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29일 오전11시 윤봉길의사 기념관이 있는 상하이 루쉰공원은 잔뜩 흐려 있었다. 의사께서 의거를 일으킨 지 만 83년이 되는 날이다. 올해는 의거 기념식과 기념관 재개관 행사를 동시에 하는 뜻 깊은 날이었다. 이날 행사에는 박승춘 국가보훈처장을 비롯해 윤주경 독립기념관장, 김진우 윤봉길기념사업회 회장, 그리고 한국에서 건너간 수십 명의 기념사업회 회원들이 함께 했다. 나는 기자로서가 아닌 광복70주년기념사업추진위원회 위원 자격으로 행사에 참석했다.
우리 측은 매헌정(梅軒亭)으로 이름을 추진하였으나 중국정부는 아예 윤봉길의사의 흔적조차 느낄 수 없는 매정(梅亭)으로 결정했다. 당연히 정자 내부에는 윤의사 초상화와 간단한 안내문만 걸렸을 뿐 기념관이라고 하기에는 초라하기 그지 없었다. 2002년 의거 70주년을 맞아 특별전시회가 열렸고, 이후 중국 정부를 설득해 이듬해 전시물을 설치한 기념관을 개관했다. 기념관 명칭을 현재의 매헌(梅軒)으로 고친 것도 그로부터도 한참 뒤인 2009년에서야 성사됐다. 중국이 한국보다는 일본과의 관계를 더욱 신경쓰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그만큼 외교무대에서 우리는 중국에게 일본보다는 후순위로 저만큼 밀려 있었다.
우리 국가보훈처는 여기에 1억5천만원의 예산을 지원했고 각종 자료도 협조해 한중간의 우의를 돈독히 했다. 보훈처는 윤의사가 폭탄을 투척한 공원 내 의거 현장에도 표지석을 세운다는 방침이다. 이와 함께 올 하반기 재개관을 목표로 상하이와 충칭의 낡은 임시정부 청사도 대대적인 정비작업에 들어갈 계획이다. 이는 지난해 초 하얼빈역 안중근 의사 기념관 건립에서 보여준 중국의 ‘친한정책’이 전례없이 계속되고 있음을 실감할 수 있는 모습들이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자칫 오판해서는 안 될 사실이 있다. 일련의 이런 중국의 변화가 진정으로 한국과의 완벽한 관계 개선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앞서 지적했듯이 미국과 일본의 관계가 가까워지고, 상대적으로 한일, 중일 관계가 소원해지면서 중국이 예전과 달리 일본의 눈치를 보지 않음에 따라 한중관계가 돈독해진 듯 보일 뿐이다. 허동현 경희대 한국현대사연구원장은 “한중 관계는 독립변수가 아니라 한일 관계에 따른 종속변수일 수 밖에 없다”며 “중국의 필요에 의해 언제 자세가 바뀔지 모르기 때문에 우리 정부도 냉정하게 대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