의 나이도 역시 '65세 이상'이다. UN의 경우 20~64세를 생산가능인구로, 65세 이상을 노인인구로 규정을 하고 있고, 각종 통계자료와 발간물에 이렇게 기재하고 있다. OECD, EU에서도 노인인구비율, 노년부양비, 장기요양 등 관련 지표를 살펴보면, 노인 인구를 65세 이상으로 정의하고 있다. 65세는 국제적으로도 통용되고 있는 '노인'의 연령인 것이다.

  하지만, 고령사회로 접어든 일부 국가들의 경우에는 노인의 기준이 조금은 다르다. 2015년 기준으로 고령화율이 26.8%를 찍은 일본(고령화율이 20%가 넘으면 '초고령사회'로 분류된다)은 고령백서에서 '65~74세'와 '75세 이상'으로 구분하여 통계를 제시한다. 2013년에는 정년을 65세로 상향 조정했고, 희망하는 근로자에게는 65세 정년을 의무적으로 보장하도록 하였다. 고령 인구가 늘면서 연금 지급 시기도 60세에서 65세로 높였는데, 그만큼 정년을 보장해 '정년부터 연금 수급 시기까지' 소득이 없이 살아가야 하는 시기가 최소화 되도록 조정을 한 것이다. 도로교통법상 노인은 70세, 고령 노인 건강보험은 70세가 적용 대상으로, 제도마다 연령을 다양하게 적용하고 있다.

  지난 23일 열린 '고령사회대책 토론회'에서는 '노인 연령 상한' 문제와 함께 '고령자 고용' 문제가 함께 논의가 되었다. 우리나라의 근로자의 평균 은퇴 연령은 53세, 국제기구에서 정하고 있는 근로 가능 최고 연령 64세보다 9년이나 짧다. 은퇴 이후 연금을 받을 때까지 벌어놓은 돈에 기대어 생활을 해야만 하는 것이다. 국민연금 같은 공적연금 수급률도 아직 30% 대에 머무르기 때문에, (기초연금마저 받지 못한다면) 정말 소득 0원으로 살아갈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토론자들은 하나같이 '노인 연령 상한'에 앞서 고령자를 위한 복지 제도가 성행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인의 상대빈곤율이 50%에 육박하며 OECD 국가 가운데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하고 있는 상황인데, 노인 연령을 높이는 동시에 복지제도의 대상을 줄이면, 세금 부담은 줄겠지만 노인의 빈곤율이 급증하면서 더 큰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많은 논의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문제임이 분명하다.

  제도적으로는 '노인'의 정의와 연령 문제가 중요하기는 하나, 정작 '노인'이라는 명칭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시각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30대에 접어들면서 '아가씨' 대신 '아줌마'라는 호칭을 가끔 듣게 되면서도 기분이 썩 좋지 않은데, 그에 더해 '할머니', '할아버지', '노인'이라고 불리면 썩 유쾌하지는 않을 것 같다. '노인(老人)' 말 그대로 하면 '늙은 사람' 아니던가. 그래서 일부 국가에서는 '노인'이라는 직접적인 단어 대신 우회적인 단어를 선택하고 있다.

 일본은 '고년자(高年者)'('고령자'와 비슷하니까 결국에는 '늙었다'는 의미가 들어간 것 같기도 하지만, '노인'보다는 어감이 낫기는 하다), 미국은 '시니어 시티즌(senior citizen)'(선배 시민, 선임 시민)이라고 한다. 중국은 한자가 풍부해서인지 연령대 별로 좀 더 다양한 호칭이 있다. 50대는 '숙년(熟年)'(성숙한 나이), 60대는 '장년(長年)'(연장자), 70대는 '존년(尊年)'(존경받는 나이)이라는 문화적인 호칭으로 부르고 있다고 한다. 

  '노인 연령' 문제를 취재하고 있다보니, 이건 결국 내 문제가 아닌가 싶었다. 가는 세월 붙잡을 수 있는 이 하나 없고, 결국에는 나도 '노인'이라고 불릴 때가 올 텐데, 그 때의 나는 사회에서 어떻게 취급받을 것이며, 어떤 복지 혜택을 받을 수 있을까. 초고령사회에 사는 미래의 고령인이기에 이 '노인' 문제는 그냥 지나칠 수만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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