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난 책임질 위치에 있는 사람이 아니었어요"

우린 왜 세월호가 불편해졌나?②

류란 기자 peacemaker@sbs.co.kr

작성 2015.03.29 16:07 수정 2015.03.29 16:43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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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대표 이미지:[취재파일] "난 책임질 위치에 있는 사람이 아니었어요"
촬영일: 2014-04-24
촬영장소: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원
취재기자: 류란, 영상기자: 한일상
중계 10호, 송출 @ 선원 4명 영장실질심사 후 나오는 모습, 사과발표문과 질의응답, 피의자 호송하는 모습


(1) 

찰칵찰칵(사진 찍는 소리)

기자: 국민들께 준비해 온 말씀이 있으시다 들었습니다. 말씀해 주세요.
선원 1: 실종자 및 사망자 및 유족들께 정말 잘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울음) 죄송합니다.
선원 2: 국민 여러분께 죄송합니다. 유가족께 죄송합니다. 깊이 반성 하겠습니다.
선원 3: 유가족 분께 죄송합니다. 큰 잘못 했습니다. (기자: 크게 해주세요) 국민과 유가족에게 죄송합니다. 큰 잘못했습니다.
선원 4: 잘못했습니다. 반성하겠습니다.

기자: 사고 원인이 무엇이었다고 생각하세요?
선원 1: 진술서에 다 나와 있습니다. (기자: 진술을 어떻게 하셨는데요?) 제가 사고 원인을 알만한 그런 위치(=직급, 역할)에 있지 않다고 그렇게 (말했습니다).
기자: 사고 직전 이상 징후나 조짐은 없었나요?
선원 1: 그런 건 전혀 못 느꼈습니다.
기자: 평형수나 엔진은요? 평소와 달리 이상 없었나요?
선원 1: 전혀 이상 없었습니다.
기자: 사고원인 얘기해주실 수 있는 분! XXX 씨, 사고 원인요.
선원 2: 전 조타실 안 가서 몰라요.

기자: 배에서 나오기 전 탈출 지시가 있었습니까?
선원 1: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말할 입장이 아닙니다
기자: (선원끼리) 탈출 명령 있었던 걸로 들었는데요, 그 지시 내린 사람이 누구였습니까?
선원 1: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기자: 그럼 배에서 어떻게 나오시게 된 거예요?
선원 1: 배가 너무 기울어서 침수 직전에 나왔습니다.
기자: 선원들끼리 나오기 전까지 어떤 논의도 없었다는 건가요?
선원 1: 네, 대기하라는 안내 방송만 듣고 있었습니다.
기자: 그럼 어떻게 탈출할 생각을 한 거예요?
선원 1: 탈출할 생각은 안 하고 침수가 계속 되니까 (배가) 완전히 넘어가기 얼마 전부터는 갈 데가 없으니까. 상황을 판단해야겠다, 그래서 밑으로 간 것뿐인데 (구조됐습니다)
기자: 빠져나오기 전에 승객들을 구조해야겠다는 말씀들은 안 나누셨습니까?
선원 1: 조타실에 있는 사람들 아니고는 어떤 상황인지 알 수 있는 위치가 아니었습니다.
기자: 본인이 1등 기관사인데요?
선원 1: (침묵)

기자: 혼자 나오셨어요? 다른 선원들 몇 명이랑 나오셨어요?
선원 1: 7명이요
기자: 기관부 7명끼리는 어떻게 이야기 나누셨어요? 무전기라든지.
선원 1: 그건 나중에 진술에 다 나와 있습니다.
기자: 7명이 나올 때 탈출 지시가 있었습니까?
선원 1: 그건 지시를 받고 나왔습니다.
기자: 그러니까요, 그 지시를 누가 내렸어요?
선원 1: 그건 진술에 나와 있습니다.
기자: 기관장이에요, 선장이에요? 기관장이 브릿지에서 (지시) 내린 거 맞아요?
선원 1:  (침묵)

기자: XXX(기관사) 씨! 브릿지에서 XXX 씨 봤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던데요?
선원 4: 아니에요! 저는 그날 아침부터 사고 난 시점까지 기관실에 있었어요!
기자: YYY(조타수) 씨가 XXX 씨 봤다고 그랬는데?
선원 4: 아닙니다!
기자: XX 씨는 탈출을 그럼 어떻게 한 거예요?
선원 4: 누구 지시를 받은 게 아니고 자연스럽게 기관실 침실에 있다가, (경찰이 다가와 양 팔을 끌어 데려감) 아니, 기관실에 있다가...
[취재파일] 류란
(2)

기관사 등 선원 4명의 영장실질심사가 있었던 날로부터 나흘 뒤(2014년 4월 28일), 세월호 최초 구조에 나섰던 목포해경 123정 측이 촬영한 핸드폰 영상이 공개됩니다. 비행기 사고 후 확인하는 블랙박스 기록처럼, 이 영상은 두고두고 세월호 관련 수사와 재판에 결정적인 증거 자료로 활용됐습니다. 영장실질 때마다 '아무 것도 모른 채 밖으로 나갔는데 해경이 다가와 구조했다'던 선원들의 말의 진위를 확인할 수 있게 된 겁니다. 영상을 다운받아 재생 버튼을 누르는데 가슴이 쿵쾅대며 떨리기까지 했습니다.

