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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영국 언론사 사주가 된 한국 청년 - [바이라인] 이승윤: 저널리즘을 구하는 한 가지 방법

[취재파일] 영국 언론사 사주가 된 한국 청년 - [바이라인] 이승윤: 저널리즘을 구하는 한 가지 방법
이승윤 씨를 처음 만난 곳은 런던의 작은 피자가게였다. 지하철 역에서 내려 15분 정도 걷자 간판 없는 건물이 나타났다. 식당이라기 보다는 카페에 가까운 느낌이었다. 테이블도 몇 개 없었다. 손님은 대부분 젊어 보였다. 먹고 난 후 안 사실이지만 카드 결제도 되지 않는 집이었다. 다행히 가격은 비싸지 않았다. 루꼴라 피자가 맛있었다.

"맛있죠? 이 집이 런던에서 최고예요." 이승윤 씨가 말했다.
취재파일 캡션

"바로 이 앞이 제 사무실입니다. 이 동네가 힙스터 촌이에요. 서울로 치면 상수역 같은 분위기?  IT 관련 스타트업들도 근처에 많죠. 저녁 먹고 숙소로 가실 때 근처 에이스 호텔을 지나실 텐데 이 호텔 로비를 보셔야 해요. IT 기업들 공동 사무 공간처럼 되어 버려서 개발자들이 로비에서 노트북 펴놓고 작업하고 있거든요. 우리 회사 개발자도 기분 전환하고 싶을 때는 거기서 작업했어요."

이승윤 씨는 미디어 스타트업 [바이라인 byline.com]의 창업자다. 사무실은 피자 가게가 있는 런던 쇼디치 shoreditch에 있다. 25살 한국인 청년이 영국 언론사의 사주가 된 셈이다. 사무실은 자기 집이고 직원은 5명 뿐인 스타트업이지만.

[바이라인 (Byline.com)] 웹페이지 바로가기 (영문)

● 동아시아인 최초의 옥스퍼드 학생회장…'언론사'를 세운 이유

이승윤 씨가 국내에 처음 이름을 알린 건 2012년이다. 한국인 학생 이승윤 씨가 옥스퍼드 대학 학생회장에 당선됐다는 뉴스를 여러 매체가 보도됐다. 이런 식으로 이름을 알린 사람은 대개 유명세를 밑천 삼아 한국에서 활동하기 마련이다. 이 씨는 달랐다. 오히려 한국과 수천km 떨어진 곳에서 작은 스타트업을 시작했다.

※ 이승윤 씨는 지난 2012년 '옥스퍼드 총학생회장'이 아니라 '옥스퍼드 유니언 Oxford Union' 회장으로 당선됐다. 옥스퍼드 유니언은 오랜 역사를 가진 학생 자치 기구이자 토론클럽이다. 재학생의 70% 이상인 1만 2천여 명이 회원이라고 한다. (이승윤 씨 연합뉴스 인터뷰 인용) 다만 2012년 당시 많은 한국 언론에 옥스퍼드 학생회장으로 당선됐다고 보도됐고, 옥스퍼드 유니언의 독특한 위상에 대해 짧게 설명하기 어려워 첫 원고에는 2012년 언론보도를 인용해 '옥스퍼드 학생회장'이라고 소개했다. 옥스퍼드 총학생회장과 옥스퍼드 유니언 회장이 다르다는 일부 지적이 있어 정확한 사실관계를 다시 밝힌다. (이승윤 씨는 자신을 옥스포드 유니언 회장 출신으로 소개했다는 점 역시 밝혀둔다.)

"원래 학부 전공이 정치·철학·경제학부였어요. 주로 정치랑 철학에 관심이 많았죠. 나중에 정치를 할 생각이었어요. 그런데 학생회장하면서 지저분한 일을 많이 겪었어요. 학생들끼리 서로 도청을 하더라고요. 제 페이스북도 해킹을 당했어요. (어떤 학생이) 기자랑 편을 먹고 제 페이스북에 있는 사적인 대화를 기사로 내보냈어요. 이런 일을 겪고 나니까 학생 정치하면서도 이 정도인데 실제 정치는 얼마나 황당할까 싶더라고요."

