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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터키로 떠난 김 군의 새벽은 어떤 색이었을까?

[취재파일] 터키로 떠난 김 군의 새벽은 어떤 색이었을까?
공무원인 아빠는 술 약속 대신 일찍 귀가해 저와 동생, 엄마와 둘러앉아 식사하는 것을 좋아하셨습니다. 거실 탁자에 엄마가 만든 음식을 옮겨다 놓고 TV를 보며 밥을 먹는 게 우리 가족이 하루를 마감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식사 후 방으로 돌아와 숙제를 하거나 시험 공부를 하고 있노라면 엄마가 과일을 깎아 주시거나 따뜻한 차와 홍삼액을 가져다 주시기도 했습니다. 저녁 자습은 자정을 훌쩍 넘겨 이어지곤 했는데, 그때 쯤이면 모두들 잠자리에 들고, 아파트엔 숨막히는 고요가 흘렀습니다. 그리고 그 새벽이 저에겐 학창 시절을 추억하면 가장 선명히 기억나는 순간입니다.

적막이 흐르는 방 안에서 문제집을 덮고 나면 두 가지 생각이 함께 들었는데, 그건 "아늑하다"와 "하지만, 어디든 좋으니 도망하고 싶다"였습니다. 미성년자라 술을 마실 수도 없고, 밤 늦게 이성 친구와 놀 수도 없었습니다. 아무런 자유도 허락되지 않은 채 할 수 있는 일탈이라곤 새로 나온 팝가수 CD 사는 것 정도인데, 지금 마주한 괴로움(시험 성적, 과제 스트레스)을 견디는 방법이라곤 '먼 훗날 얼마나 멋있는 삶을 살고 있을 것인가'를 상상하는 것 뿐이었습니다.

그런 시간을 겪지 않고 갑자기 성인이 된 것 처럼 잊고 지내지만, 우리 모두 학창 시절 10대야 말로 얼마나 연약하고 순수하고, 하지만 위태로운 존재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대학만 가 봐, 대학 가서 놀아'로 어르고 달래는 것도 한계가 있지, 숨 막히는 10대들의 매일 매일은 '사투'라고 표현해도 과장이 아닐 겁니다.

터키로 간 김 군은 그 사투조차 벌이지 못했습니다. 친구들이 집- 학교- 학원을 오갈 때, 김 군은 집 한 구석, 자신의 방 안에서 꼼짝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새벽 늦게 동네 PC방을 간 게 전부였습니다. 그 마저도, 한 달에 서너 차례 뿐이었다고 합니다. 경찰이 밝힌 통화기록에 따르면, 김군의 유일한 소통 대상은 하나 밖에 없는 세 살 아래 친동생이었습니다. 중학교 입학 직후 자퇴한 김 군은 검정고시라도 봐야 한다고 걱정하는 부모님과는 잦은 언쟁을 벌였고, 갈등이 깊어지자 대화를 거부했다고 합니다.

김 군이 IS에 가담하기 위해 터키를 거쳐 시리아로 향했다는 기사가 발표가 되고 나서 이틀 간 김 군의 행적을 쫓는 일을 했습니다. 학교를 다니지 않았던 김 군을 기억하는 친구들은 거의 없었습니다. 동네 주민들도 김 군을 조용하고 표정이 어두운 아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김 군의 집 근처엔 기자 20여 명이 진을 치고 서 있었습니다. 사상 초유의 일이 벌어지자 모두들 김 군과 가족에서 그 실마리를 찾으려 했습니다. 어떻게 그런 무시무시한 일을 하려 마음 먹었던 걸까? 김 군은 타자화됐고, 관찰과 분석의 대상이 됐습니다. 김 군에 대한 수사 결과 발표가 시간을 두고 제한적으로 이뤄졌던 것도 언론들이 더 득달같이 달려든 이유였습니다.

