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광고 촬영 때문에 길 막는 게 '업계의 관행'?

바다를 가로지르며 인천 영종도와 송도를 연결하는 인천대교. 18km 정도로 국내 최장 구간인데다 거대한 조형물과 자연경관으로 국내 명소로 손꼽히는 곳입니다. 광고를 촬영하려는 사람들에게도 잘 알려진 곳이지요. 지난 13일 오전, 인천대교에서 광고 촬영이 진행됐습니다. 인천대교를 달리는 차량을 촬영하는 것입니다. 광고 촬영팀은 사흘 전 인천대교 측에 사전에 촬영 협조를 의뢰했고, 인천대교도 이를 허가했습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인천대교는 편도 3개 차로인데, 광고 촬영팀과 1km 정도 뒤떨어진 곳에 승합차 3대가 나란히 도로를 주행한 겁니다. 승합차의 속도는 시속 60~70km 정도로, 제한속도인 시속 100km 보다 느렸습니다. 출근 시간대 마음이 급한 운전자들이 이 승합차를 추월하려고 하면, 승합차는 교묘하게 뒷차량의 진입을 가로막았습니다. 뒤이어 오던 차량 운전자들은 영문도 모른 채 여러 차례 추월을 시도했지만, 사고가 날 뻔 한 상황만 되풀이 됐습니다. 소형차가 승합차 사이로 비집고 들어가려고 하거나, 트럭은 갓길로 빠져서 추월을 시도했습니다. 앞이 가로막힌 운전자들이 여러 차례 경적을 울렸지만, 아예 들리지 않는 것 같아 보였습니다. 승합차 3대의 만행은 인천대교 영종도 톨게이트를 지나 송도에 거의 도착할 때까지 계속됐습니다.

화가 난 운전자가 자신의 차량 블랙박스에 기록된 영상을 온라인 사이트에 올렸습니다. 네티즌들이 공분했고, 승합차의 정체를 놓고 논란이 벌어졌습니다. 그리고 이내 승합차들 앞에 광고 촬영이 진행됐다는 사실이 알려졌습니다. 다시 말해, 승합차는 광고 촬영을 위해 길을 통제하려고 동원된 차량이었다는 겁니다. 광고 촬영에 대한 어떤 안내도, 양해도 없었습니다. 영종도에서 송도 방향 뿐 아니라 반대 방향에서도 촬영이 진행됐다는 사실도 알려졌습니다. '유료도로에서 출근 시간대에 길을 막고 광고를 촬영하다니'라며 항의 글이 이어졌습니다.

인천대교를 먼저 찾아갔습니다. 어떻게 이런 광고 촬영을 허가할 수 있는지 따져 물었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사건 당일 광고 촬영팀이 촬영 조건을 어기면서 문제가 생겼다는 답변을 들었습니다. 촬영팀은 '1개 차로를 정속으로 주행하며 촬영하고, 차량은 2대 사용한다'는 조건으로 촬영 허가를 받았습니다. 인천대교 측은 출근시간대이긴 했지만 별도의 '통제'를 할 필요가 없는 상황이라고 판단했습니다.

그런데 난데없이 승합차 3대가 나타나 도로를 통제하는 장면을 상황실 CCTV로 목격하고, 당황하기는 마찬가지였다고 합니다. 그 때가 송도에서 영종도 방향으로 가는 길이었습니다. 당장 촬영을 중단하고 철수시키기 위해 고속도로 순찰대가 출동했는데, 마침 촬영팀이 영종도 톨게이트를 지나면서 촬영을 마친 듯해 보여 더 이상 조치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한차례 제지에도 불구하고, 영종도에서 송도 방향으로 차를 돌려 또 한 번 도로를 통제하고 촬영을 재개했다고 합니다. 온라인 사이트에 올라온 블랙박스 영상도 이 때 촬영된 겁니다.

촬영팀은 약속도 어겼고, 법도 어겼습니다. 인천대교의 제한 속도는 시속 50km 이상, 100km 이하기 때문에 정속으로 주행하긴 했지만, 인천대교의 허가 조건을 어긴 겁니다. 그리고 승합차를 동원해 뒤이어 오던 차량에게 위험한 상황을 야기 시켰기 때문에 형법상 일반교통방해죄로 처벌받을 수 있습니다. 인천대교 측은 고속도로 순찰대와 과태료 부과를 비롯한 처벌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고 합니다. '광고 촬영'이 어쩌다 이지경까지 가게 된 걸까요?

광고주는 이 영상이 게재된 다음 날 촬영팀을 대신해 온라인 사이트에 사과문을 올렸습니다. '차로를 바꿔가며 촬영을 하느라 불가피하게 3개 차로를 모두 쓰게 됐다', '업계의 관행이라고 하지만… 사과드린다'는 내용이 포함됐습니다. 광고주의 바람과는 달리 이 사과문으로 논란은 더 커졌습니다. 도로를 막아놓고도 '업계의 관행'이라니. 광고주와 촬영팀을 찾아갔습니다.

촬영 과정에 변명의 여지가 없고, 사후 조치도 부적절했다, 운전자들에게 사과한다, 광고주의 입장은 확실했습니다. '업계의 관행'이란, '광고 촬영 과정에서 여러 가지 발생할 변수에 대한 대응을 하는 것'을 간단하게 표현하려다 보니 오히려 공분을 산 것 같다고 해명했습니다. 그 때는 다른 차량 운전자들이 촬영팀에 시선을 뺏기느라 사고로 이어질지 모른다는 생각에 아예 승합차로 도로를 통제하는 게 더 안전하겠다 싶었는데, 잘못 판단한 것 같다고 시인했습니다. 사건 당일 불편을 겪은 운전자들에게 어떤 방식으로든 보상하고 싶다는 뜻도 전했습니다. 

길을 지나면서 간혹 도로를 통제하고 촬영하는 모습을 볼 때가 있습니다. 흔한 광경이 아니기 때문에 무슨 촬영인지, 모델은 누구인지 한번  씩은 힐끔거리게 됩니다. 이런 반응이 촬영팀에 방해가 될 때도 있겠지요. 저 역시 기사를 위해 길거리에서 촬영을 하다보면 행인들의 동선을 예상하지 못해, 촬영이 쉽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모두에게 불편을 끼치고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특히 도로를 달리면서 촬영할 때는 촬영하는 사람이나 주변 사람 모두에게 위협을 줄 수 있다는 걸 다시 한번 되짚게 됐습니다. 나하나 편하자고 모두가 함께 사용하는 공간을 통제하는 건 상식 밖의 행동이라는 점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됐습니다. 이번 계기로 '업계의 관행'도 한걸음씩 바뀌어 나가기를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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