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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둥팡즈싱호 침몰 현장 취재기 ② "가족은 없었다! 리커창만 있었다!"

[월드리포트] 둥팡즈싱호 침몰 현장 취재기 ② "가족은 없었다! 리커창만 있었다!"
취재팀을 태운 차는 비 내리는 새벽녘 양쯔강변을 질주했다. 어둠 속에서 이따금 시커먼 물체가 불쑥 튀어 나왔다. 강변에 풀어 놓고 기르는 소들이었다. 이 동네 토박이라던 렌터카 기사는 장애물들을 요리조리 잘도 비켜나갔다. 하지만 기사의 재주도 거기까지였다. 저만치 앞에 대낮 같이 밝힌 조명 아래 한 무리의 사람들과 차량들이 눈에 들어왔다. ‘우징’이라 부르는 무장경찰(武裝警察)들이 설치한 차단선이었다.

중국 외교부가 발급한 외신기자증을 뽑아들고 군용 우비를 입고 무표정하게 서 있는 우징에게 다가갔다. 신분을 밝히고 취재 목적을 아무리 설명해도 돌아오는 대답은 똑같았다. “돌아가라!” 아침 뉴스까지는 4시간이 채 남지 않았다. 할 수 없이 차단선을 배경으로 기자 멘트(오프닝)라도 촬영하려고 카메라 앞에 섰다.

우리 동태를 예의 주시하던 우징 대원 몇몇이 달려오더니 신경질적으로 촬영을 방해했다. 카메라까지 빼앗을 기세였다. 잠시 실랑이를 벌인 끝에 철수를 결정했다. 차를 돌려 나오는 길에 우징들의 시야를 벗어난 사각지대에서 간신히 오프닝 촬영을 마친 그 때, 차단선을 넘어 삼륜차 1대가 빠져 나오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이 밤중에 무장경찰이 봉쇄하고 있는 차단선 안쪽에서 유유히 빠져 나오는 이 삼륜차의 정체는 무엇일까? 삼륜차에는 카메라 장비를 든 서양인 기자 2명과 중국인 여성 스트링어(현지 직원) 1명이 타고 있었다. 그들은 영국 BBC 취재팀이었다.

차단선 안쪽을 둘러보긴 했지만 그들도 둥팡즈싱호가 침몰한 현장까지는 접근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삼륜차 기사는 차단선을 지키는 우징의 중간 책임자를 알고 있다고 말했다. 자기와 함께라면 우징의 묵인 하에 차단선 통과가 가능하다며 우리에게 흥정을 해왔다.

수요공급의 법칙과 희소성의 원리를 기가 막히게 잘 아는 중국인답게 무리한 댓가를 요구했지만 협상의 약자는 우리 쪽이었다. 차단선에서 침몰선이 내려다보이는 곳까지는 7,8km를 더 가야한다는 얘기를 듣고 날이 밝는대로 차단선 앞에서 다시 만나기로 약속하고 헤어졌다.

허둥지둥 아침 뉴스 제작을 마치고 면 한 사발을 털어 넣고 서둘러 차단선으로 돌아갔다. 차단선을 가로막은 병력은 더욱 늘었고 그 앞에는 새벽녘에 봤던 것과 비슷한 삼륜차들이 여러 대 대기하고 있었다. 삼륜차에 오를 무렵 빗줄기는 더욱 거세지고 있었다.

호기 좋게 차단선을 통과해 3, 4km 달렸을까? 다시 2차 차단선이 나타났다. 삼륜차 기사는 우리에게 내리라고 했다. "아직 더 가야 할 텐데 벌써 내리라구?" "다 왔어!" 그제서야 알았다. 그 기사의 '무사통과' 약발은 1차 차단선까지였던 것이다. 2차 차단선 앞에는 또 다른 삼륜차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어쩔 수 없이 2차 차단선 통과 협상을 또 해야만 했다. 우징(무장경찰)들은 뻔히 알면서도 모르는 척으로 일관했다.

아마도 삼륜차들과 우징들 간에 모종의 거래가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이 와중에도 누군가는 돈벌이 대목을 맞은 거였다. 2차 차단선을 통과하고 얼마를 더 달리자 진흙뻘 밭이 나타났다. 삼륜차로는 더 이상 전진할 수가 없었다. 뻘밭을 한참 헤맨 끝에 강가가 나타났고 거기에 3차 차단선이 있었다. 하지만 더 이상 협상은 없었다. 저 멀리 임시 장막이 쳐 진 곳이 현장 지휘부라고 했다. 사고가 나자마자 특별 열차를 타고 현장으로 내려 온 리커창 총리가 그곳에서 사고 수습을 진두지휘하고 있었다.

