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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때리고 성폭행까지'…호신술 배우는 가정부

[월드리포트] '때리고 성폭행까지'…호신술 배우는 가정부
그날 밤, 인도네시아 출신 가정부는 고용인의 아파트 거실에 놓인 이층 침대에서 자고 있었다. 침대는 식탁과 TV로 둘러싸여 있었다. 지난 한 달 동안 주인집 거실이 그녀의 침실이었다. 누군가 자신의 옷 안으로 손을 넣고 더듬는 기척을 느낀 그녀는 잠에서 깼다. 수족관의 흐릿한 불빛으로 자신의 침대 옆에 고용인의 남동생이 서 있었다.

“왜 이러세요?” 그녀는 황급히 이불을 끌어당겼다. 남자는 씨익 웃으며 아무 말 없이 사라졌다. 이후 7주 동안 남자는 비좁은 아파트 안에서 그녀를 졸졸 따라다니며 호시탐탐 기회를 노렸다. 남자는 주방에서 그녀를 성추행하고 욕실에서 성폭행했다. 18평 남짓한 아파트에는 5명이 살고 있었다. 체구가 자그마한 그녀는 작은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나는 동물 취급을 받았다. 그 남자의 아내 노릇을 했다. 남편과 아이들 볼 낯이 없다”

- 지난해 10월15일 월스트리트 저널 기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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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의 면적은 대략 1,100제곱킬로미터로 서울 강북 정도의 크기입니다. 인구는 7백만입니다. 이처럼 그리 크지 않은 홍콩에서 일하는 외국인 가정부는 지난해 기준으로 32만 5천명이나 됩니다. 홍콩에는 맞벌이 부부가 대부분이기 때문입니다. 3인 가구를 기준으로 한다면 대략 일곱 집에 한 집 꼴로 외국인 가정부가 있는 셈입니다. 외국인 가정부들은 인도네시아나 필리핀 등 인근 동남아시아 국가 출신들입니다.

이들의 평균 월급은 우리 돈으로 2백만 원 선입니다. 자국에서 벌 수 있는 돈의 몇 배, 혹은 수십 배다 보니 상당한 비용을 써가며 홍콩까지 돈 벌러 옵니다. 받는 월급은 많지만 홍콩 오기 위해 미리 쓴 돈을 갚고 목표했던 목돈을 모으려면 '사모님, 사장님' 들의 비인간적인 대우도 참고 견디는 수밖에 없습니다. 홍콩 외국인 가정부들이 받아들여야하는 좀 특별한 조건이 있습니다. 홍콩 법상 외국인 가정부는 반드시 고용인의 집에 입주해야 합니다. (홍콩인 파트타임 가사도우미의 일자리를 보장하기 위한 분리 정책이라고 합니다.)

주택이 포화상태라 집들이 비좁은 홍콩에서 가정부들은 주방이나 거실 한 구석에서 자야 합니다. 툭하면 욕설에 손찌검은 물론 몽둥이나 자전거 체인 같은 흉기로 때리고 뜨거운 다리미를 집어던지는 못된 고용인과 살아야 한다면 지옥이 따로 없을 겁니다. 해외여행 떠나면서 가정부의 목에 쇠사슬을 채워 개처럼 묶어두고 간 막 되먹은 사모님도 있습니다. 탐욕스런 사장님(남성 고용인)으로부터는 추잡한 성희롱이나 성폭행 위협을 받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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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인들의 외국인 가정부 학대는 상당히 심각한 수준입니다. 홍콩 인권 단체인 ‘이주노동자를 위한 미션’이 외국인 가정부 3천명을 조사한 결과 58%가 욕설을 듣고 살며 18%가 육체 폭력을 당했다고 답했을 정도입니다. 유명인들도 예외가 아닙니다. 홍콩 4대 천왕으로 불리던 인기 배우 장학우는 3년간 21명의 필리핀 가정부를 갈아치운 것으로 악명높고 왕가위 감독은 인도인 가정부를 학대했다가 구설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신고하면 될 것 아니냐구요? 그게 쉽지가 않습니다. 학대를 못 참고 경찰에 신고하면 사건이 마무리 될 때까지 다른 일을 할 수 없습니다. 경제적 손실이 엄청나죠. 광둥어가 서툰 터라 소송을 진행하기도 어렵습니다. 이렇다보니 웬만하면 그냥 꾹 참고 견디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외국인 가정부들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한 홍콩의 사법제도나 부당한 행정관행에도 불구하고 용기 있게 나서는 이들이 있습니다. 지난해 1월 인도네시아로 귀국한 23살의 인도네시아 가정부는 홍콩인 고용인에게 4년 동안 학대당했던 증거 사진들을 인터넷에 공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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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과 온 몸이 시퍼렇게 멍든 사진들과 각종 폭행 도구들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는데도 홍콩 법원은 피고인 홍콩 고용인 부부에게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홍콩의 수많은 가정부들은 물론 이들의 인권 보장을 요구하는 인권운동가들이 부당함을 주장하면서 국제적인 이슈로 부각됐습니다. 학대 사진을 공개한 그녀는 지난해 타임 선정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인물 100인’에 선정됐습니다. 국제 여론의 따가운 시선을 의식했던지 그제 재심에서 홍콩 법원은 고용인 부부의 학대 사실을 인정하고 유죄 판결을 내렸습니다. 인권운동가들은 가정부들의 입주 의무 규정부터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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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법적인 호소 뿐 아니라 자신을 지키기 위한 가정부들의 다른 노력도 있습니다. 아직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까운 게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홍콩 빅토리아 공원에는 요즘 '펜칵 실랏'이라는 인도네시아 전통 호신술을 배우는 인도네시아 출신 가정부들이 자주 눈에 띕니다. '펜칵 실랏’은 국내영화 ‘아저씨’에서 원빈이 선보였던 살상 무술로 손에 잡히는 모든 것이 무기이며 절제된 몸짓이 특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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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이 가정부들이 호신술 연마에 힘쓰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수시로 손찌검을 하고 몽둥이를 휘두르는 사모님들에게 맞서겠다는 겁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이슬람의 샤리아 율법에 따라 부당한 폭력에는 실력 행사로 맞서겠다는 선전포고인 셈입니다. 자신들을 성적노리개쯤으로 생각하는 남성 고용인들의 '낭심'을 곧추세운 앞 발로 겨누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합니다.

이미 전체 인구의 15%가 65세 이상일 정도로 홍콩의 고령화는 심각합니다. 2040년이면 30%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됩니다. 앞으로 더 많은 홍콩인들이 외국인 가정부에게 의지할 수 밖에 없습니다. 가정부를 하인이나 노예쯤으로 여겨왔던 기존의 비뚤어진 악습에서 하루 빨리 벗어나 그들에게 정당한 인격적인 대우를 보장하지 않는다면 홍콩인들의 삶은 더 외롭고 고단해질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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