제가 취재한 바에 따르면, 김 군의 가정은 지극히 평범한 중산층이었습니다. 김 군의 부모님은 독실한 교인이자 주변 이웃들에게 소박하고 따뜻한 사람이라는 평을 받고 있었고, 자식과 관련한 일이라면 몇날 몇일을 고민해서라도 최선을 다하려는 분들이었습니다. 터키 여행만 다녀오면 마음을 다잡고 열심히 검정고시를 준비하겠다는 아들의 말에, 지인의 지인을 동원해서 동행해 줄 사람을 구할 정도였습니다. 인터넷에선 '어떻게 그런 위험한 지역으로 자식을 보냈느냐'는 댓글도 보이지만, 사실 국경 지역을 제외하고 터키라는 나라는 제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아름다운 여행지로 칭송하는 곳입니다. 신혼여행지로 다녀온 사람도 있고, 한 달 넘게 배낭여행을 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김 군과 함께 다녀온 홍씨는 취재 결과 경기도 일대의 한 교회 목사로 선교활동을 하며 아프리카와 중동 국가를 여러 번 다녀온 경험이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김 군의 부모가 아들과 동행을 안심하고 부탁할 만한 사람이라고 생각할 정황이 충분한 셈입니다.
터키 실종_640
김 군은 외로웠고, 사회적으로 소외돼 있었습니다. 저처럼 수 많은 밤과 새벽을 고요한 적막 속에 보냈겠지만, 다른 것이 있다면, 전 다음 날 아침이 밝아 현관문 밖을 나가면 친구와 선생님, 이웃처럼 교류할 사람들이 있었고 무엇보다 가시화할 수 있는 미래가 있었습니다. 정규 교육이 만들어 놓은 틀 속에서 적어도 몇 년 후의 모습을 그릴 수는 있었던 겁니다. 대학을 가고, 사회에 나가, 누군가의 연인과 가족과 동료가 되는 모습을 어렴풋하게나마 그릴 수 있었습니다. 저의 새벽은 날이 밝으면 학교와 세상을 만나기 위해 자연스레 사라지는 잠시의 어둠이었지만, 김 군의 새벽은 그렇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이번 김 군의 행동을 매우 특수한 한정된 사례, 기행(奇行)이라고만 보기 힘들지 않나 생각합니다. 관련해서 진행한 전문가 인터뷰 일부분입니다.

[이희수/한양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인터뷰]

"IS가 SNS와 슈어스팟과 같은 최첨단 매체를 통해서 상당한 재정적 지원을 해주고 자기 존재감을 심어주겠노라 유혹하기 때문에 지금 3,500명 이상의 유럽 국적 젊은이들이 이토록 극단적인 조직에 몰리는 현상이 나타나는 거겠죠."

"또 IS가 일본과 한국과 같은 아시아의 선진국 젊은이들을 끌어드림으로써 이제 IS가 중동지역의 지역적인 테러 집단이 아니라 글로벌 테러집단으로 약진한다는 어떤 홍보효과를 극대화 하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요즘 한국과 일본에도 IS가 상당히 신경을 쓰고 있죠."

"은둔형 외톨이나 사회적 소외자가 갖는 공통적인 현상이라고 한다면, 어떤 사회적인 네트워크가 필요하고 또, 자기 존재감과 자긍심의 확인에 목말라 하거든요. 부모로부터, 학교로부터, 친구로부터 소외당했을 때 자기의 존재감이 없잖아요. 이럴 때 IS가 상당히 글로벌 영웅처럼 받아들여질 수 있고, 그 속에서 자기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 멋있게 보일 수가 있는 거죠."

"그것이 선이건 악이건 판단하는 것은 두 번째 문제죠. 도덕적인 가치나 선악의 판단 기준보다도 우선 자기가 처해있는 환경에 대한 새로운 돌파구, 모험적인 기회, 그리고 자기의 존재감과 자긍심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하나의 공간으로 IS를 선택한 것이지 정치적인 목표나 도덕적 정당성을 고려하는 건 아닐 테죠."

"IS도 그걸 이용해서 단순히 이슬람 주의자만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전세계의 소외되거나 사회적 저항감을 가지고 있는 분노와 증오의 문화를 활용하고 있고요. SNS나 최첨단 매체를 통해서 전세계 10대들을 끌어모아서 세뇌와 훈련을 통해서 전사로 길러낸다,가 지금 IS가 쓰고 있는 10대 공략의 기본적인 전략입니다. 여러 모로 우리 나라 젊은이들이 노출되기 쉬운 건데요, 사회가 이에 대해 대비하고 조심할 필요가 분명 생겼다는 게 이번 김 군 사건을 통해 얻은 교훈이 될 것 같습니다." 

글을 마치며, 김 군이 무사히 부모님의 품으로 돌아오길 진심으로 빌겠습니다. 그리고, 기자들의 취재 과정에서 상처를 받으셨던 김 군의 부모님께 사죄의 말씀을 드립니다. 어머님 특히, 새벽마다 주셨던 절절한 문자 잊지 않고 있습니다. 꼭 건강 지켜내시고 김 군이 무사히 돌아오기까지 같이 노력하겠으니 힘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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