"정치 생각을 접고 비즈니스 쪽으로 진로를 잡으면서 인턴십을 마국 샌프란시스코에서 했어요. 그 때 고등학교 친구가 거기 있었는데 스타트업을 하고 있었어요. 굉장히 재미있는 일을 하고 있더라고요. 저는 컨설팅 회사 갈 생각이나 하고 있었는데...그래서 스타트업을 꼭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취재파일 캡션

"스타트업 중에서도 왜 망해가는 미디어 산업을 택했냐고요? 망해가니까 기회가 더 큰 거죠! 저널리즘이라는 건 없어지지 않는 거잖아요. 비즈니스는 망해가고 있지만 저널리즘 자체는 망하지 않을 것 같아요. 그래서 졸업한 다음에 샌프란시스코에 다시 갔어요. 그곳에서 투자자를 구해서 [바이라인]을 시도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죠."

● '크라우드 펀딩이 저널리즘을 구할 것'

이승윤 씨의 [바이라인]이 선택한 사업 모델은 크라우드 펀딩이다. 다수(=crowd)의 재정적 후원(=funding)을 받아 사업을 운영하는 방식이다. 크라우드 펀딩을 이 씨가 발명한 건 아니다. 독일의 [크라우트리포터Krautrepoter]는 지난해 "광고가 없는 온라인 매체를 만들테니 재정적 후원을 해달라"는 글을 올린 뒤 크라우드 펀딩으로 1달만에 138만 달러를 모았다. 한국의 독립언론 [뉴스타파] 역시 크라우드펀딩으로 재정적 기반을 마련했다. 하지만 [바이라인]은 언론사 자체를 후원하는 유료 회원을 모집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바이라인]은 아예 기사 하나 하나에 대해 돈을 내달라고 요구한다. 한국 다음카카오의 [다음 뉴스펀딩]과 비슷한 방식이다. (이승윤 씨는 다음 뉴스펀딩에 [바이라인]을 후원해달라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다음 뉴스 펀딩] 런던에서 새로운 미디어를 그리다: 프롤로그 - 언론의 죽음

"두 가지 모델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프로젝트 입니다. 기자가 앞으로 자신이 보도할 기사에 대한 기획서를 올리고 후원을 요청하는 방식이죠. 두 번째는 칼럼이에요. 저널리스트가 특정 주제에 대해서 정기적으로 칼럼을 쓸 테니 후원해달라고 요청하는 거죠.지금은 아직 구현이 안 됐지만 앞으로 저희는 사용자의 후원 성향과 구독 성향에 따라서 개인화된 메인 페이지를 제공하는 걸 목표로 하고 있어요. [바이라인]에 접속하면 자기가 후원하거나 관심 있는 주제가 메인 페이지에 뜨는 거죠. 일종의 개인화된 [허핑턴 포스트]가 되는 게 목표 중 하나예요."

왜 크라우드펀딩이었을까? 이 씨는 기사에 대한 크라우드펀딩이 뉴미디어 시대에 저널리즘을 구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진심으로 믿고 있다. 이념적 선언이 아니다. 이 씨의 믿음은 언론사의 뉴미디어 시대 생존 방식에 대한 냉정한 판단에 기초하고 있다.

"전세계에서 (뉴미디어 시대에) 돈을 벌고 있는 신문사가 딱 3 곳입니다. [이코노미스트]하고 [파이낸셜타임즈], [블룸버그]죠. 그런데 [블룸버그]는 주로 데이터 서비스 성격이 강하니까 돈 버는 곳은 사실상 [이코노미스트]랑 [파이낸셜타임즈] 2곳이에요. 왜 돈을 벌까요? 저널리즘의 질이나 브랜드 파워 때문만은 아니에요.  [이코노미스트] 前 편집장이 저한테 이렇게 말했어요.

'왜 [뉴욕타임즈]는 안 되는데 [이코노미스트]는 성공할까? 첫째, 이제 아무도 일반 뉴스(General News) 보지 않는다. 그건 어디서든 볼 수 있으니까. 우리는 팩트에 대한 기사가 거의 없다. 1페이지부터 100페이지까지 전부 의견(opinion)과 분석(analysis)이다. 둘째, 우리는 경제랑 국제 문제에만 집중한다.이게 성공의 이유다.'

결국 [이코노미스트]가 돈을 버는 것은 '바이어스(Bias: 편견, 중립을 추구하지 않고 특정한 방향성을 띄고 있는 의견)'를 팔고 있기 때문이에요.  [이코노미스트]의 '바이어스'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돈을 내고 있는 겁니다."


'바이어스 Bias'가 잘 팔리는 것은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일반 뉴스에 강한 전통 매체들이 온라인에서 고전하는 반면 '바이어스'에 토대를 둔 미디어 서비스는 성공을 거두고 있다.

● 일반 뉴스(General News)는 없다.