급격히 기울어가는 세월호 갑판 위엔, 한 쪽으로 쏠려 넘어가기 일보 직전인 컨테이너 박스들만 보일 뿐 승객들은 단 한명도 나와있지 않습니다. ‘가만히 있으라’는 말만 믿고 선내에 남아있었던 겁니다. 선장과 선원들은 달랐습니다. 진술과는 달리 123정이 다가오는 소리를 듣고 허겁지겁 조타실 바깥으로 뛰어나옵니다. 얼떨결에 구조됐다더니, 삼삼오오 짝을 지어 일사불란하게 보트에 옮겨 타고 안도하는 몸짓과 표정까지 해 보입니다. 맨발에 사각 트렁크 속옷 차림이었던 이준석 선장이 해경의 도움을 받아 보트로 옮겨 타는 장면은 방송사들이 빨간 동그라미로 강조해가며 수차례 뉴스에 내보냈는데, 볼 때마다 기가 차 쓴 웃음이 나왔습니다.

세월호 선원들의 승객에 대한 퇴선 지시·구조 시도 여부는 여전히 '뜨거운 감자'입니다. 지난 10일과 24일, 광주고법에서 진행된 항소심 3회·4회 공판에서도 이 선장 등 승무원 15명은 검찰 측과 이를 두고 팽팽히 맞섰습니다.

이 선장은 피고인 신문에서 "해경정이 보인다고 누군가 소리를 질러 2등 항해사에게 '안내데스크나 사무장에 퇴선방송을 하도록 하라'고 말했다"고 강조했습니다. 이 선장과 함께 승객에 대한 살인 혐의가 적용된 1등 항해사 강 모 씨와 2등 항해사 김 모 씨도 각각 피고인 신문에서 "선장이 퇴선방송을 지시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에 검사 측이 해경과 검찰 조사에선 퇴선 명령을 하지 못했다고 진술했다가 번복한 이유를 추궁하자 이 선장은 "기억나지 않는다", "정신상태가 정상이 아니었다", "너무 피로했다"고 답했습니다.

증인으로 출석한 세월호 승객의 진술은 달랐습니다. 화물차 기사인 이 승객은 침몰 당시 3층 안내데스크에서 고(故) 박지영씨 등 사무부 승무원 2명과 함께 있었는데, 박 씨에게 ‘조타실에 연락해보라’고 요구해 지속적으로 연락을 시도했지만, 어떤 응답도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승객은 '화상을 입은 상태에서 가까스로 배에서 나와 해경 보트까지 헤엄쳐 갔더니 선원들이 이미 (구조돼) 보트에 올라타 있었다'며 울분을 토하기도 했습니다.

검찰은 또, 123정에서 촬영된 핸드폰 영상의 음질 개선 작업을 통해 선원들이 탈출하던 시점에도 선내 대기 방송이 나온 사실을 부각했습니다. 선원들이 조타실 바깥으로 기어나와 보트에 올라타던 순간에도 세월호 외부 스피커를 통해 "현재 위치에서 대기하시고…"라는 선내 방송이 흘러나오고 있었다고 합니다. 승객들이 안내 방송만 믿고 대기 중인 사실을 알면서도 탈출했을 가능성을 뒷받침하는 겁니다.
세월호 캡쳐_640(3)

‘희생자들에겐 죄송해요, 가족들에게 미안합니다. 하지만 난 어느 것도 판단할 수 있는, 알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았어요. 모든 것이 내 의지와 상관없었고, 그저 남들이 하라는 대로 했을 뿐이에요. 무슨 일이 생겼나 내려와 보니(혹은 바깥으로 나가보니) 구조 보트가 다가와 날 데려간 것뿐이에요. 승객들이 배에 남아 있을 것을 걱정할 겨를이 없었어요. 내가 아닌 누구라도 나처럼 행동했을 거예요.’

대중들이 시간이 지나 세월호를 불편하게 여기게 된 데엔, 변명과 회피로만 일관했던 선장과 선원들을 통해 우리 사회 부끄러운 민낯을 확인한 이유도 있을 겁니다. 염치와 양심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알고 있었지만 인정하기 싫었던 자화상을 정면으로 마주해야 했기에, 그리고 그 경험이 너무나 고통스러웠기에, 세월호는 점점 지우고 싶은 기억이 되어가고 있는 것 아닐까요. 

▶ [취재파일] 우린 왜 세월호가 불편해졌나? 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