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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국회의원들이 '친인척 보좌관'을 채용하는 속사정

[취재파일] 국회의원들이 '친인척 보좌관'을 채용하는 속사정
● 나랏돈으로 친인척에게 월급 주는 의원님들

기자들이 자주 보는 국회 수첩에는 의원실에서 일하는 보좌직원들의 이름과 연락처가 나와 있습니다. 하지만 올해 초 박윤옥 의원실에 근무하는 4급 보좌관 문 모씨가 사실 이 모 씨라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이 씨는 박 의원의 친아들이었습니다. 아들이 보좌관 행세를 하며 피감기관 직원들에게도 자신이 문 보좌관이라고 소개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가짜 왕이 진짜 왕 노릇을 하는 영화 광해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은 느낌입니다.

새정치연합 백군기 의원도 얼마 전 의붓아들이 5급 비서관으로 근무했던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의붓아들의 성이 달라 주변에서 잘 몰랐는데 최근에 소문이 나면서 언론에 보도가 됐습니다. 이 의붓아들은 처음에는 7급 비서로 들어왔다가 승진을 거듭해 5급 비서관이 됐습니다. 의붓아들의 직급을 아버지가 정해줬고, 급수가 올라갈 때마다 월급은 당연히 올라갔습니다.

나랏돈으로 친인척에게 월급을 줬던 의원들은 더 있습니다. 19대 국회의 경우만 보더라도 새누리당 송광호 의원도 5급 비서관에 딸을 채용했었고, 새정치연합 민홍철 의원도 외가 친척 2명을 각각 6급, 7급 비서로 쓴 바 있습니다. 

● "그렇게 하면 안 된다는 법이 없었다"…의원님의 해명

'대포 아들', '차명 아들'이라는 말까지 나왔던 박윤옥 의원에게 여러 차례 전화를 걸어봤지만 해명을 들을 수는 없었습니다. 외부에서 강연을 하고 있다는 말만 하고는 전화를 끊은 뒤 아무리 전화를 걸어도 받지 않았고, 전화가 오지도 않았습니다.

다만 사건이 발생한 직후 일부 언론에 자신의 아들을 1월부터 보좌관으로 등록하는 과정에서 벌이진 일이라는 취지로 해명했다는 것만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자신의 아들은 능력이 있기 때문에 채용하는 게 문제가 없다는 취지의 해명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들의 정확한 경력은 어떻게 되는지, 다른 사람 행세를 한 이유가 뭔지, 왜 아들을 채용할 생각을 했는지 등 궁금한 사항에 대해 알 길이 없었습니다. 박 의원은 빨리 시간이 지나 이번 사건이 잠잠해지기를 바라는 눈치였습니다.

새정치연합 백군기 의원은 전화를 걸어보니 자세한 해명을 했습니다. 의붓아들은 자신의 호적에 이름을 올린 사이가 아니었고, 5급 비서관이지만 정책 관련 업무를 하기 보다는 하루 종일 자신을 수행하면서 운전을 했다고 말했습니다.

외부 활동이 많은 국회의원의 운전기사는 워낙 힘들기 때문에 직급이 낮으면 아무도 일을 하지 않는다고 설명했습니다. 게다가 의붓아들은 자신이 의원이 되기 전부터 운전을 해줬는데, 일찍 나가 늦게 들어오는 상황에서도 덜 미안했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국회에서 친인척을 채용하면 안 된다는 법이 있으면 아예 일을 시키지 않았을 텐데, 그런 게 없었다고 억울해했습니다.

● 채용도 해고도 의원님 마음대로

 전문계약직 공무원의 경우 채용할 때 가급, 나급, 다급, 라급 별로 자격 기준을 상세하게 규정해놨습니다. 학위 취득 여부와 관련 분야 종사 기간까지 깐깐하게 규정돼 있습니다. 하지만 별정직인 국회 보좌직원들은 이런 규정이 없습니다. 의원 재량으로 채용이 가능합니다.

또한 해고할 때도 의원 마음대로 할 수 있습니다. 카카오톡 메시지로 해고 통지를 받았다는 소문부터 의원의 부인이 꼬투리를 잡고 나가라고 해서 바로 짐을 쌌다는 말까지 국회 보좌진의 '해고 잔혹사'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국회 보좌진 대다수는 관련 분야에서 상당한 전문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회의 때 보좌진들이 써준 원고를 그대로 읽는 의원도 상당수이고, 상임위에서는 아이템 발굴부터 질의서까지 보좌진 없이 아무 것도 못하는 의원도 있습니다. 오죽하면 기자들끼리는 '똑똑한 보좌관 한 명이 열 의원 안 부럽다'고 말할 정도입니다.

하지만 채용과 해고는 의원에게 전권이 있기 때문에 마음만 먹으면 업무 능력과는 상관 없이 은근슬쩍 자신의 친인척을 끼워넣는 게 가능합니다. 4급 보좌관의 연봉이 7천2백만 원 수준이고, 5급 비서관도 6천3백만 원 수준이니까 세금으로 의원의 가계 경제에 보탬을 주는 데 이보다 좋은 방법은 많지 않아 보입니다.

