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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사우디는 진정한 예멘의 구원자인가?

- 예멘 사태 뒤집어보기

[월드리포트] 사우디는 진정한 예멘의 구원자인가?
아라비아반도 남단에 위치한 예멘이 중동의 또 다른 화약고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아랍 연합군이 후티 세력에 대한 공습을 개시한 지 20일이 훨씬 넘었습니다. 공식적인 공습 횟수만 1200차례가 넘습니다. 사우디는 예멘의 합법적인 정부를 지키기 위한 것이라고 군사 개입 이유를 밝혔습니다.

후티 세력을 격퇴에 예멘이 다시 안정을 찾을 때까지 작전은 계속될 것이라며 사태의 장기화를 예고합니다. 사우디를 비롯한 수니파 국가들은 시아파 맹주인 이란이 후티의 배후라고 대놓고 지목합니다. 이번 군사개입이 이란에 대한 견제가 목적임을 숨기지 않습니다.

사우디의 군사개입으로 전개되는 예멘 사태는 제게 많은 궁금증을 낳게 합니다. 후티는 정말 착한 예멘 정부를 내쫓으려는 악당인가? 이란은 정말 후티 세력의 정부 전복을 배후에서 조종한 게 맞나? 만약 사우디의 개입이 없었으면 예멘은 더 혼란스러웠을까? 질문과 답을 스스로 내고 찾다 보니 사우디 군사개입의 정당성에 의구심이 들어 몇 가지 내용을 짚어볼까 합니다.

월드리
● 후티는 정말 악당인가?

후티는 쿠데타를 일으킨 게 맞습니다. 국제사회가 인정하는 합법적인 정부를 뒤집고 비정상적인 정권 교체를 이루려고 합니다. 그래서, 쿠데타는 옳지 못합니다. 그렇지만 쿠데타를 일으켰다고 해서 다 악당이라고 딱 잘라 말할 수 있나요?

'후티'란 말은 원래 원래 '후세인 알 후티' 라는 청년운동가에서 따온 겁니다. 이 사람은 원래 1990년대 예멘 북부 사다를 중심으로 이슬람주의의 사상 운동을 펼친 사람이죠. 당시에는 이 조직에 대한 뚜렷한 이름도 없었습니다. 이 후세인이 2004년 정부군에 의해서 사살되면서 후세인의 주총세력이 무력 투쟁을 시작하게 됐고 후세인의 동생 '알둘 말리크 알 후티'가 이후 세력을 이끌면서 '후티'라고 불리게 된 것입니다.

후티가 악당이라면 그 악행이 보고되어야 하는데 쉽게 찾아보기 힘듭니다. IS처럼 점령지에서 다른 수니파 주민을 학살했다거나 학대했다는 이야기는 없습니다. 또한, 후티가 지배지역인 예멘 북부에서 정치적 경제적 부정을 저지르고 있다는 내용도 없습니다. 후티는 지난해 9월 수도 사나를 장악한 뒤에 충분히 정권을 쥘 수 있었는데 그러지 않았습니다. 종파 갈등을 무릎 쓰면서가지 정권을 쥘 생각이 처음엔 없었다는 겁니다.

오히려 후티와 같은 강력한 세력의 존재가 예멘에서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을 저지하는 버팀목 역할을 하고 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알카에다에서 가장 활동이 활발한 아라비아지부가 예멘의 동부를 장악하고 있습니다. 최근엔 IS가 후티의 이슬람 사원에 폭탄테러를 자행하면서 예멘에 새롭게 세력확장을 선언한 상태입니다. 이런 극단주의 위협에서 강건한 후티 세력은 예멘의 안전을 지키는 보호막이라는 설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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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란은 후티의 배후인가?

이번 군사개입엔 사우디와 아랍에미리트, 쿠웨이트 같은 걸프 왕정국가가 중심이 됐습니다. 군사작전에 동참한 이집트, 수단까지 하나같이 수니파 국가들입니다. 이들은 후티 세력의 배후로 시아파 맹주 이란을 지목합니다.

