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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ISU, 4대륙 피겨 '플래카드 엄격 통제'…왜?

플래카드 '사전검열' 논란…주최 측 배려가 아쉽다

[취재파일] ISU, 4대륙 피겨 '플래카드 엄격 통제'…왜?
오늘 개막하는 4대륙 피겨 선수권대회를 앞두고 한 장의 사진이 인터넷 커뮤니티를 뜨겁게 달궜습니다. 위 사진에는 보시다시피 파란 플라스틱 통에 ‘팬 배너 제출함’이라는 문구가 붙어있습니다. 응원 플래카드(팬 배너)를 미리 제출하라는 용도로 비치해둔 건데, 이에 피겨 팬들 사이에서 ‘배너 사전 검열’ 논란이 일었습니다.

주최 측인 국제빙상연맹(ISU)은 다음과 같은 안내 문서(아래 사진)도 함께 내걸었습니다. 문서에 따르면 ‘이번 대회 기간에 ‘승인되지 않은(unapproved)’ 플래카드를 경기장에 반입하는 것은 엄격하게 금지한다(Strictly prohibited)’고 되어 있습니다.

이어 모든 플래카드는 주최측의 ‘사전 승인(Pre-approval)'을 받아야 하며, 그렇지 않은 플래카드가 경기장 안에서 발견될 경우 ‘몰수된다(it will be confiscated)’고 안내했습니다. 더불어 문서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사전 제출한 플래카드는 검토를 거친 뒤, 부착 장소와 개수까지 ISU에서 지정한다고 합니다.
강청완 취재파일
대회 전부터 미리 경기장을 찾았던 팬들은 분노했습니다. 주최 측이 플래카드 반입을 금지하고, 사전 검열할 권리가 있는지 논란이 일었습니다. ‘표현의 자유’부터, ‘러시아 음모론’도 나왔습니다. 일부 팬들은 소치 올림픽 때 김연아가 억울하게 금메달을 놓쳤다는 내용이나 국제빙상연맹을 비방하는 내용이 있을까봐 주최 측에서 지레 몸을 사린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이번 대회가 소치 올림픽 이후 오랜만에 국내에서 열리는 국제대회라는 점에서, 이 주장은 상당히 설득력을 얻고 있습니다. 또 이런 전례가 없었다는 것도 논란을 부채질합니다. 정확한 규정은 없었던 것으로 확인됐지만, 우리 팬들은 그동안 숱한 국내외 대회에서 김연아 선수와 관련한 응원 배너를 많이 봐왔습니다. 중계화면으로도 심심찮게 잡혔습니다. 그런데 ‘왜 하필’ 이번 대회에서 그러냐는 것이죠.

취재 결과 사정은 이랬습니다. 대회 일주일 전쯤, ISU에서 파견된 외국 국적의 대회 코디네이터가 현장인 목동 아이스링크를 실사했습니다. 그런데 이미 그 당시부터 걸려 있던 한 응원 플래카드’를 발견했습니다. 국내 남자 피겨 선수들을 응원하는 배너였습니다.

이 코디네이터를 비롯해 관계자들은 배너를 보고 꽤 놀랐다고 합니다. 그 당시는 대회를 준비하느라 일반인의 출입을 통제하고 공사에 한창일 때였는데 “도대체 언제 들어와서 이걸 붙였나” 하는 게 관계자들의 반응이었습니다. 경기장 보안이나 통제와 관련한 문제부터 코디네이터가 다시 검토를 하기 시작했고 얼마 뒤 대회를 주관하는 대한빙상연맹 쪽에 위와 같은 ‘배너 관련 지침’을 전달했다는 게 빙상연맹 관계자의 설명입니다.

알려졌다시피 이번 대회는 국제빙상연맹(ISU)이 주최하고, 대한빙상연맹이 주관합니다. 대회 전반에 관한 규정이나 운영은 상위 기관인 ISU의 지침에 따라야 합니다. 이런 전례나 규정이 있나 취재해 본 결과, 이번 조치는 ‘주최 측의 재량’에 해당한다는 게 공통된 해석입니다. 책임자가 대회 운영에 있어 여러 가지 특수성을 감안, 필요한 조치를 현장에서 취할 수 있고 이를 주관사에 전달할 수 있습니다.
피겨김연아플래카드
하지만 절차적으로 문제가 없다 하더라도, 주최국인 국내 팬들의 정서를 고려하지 않았다는 비판은 피할 수 없어 보입니다. 국내 피겨 팬들에게 ‘응원 플래카드’(팬 배너라고 불리지만 편의상 통일합니다)는 널리 공유되어 온 하나의 ‘문화’에 가깝습니다. 팬들은 이 플래카드를 통해 좋아하는 선수와 교감하고, 선수들도 힘을 얻습니다. ‘경기장 미관’을 이유로 반입을 통제한다는 설명은 충분하지 않습니다.

그 절차와 방법에도 아쉬움이 남습니다. 플래카드 사전 승인을 받기 위해서는 적어도 경기 전날, 주최 측에 제출해야 합니다. 위 사진에 있는 파란 통에 말이죠. 대회를 보기 위해 당일 지방에서 올라오는 팬들은 방법이 없습니다.

사소한 부분이지만, 저 ‘파란 통’도 좀 아쉽습니다. 해당 플라스틱 통은 주로 ‘쓰레기통’으로 많이 쓰입니다. 실제로 많은 팬들이 ‘쓰레기통’으로 표현하고 있고 이 때문인지 ‘모아서 폐기한다’고 인식하는 팬들도 많습니다. 폐기 여부를 떠나 정성껏 만든 플래카드와 손 배너를 파란 통에 넣는 팬들의 마음은 썩 좋지만은 않을 겁니다. 디테일이 아쉬운 경우입니다.

예전에 한 피겨 팬에게 응원 플래카드와 관련한 사연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밤을 새가며 응원 플래카드를 손수 만들었고 김연아 선수가 참가하는 유럽의 국제 대회에 직접 들고 갔다는 사연이었습니다. 크기가 꽤 컸던지라 비행기를 탈 때부터, 내려서 입국심사를 통과할 때까지 무진장 고생을 했답니다.

중간에 손상이 돼서 그 먼 타지에서 재료를 구해가며 다시 수선하느라 유럽 구경은 하나도 못했고, 경기 당일 내걸었을 때는 감동스러워 눈물이 나더랍니다. 팬들에게 응원 플래카드는 단순한 배너 이상의 의미를 지닙니다. 

반입을 통제한 ‘진짜 이유와 배경’이 따로 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자두나무(*오얏나무의 표준말) 아래서 갓끈 고쳐 매지 말고, 오이 밭에서 신발 끈 매지 말라’는 우리 속담도 있습니다. 당장 오늘부터 열리는 대회에서 팬들과 통제 요원들 사이에 실랑이가 생길 가능성도 충분히 있습니다. 팬들이 납득할 수 있는 설명과, 대회 위상만큼 성숙한 배려가 필요해 보입니다.

* 취재를 도와주신 디씨인사이드 피겨갤러리 유저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8뉴스] 4대륙 피겨 플래카드 엄격 통제…팬들 불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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