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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베트남 여성은 왜 망치를 들었나

묻지마 살인으로 규정할 수 있을까?

[취재파일] 베트남 여성은 왜 망치를 들었나
지난 14일 새벽 5시 40분쯤. 경기도 시흥의 한 5증짜리 원룸 3층 계단에서 48살 김 모 씨가 쓰러진 채 발견됐습니다. 5층에 사는 이웃주민이 출근길에 김 씨를 발견해 즉시 경찰에 신고했습니다.

당시 김 씨는 숨진 상태였고, 머리와 목 쪽에 수 차례 둔기로 맞은 듯한 심각한 외상이 있었습니다. 직접 현장에서보니 계단과 복도에 여기저기에 핏자국이 어지러이 흐트러져 있었습니다.

● 피 묻은 망치 두 자루

6시쯤 현장에 도착한 경찰은 주변 탐문에 들어갔습니다. 3층 계단에서 시신이 발견됐으니, 3층 거주자를 유력한 살해 용의자로 본 것입니다. 바로 앞 301호. 경찰이 수차례 문을 두드렸습니다. 응답이 없었습니다. 바스락 거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경찰은 열쇠공을 불렀습니다. 301호에 있는 사람은 밖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직감했습니다. 문이 열렸습니다. 키가 160cm도 채 안된 조그만 여성이 곧장 밖으로 뛰쳐 나왔습니다. 탈출을 감행하다 경찰에 붙잡혔습니다.

베트남 여성 28살 김 모 씨였습니다. 체포 당시 김 씨는 깨끗한 옷을 입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신발장 부근에 피묻은 망치 2자루가 발견됐습니다. 세탁기에는 혈흔이 묻은 옷이 나왔습니다. 침실에는 8살난 아들이 잠들어 있었습니다. 경찰은 여성 김 씨가 침실에서 남성을 살해한 후, 시신을 복도 쪽에 유기한 것으로 보고 긴급 체포했습니다. 확인결과 베트남 여성 김 씨는 지난 2006년 2월 숨진 김 씨와 혼인신고를 한 상태였습니다.

● 친절하고 성실했던 남편

부인 김 씨는 결혼 뒤, 지난 2011년 5월 한국에 귀화했습니다. 국제결혼을 통해 한국생활을 시작한 것입니다. 숨진 김 씨와 20살의 나이 차가 났습니다. 이 정도 정황이면 유력한 범행 동기로 '가정 폭력'이 추정됩니다. 남편의 악다구니를 버티다 못해, 살인을 감행한 서사입니다. 경찰도 수사의 초점을 가정 폭력에다 맞췄습니다. 하지만 의외로 정황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주변인 진술을 조사했는데, 남편 김 씨는 좋은 인상에 성실한 사람이었다는 다수의 증언이 나왔습니다. 김 씨는 음식적 배달업을 하며 생계를 꾸려왔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또 전처와 살면서 낳은 20대 아들 딸과도 좋은 관계를 유지해 왔던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오히려 부인 김 씨가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어 보였다는 주민의 넋두리가 이어졌습니다.

직접만난 이웃 주민은 김 씨가 일주일에 두 세번씩 새벽에 고성을 지르고, 술에 취한 채 복도에 나와 누워있는 등 기행을 자주 보였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김 씨의 별난 행동으로 주민 여럿이 피해를 봤고, 오히려 상황을 수습하는 남편의 모습이 가여웠다고 말했습니다.
가정 폭력 캡쳐_6

● 3건의 112 신고…가정폭력 정황 없어

경찰은 가정 폭력관련 112 신고 내역을 조회했습니다. 지난해 12월부터 최근까지 총 3건의 신고가 확인됐습니다.

첫 번째는 지난해 12월, 부인 김 씨가 새벽까지 시끄럽게 음악을 틀자, 원룸 윗층 주민이 경찰에 신고한 건이었습니다. 두 번째는 지난달 9일 밤 부인이 문을 열어주지 않자, 남편 김 씨가 경찰에 문 개방을 요청했습니다. 마지막은 지난 4일 접수 건입니다. 부인 김 씨가 소리를 지르며, 이웃집 대문을 두드리기 시작했습니다. 남편이 부인을 말렸고, 소란 때문에 밖을 서성이던 주민에게 남편이 신고를 부탁한 건이었습니다. 가정 폭력의 정황은 없었습니다.

● 1년 간의 베트남 체류

체포 후 부인 김 씨는 경찰 조사를 거부했습니다. 김 씨가 한국말이 서툴어 통역사를 부를 시간도 필요했습니다. 경찰은 숨진 김 씨의 20대 아들을 경찰서로 불러 진술을 받았습니다. 아들 김 씨와 베트남 부인은 종종 교류를 해왔었습니다. 아들은 피의자 김 씨가 지난 2013년 1월부터 2014년 1월까지, 베트남에 1년간 체류한 뒤 한국으로 돌아온 이후 이상해졌다고 말했습니다.

경찰은 부인 김 씨의 출입국 내역을 조회해, 1년간 베트남 체류가 있었던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숨진 김 씨 역시 생활고에 시달리자 부인이 베트남에 좀 더 오래 체류했으면 했다는 뜻을 비췄다고 합니다. 우여곡절끝에 부인은 지난해 1월 한국에 들어왔고, 3개월 뒤 시흥의 한 다문화지원센터의 도움을 받아 한 차례 정신과 진료를 받았습니다. 돈이 없어 입원 치료를 못 받고, 일주일간 약물치료 받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경찰은 향수병과 생활고, 그로인한 정신질환을 유력한 범행 동기로 보고있습니다.
그래픽_모녀살해 가

● 단순히 '묻지마 살인'으로 규정할 수 있을까

16일 살해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피의자 김 씨에 대한 영장실질심사가 열렸습니다. 김 씨는 여전히 입을 열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경찰은 김 씨를 구속시킨 뒤, 보강 수사를 통해 여죄를 조사할 예정이지만 여의치 않을 것이라 털어놨습니다. 이번 사건을 '묻지마 살인'으로 규정할 수 있을까요? 똑 떨어지는 규정은 아닐 겁니다. 김 씨의 살해동기는 명확히 규명 돼, 엄중한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멀쩡했던 부인이 왜 갑자기 정신질환을 앓게 됐는지 궁금했습니다. 또 말도 통하지 않고, 문화도 달랐던 8년 간의 한국생활을 홀로 감당하기에는 버거웠지 않았을까하는 측은함이 들었습니다. 생활고까지 겹친 냉혹한 현실 앞에 스스로 자제력을 잃고 모든 것을 놓아버린 게 아닐까 생각됩니다. '베트남 여성 김 씨가 망치를 들게된 이유'에 더욱 마음이 가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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