[바이라인] 역시 '바이어스'를 파는 일에 주력한다. [바이라인]에 올라오는 기획서들은 모두 뚜렷한 정치적, 지역적 색깔을 드러내고 있다. "미스터 거짓말과 샌프란시스코 정치의 슬픈 현실", "국제사회가 네타냐후 총리의 정착촌 합법화 정책을 지지해서는 안 되는 이유"와 같은 기사다. 일정 규모 이상의 집단이 번거로운 결제 과정을 거쳐가면서까지 돈을 낼 만한 동기를 제공하는 콘텐츠다. 기계적 중립을 표방하는 글은 없다. 그렇다고 근거 없는 편견은 아니다. 누군가를 설득할 만한 합리성과 저널리즘으로서의 질을 갖춘 콘텐츠가 아니면 사람들에게 돈을 내게 만들 수 없다. 거꾸로 말하면 사람들은 자신이 믿고 있는 '바이어스'를 뒷받침할 합리적 근거와 질 좋은 저널리즘 콘텐츠가 제시되면 기꺼이 돈을 낼 용의가 있는 것이다.
취재파일 캡션

"저희는 일반 뉴스(General News)를 취급하지 않고 있어요. 저희 사이트에 올라오는 모든 칼럼이 다 편향적이에요. 목표는 10만 명의 오타쿠 또는 액티비스트를 모아놓는 거예요. 예를 들어 저희 칼럼니스트 한 명 중 유대인이 있는데, [홀로코스트 산업]이라는 책을 썼어요. 이 사람은 이스라엘에서 입국 금지를 당할 정도에요. 정치적으로 호불호가 명확히 갈리는 사람이죠. 이런 사람이 펀딩을 더 잘 받았어요. 정치적 호불호가 갈리거나 지역 이슈에 대한 것에 펀딩이 몰리죠. 킥스타터(스타트업들을 위한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를 봐도 그래요. 킥 스타터에서 역대 가장 돈을 많이 번 아이템이 일본 게임 개발자를 위한 잡지입니다."

[바이라인]에는 주목할만한 언론인이 또 있다. 공동 창업자인 영국인 다니엘 튜더(Daniel Tudor) 씨다. 어쩌면 한국에서 이 씨보다 더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이코노미스트 Economist]의 한국 특파원이었고, 특파원을 그만 둔 뒤에는 이태원에서 수제 맥줏집을 차리기도 했다.(국내 수제 맥주 열풍의 선구자이다.) 얼마 전까지는 [중앙일보]에 한국 사회에 대해 어느 진영에도 속하지 않는 국외자의 시선으로 분석한 칼럼을 연재했다.(한국 정치에 대한 단행본도 곧 출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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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론계 거물 덕분에 이름을 알린 [바이라인]

정식으로 시작한 지 2주 남짓 된 인터넷 사이트지만 바이라인은 뜻밖의 사건으로 이름을 알렸다. 영미권 언론의 황제 루퍼트 머독의 오른팔인 리베카 브룩스에게 소송 협박을 받은 것이다. 머독이 소유한 매체에서 일했던 탐사 보도 기자가 머독 관련 회사들의 불법 도청 사실을 리베카 브룩스가 사전에 알고 있었다고 [바이라인]과 인터뷰했고, 리베카 브룩스의 법적 대리인은 곧바로 [바이라인]과 이승윤 씨에게 관련 문장을 삭제하지 않으면 소송을 걸겠다고 통보했다. [바이라인]은 어쩔 수 없이 기사를 내린다는 공지와 함께 인터뷰의 해당 부분을 삭제해야 했다. 그러나 머독의 오른팔인 리베카 브룩스가 신생 미디어 스타트업을 협박했다는 소식이 영국의 유명 시사 매거진에 실리면서 [바이라인]의 이름을 알리는 계기가 됐다.

[다음 뉴스 펀딩] 런던에서 새로운 미디어를 그리다 2화 - 감히 '머독과 아이들'을 건드려?

한국인 청년이 런던에 세운 이 작은 언론사가 앞으로 얼마나 오랫동안 생존할 수 있을지는 전망하기 어렵다. 그러나 이승윤 씨가 말했듯이 저널리즘 비즈니스는 기울어도 저널리즘 자체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바이라인]처럼 저널리즘을 구하기 위한 작은 시도들이 전개되다 보면 누군가 해답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당장 답을 찾지 못하더라도 그런 시도 덕분에 거대 언론의 지면에서 점점 희미해져가는 저널리즘의 본령이 보존될 수는 있을 것이다. 적어도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저널리즘의 붕괴를 바라보고만 있는 것보다는 훨씬 나은 일이다.
취재파일 캡션

이승윤 씨의 저널리즘 실험이 성공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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