● 국회의원의 친인척 채용 제한이 없는 국가, 대한민국

국회입법조사처가 지난 2012년 다른 나라 의회에서는 어떻게 보좌진을 채용하는지 조사를 해봤습니다. 미국은 배우자는 물론, 직계존비속, 4촌 이내 혈족 등 친인척 채용을 원천적으로 금지했습니다. 일본은 의원 본인의 배우자를 채용할 수 없었고, 영국은 배우자나 4촌 이내 혈족 가운데 단 1명만 채용이 가능했습니다. 프랑스는 채용을 하더라도 급여를 절반 수준으로 줘야하고, 독일은 친인척을 채용하면 돈을 못 주게 돼 있습니다.

의회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나라 가운데 국회의원의 친인척 채용에 제한이 없는 곳은 대한민국이 유일하다는 얘기입니다.

● "보좌진 잘못 채용하면 패가망신"…피붙이만 믿을 수 있다?

 의원실에 의원과 혈연으로 연결된 보좌직원이 들어오면 급수에 상관없이 막강한 권한을 갖게 된다고 합니다. 의원실의 오너인 국회의원의 분신 같은 존재이기 때문에 선임 보좌관들도 쩔쩔 매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렇게 채용된 친인척은 의원이 정말 믿는 사람에게만 맡길 수 있는 업무를 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정치자금을 담당하는 업무를 하거나 외부에 노출돼서는 안 되는 일을 맡겨 조용히 일을 처리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운전 업무도 의원의 동선은 물론 차안에서 하는 통화까지, 사생활이 모두 노출되는 것이어서 친인척이 맡게 되면 더 믿을 수 있다고 합니다.

얼마 전 1심에서 당선 무효형에 해당되는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던 새누리당 박상은 의원은 보좌진의 폭로로 문제 행위가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임금 착취를 당한 전 비서는 국회 앞에서 1인 시위를 했고, 특별보좌관은 월급을 건설업체에서 대납했다고 폭로했습니다. 운전기사는 박 의원의 가방을 검찰에 통째로 넘기기도 했습니다. 아무리 슈퍼갑인 국회의원이라도 해도 보좌진들이 집단으로 등을 돌리면 당해낼 재간이 없습니다.

이를 두고 일부 국회의원들은 비밀을 공유하는 사람을 제대로 못 써서 패가망신했다고 지적하기도 합니다. 은밀한 일을 믿고 맡기겠다고 하면 피붙이만한 사람은 없다는 겁니다. 게다가 나랏돈으로 월급까지 주니 일석이조입니다. 이런 일부 의원들에게 보좌진은 의정활동의 파트너라기 보다는 구린 비밀을 공유하는 집사에 불과합니다.

● 선거 때 정산이 덜 끝난 사람에게 주는 낙하산 채용 특혜도 문제

국회 보좌진들은 국회의원의 친인척 채용 못지않게 낙하산 특혜 채용도 문제라고 입을 모읍니다. 변변한 이력도 없이 뜬금없이 의원실에 채용되는 보좌직원이 있는데, 이런 경우 의원이 선거 기간에 신세를 진 사람의 자녀들인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합니다. 의원실 근무 경력은 그 자체로 스펙 쌓기이기 때문에, ‘선거 정산’이 덜 끝난 사람에게 의원들이 신세를 갚는 좋은 방법이기도 합니다.

게다가 이런 경우는 외부에 잘 드러나지도 않습니다. 경력이 워낙 형편없어서 의심이 가기는 하지만, 의원이 자기가 보기에 좋아서 뽑았다고 우기면 할 말이 없습니다. 단지 이렇게 형편없고 황당한 보좌직원이 의원회관에 있다는 소문으로만 알려질 뿐입니다.

● 친인척 채용 금지하고, 자격 요건 구체화해야

 이미 우리 국회에는 국회의원 친인척을 보좌직원으로 채용할 수 없게 하는 법안이 발의된 상태입니다. 지난 2012년 새누리당 윤상현 의원과 새정치연합 박남춘 의원이 각각 발의한 법안인데, 국회의원과 배우자의 4촌 이내 혈족의 채용을 못하게 하는 걸 주요내용으로 하고 있습니다. 다만 박 의원의 법안은 다른 의원실에서 4년 이상 경력을 쌓으면 전문성을 인정해 채용 가능하게 예외 규정을 둔 게 차이일 뿐입니다.

하지만 이 법안들은 소위에서 논의조차 된 적이 없습니다. 그냥 상임위에 상정만 된 상태로 언제 논의가 될지 기약조차 하기 어렵습니다. 법적으로 이런 문제를 명확히 하지 않고, 의원이 친인척 보좌직원을 몰래 채용했다가 외부에 알려지면 슬그머니 사표를 받는 방식은 분명 정상이 아닙니다. 어느 국민이 세금으로 아들딸을 채용하는 국회의원을 용납할 수 있겠습니까. 애써 외면하기보다는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면 법으로 명확하게 안되는 건 안 된다고 규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국회 보좌직원의 자격 요건도 지금보다 구체화해야 합니다. 최소한의 근무 경력과 자격 요건 규정도 없이 의원 마음대로 모든 보좌직원을 채용하게 되면 뜬금없는 낙하산 보좌진이 남발될 우려가 있기 때문입니다. 선거 기간에 신세진 사람에게 나랏돈으로 신세 갚는 걸 용인할 국민은 없을 겁니다.

국회의원들이 보좌진을 세금으로 채용할 수 있는 있는 단 한 가지 이유는 피 같은 세금만큼 의정활동을 제대로 하라는 데 있다는 것을 새겨봐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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