그런데 지목할 뿐 정말 이란이 후티의 배후란 뚜렷한 증거를 내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배후라면 후티에 최소한 무기나 자금 지원은 했어야 할 텐데 말입니다.

다만, 지난 2월 후티와 이란이 예멘 수도 사나와 테헤란을 항공기가주 14회 운항하는 항공협약을 맺었다는 정돕니다. 그래서 이란이 손쉽게 후티 쪽에 무기와 군수품을 지원하는 통로가 마련됐다, 그래서 지원 의혹이 든다 정돕니다.

이란은 같은 종파적으로 후티를 지지합니다. 후티가 수도 사나를 장악하자 아덴으로 피신한 하디 대통령을 전 대통령으로 불렀습니다. 그리고, 사우디가 후티를 공격하자 내정 간섭이라고 군사개입을 비난했습니다. 같은 시아파니 그 정도 편은 들 수 있지 않을까요?

아랍 연합군의 개입초기 세계 언론이 수니파 종가 사우디와 시아파 맹주 이란의 대리전으로 치달을 것처럼 보도했습니다. (저도 그렇게 썼습니다.) 그런데, 막상 뭔가 할 것 같았던 이란은 사우디를 비난할 뿐 별 다른 군사행동의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미국과 핵 협상만으로도 벅차기 때문인지, 아니면 여기서 직접 나섰다가는 중동 전쟁으로 확산될 지도 모른다는 계산을 했는지 알 수 없습니다.

오히려 지난 14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후티 세력에 대한 무기 제공 금지를 결의한 날, 이란은 후티와 정부 지지세력의 휴전을 제안했습니다. 휴전 후 정파간 대화, 국민적 합의에 의한 정부 구성이라는 평화적 해결책을 제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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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레 전 예멘 대통령(좌)과 하디 현 예멘 대통령(우) -

● 살레와 하디 '도진개진'

후티 세력이 손쉽게 수도 사나를 장악한 데는 '알리 압둘라 살레' 전 대통령의 공작이 일조했습니다. 살레는 1990년 예멘을 통일한 장본인으로 북예멘 시절부터 33년의 철권 통치를 벌이다 2011년 민주화 바람에 물러난 인물입니다. 살레는 퇴각한 뒤에도여전히 예멘 의회에 다수 의석을 가진 정당을 이끌며 정치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군과 사회 요직에는 아직도 살레의 측근들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이런 살레가 후티의 강력한 힘에 편승해 정권을 되찾으려고 체제 전복을 부추기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입니다.

그렇다면 사우디로 도피한 현 정부의 만수르 하디 대통령은 어떤가요? 이 분은 살레 독재자 밑에서 무려 18년간 부통령을 지냈습니다. 수니파라지만 사실 살레와 정권욕에서는 별 차이가 없습니다. 2012년 대통령에 선출된 하디는 과도정부를 수립하더니 지난해 임기를 1년 연장하며 장기 집권을 위한 행보에 나섰습니다. 여기에 한발 더 나아가 자신의 지지세력인 분리주의자들의 주장에 따라 연방제를 추진합니다. 예멘은 항만과 무역, 천연가스가 생산되는 남부에 부가 집중돼 있습니다. 척박한 산악지대인 북부엔 빈곤층이 몰려 있습니다. 분리주의 정책은 북부에 근거지를 둔 후티 세력의 반발을 사게 됩니다. 여기에 경제 개혁 차원에서 연료비 인상에 나서면서 후티는 서민이 중심이 된 반정부 시위를 주도합니다. 이 반정부시위가 단기적인 관점에서 현 예멘 사태의 출발점이 된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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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우디의 공습으로 폐허가 된 마을 -

● 사우디가 아니었다면 예멘은 더 혼란스러웠을까?