원저우 고속철 충돌 사고 때나, 쓰촨과 윈난 지진 때도 그랬듯이 국가급 재난 현장에는 만사를 제쳐두고 중국 총리가 가장 먼저 달려간다. 그만큼 재난 늑장 대응으로 인한 민심 이반을 중국 지도부가 두려워한다는 반증이다.
리커창 현장 구조_
총리가 현장에서 수행하는 사고 수습의 실상을 들여다보면 전시행정의 측면이 강한 것도 사실이지만 '민생 총리'의 활약상은 실시간으로 전국에 생중계되고 비난의 화살이 정부로 겨냥될 여지는 애초부터 차단된다. 적어도 중국에서는 아직은 통하는 통치술인 것이다.

공산당 선전부가 내려 보내는 보도 지침에 따른 철저한 언론 통제는 그 밑바탕이 된다. 자국 언론은 물론 외신에 대해서도 보여주고 싶은 것만 공개하고 미리 준비한 인터뷰만 제공할 뿐이다. 구조 과정을 포함한 현장 상황은 국영 방송인 CCTV가 독점 중계한다. 이번에도 역시 예외는 없었다.

해군 잠수요원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차단선 안으로 들어갔다. 마지막 생존자 구조 소식 후 만 하루가 지났지만 더 이상 희소식은 들리지 않았다. 발만 동동 구르는 사이 사람들이 꾸역꾸역 모여 들었다. 혹시 현장으로 달려 온 탑승자 가족들인가 싶어 서둘러 인터뷰를 시도했다. 하지만 그들은 구조 현장을 구경하러 온 주민들이라고 했다. 구조 목격담이라도 인터뷰 하자는 생각에 마이크를 들이댔다.

몇 차례 거절을 당한 끝에 60대 할머니를 건져 올리는 걸 직접 봤다는 남성과 인터뷰를 시작하려는 순간 뒤에서 들릴 듯 말 듯 소리가 들려왔다. "말 잘 못하면 큰 일 난다!" 남성의 얼굴은 금새 굳어졌다. "총리를 비롯한 정부 영도자들의 지휘 아래 무장경찰과 해군이 효과적인 구조 작업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그의 입에선 국영 방송 아나운서나 함 직한 멘트가 나왔다. 궁리 끝에 무리와 동떨어져 있는 한 중년 여성에게 다시 인터뷰를 시도했다. "바람 불어서 그 큰 배가 넘어졌다는 게 이해가 안 가요." 몇 마디 하기가 무섭게 어디선가 나타난 한 무리의 사람들이 여성에게 달려들며 소리쳤다.

"저 여자 파룬궁(중국 정부가 불법 사교 집단으로 규정한 단체)이다! 다 거짓말이다!" 그때서야 이 사람들이 그냥 구경하러 온 마을 주민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모르긴 몰라도 시골 마을 당 조직 간부들일 가능성이 농후해 보였다. 역시 예상대로 빈틈이 없었다.
 
둥팡즈싱호 현장_6
3차 차단선에서 걸음을 돌려 나오는 길에 마주치는 사람들마다 물었지만 탑승자 가족은 한 사람도 없었다. 도대체 440명이 넘는 사망 실종자들의 가족들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둥방즈싱호의 출발지와 도착지인 난징과 충칭에 정부가 마련한 가족 대기소 행을 거부하고 사고 현장으로 찾아온 가족들도 취재팀과 마찬가지로 현장 접근을 차단당했다.

1차 차단선 앞에서야 조부모의 생사를 몰라 눈물 짓는 가족을 처음 볼 수 있었다. 바로 옆에는 무장경찰이 혹시나 언론과 접촉할까 감시의 눈을 번뜩이고 있었다. 현장을 찾아 온 가족들은 외부와 격리된 임시 거처로 보내졌다. 금세기 들어 중국 최악의 참사로 기록될 이번 사고 현장엔 희생자 가족들은 없었다. 불철주야 사고 현장을 누비는 '민생 총리' 리커창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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