사우디는 20일 넘게 공습을 벌여 후티 세력을 궁지에 몰아넣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500명의 후티 병력이 사살됐다며 전과를 기자회견까지 열어가며 자랑합니다. 마치 예멘의 수호자인양 행동합니다.

과연 그럴까요? 사우디 공습 이후 인명피해는 급증하고 있습니다. 사우디의 군사개입 이후 숨진 민간인이 700명이 넘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아동도 70명이 숨졌습니다. 쏟아지는 폭격 세례에 바다건너 소말리아로 피신하는 이들이 줄을 잇습니다. 사우디 공습 이후 발생한 난민만 12만 명입니다. 후티와 정부군이 다툴 때도 고향을 지켰던 사람들입니다. 사우디는 총칼로 싸우는 전투를 폭격기와 대포가 등장하는 전쟁으로 확대시켰습니다.
IS와 알카에다 같은 이슬람 극단주의는 혼란이란 양분을 먹고 자랍니다. 자신들의 견제 세력 후티가 사우디의 맹공으로 위축된 상황은 동부 산악지대에 웅크리고 있던 알카에다와 새로 둥지를 튼 IS에게는 더 없이 좋은 호재로 보일 겁니다.

예멘의 시아파는 자이디(ZAYDI)라고 해서 이란의 시아파와는 좀 다릅니다. 이슬람에서 시아냐 수니냐를 나누는 중심 개념은 무함마드의 후계자를 누구로 보는냐입니다. 시아파는 4대 칼리프인 알리의 후손만을 무함마드의 후계자로 여깁니다. 반면 예멘의 자이디는 수니파처럼 아부 바크르와 오마르, 우쓰만 같은 다른 칼리프로 무함마드의 후계자로 인정합니다.

이런 점에서는 오히려 수니파에 더 가깝다는 의견이 많습니다. 예멘의 자이디가 시아파로 규정된 건 다름아닌 살레 정권 시절입니다. 살레는 당시 후티와 교전을 벌이면서 군비와 재정난에 부딪혔고 사우디로부터 더 많은 지원을 얻기 위해 후티 세력의 중심인 자이디를 이란과 같은 시아파로 규정해버렸습니다. 예멘의 자이디는 1천만 명으로 추산되는 데 사우디는 이들을 죄다 이란과 한통속인 시아파로 덩달아 갈라버리는 실수를 저지르고 있습니다.

예멘은 치안과 경제 수준 등의 파탄 정도를 평가하는 취약국가지수가 세계에서 7번째로 높은 나랍니다. 국민의 절반이 빈곤층인 가난한 나랍니다. 남북 예멘 시절부터 오랜 내전과 혼란을 겪으면서 국민의 삶은 피폐해져 있습니다. 이런 나라에 세계에서 가장 돈 많은 나라가 폭탄을 쏟아 붇고 있습니다. 내가 싫어하는 편에 붙게 되면 어찌 되는 지 가르쳐 주겠다는 식으로 마음껏 무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사우디가 이렇게 해서 현 정부를 지켜낸다고 해서 국제사회가 사우디를 구원자로 칭송할까요? 후티가 현 정부를 내몰고 새로운 정부를 세웠을 때보다 희생자와 피해규모가 적을까요? 사우디가 후티를 다 몰아낸 다음 황폐한 국토를 보고 예멘인들은 사우디에 박수를 보낼까요? '정의 실현과 안정 회복'이라는 명분이 수많은 민간인의 목숨과 난민의 고통, 파괴된 삶의 터전과 맞바꿀 정도로 가치가 소중한 것인가요? 아마 사우디는 겉으로는 이런 저런 명분을 내세우겠지만 속내는 그저 중동과 이슬람, 아랍에 자신의 힘을 유지하고 싶은 마음 뿐일 겁니다.

사우디 개입에는 '도덕적 정당성'이 빠져있습니다. 제 욕심에 눈이 먼 거인의 횡포일 뿐입니다. 그래서, 사우디는 구원자가 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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