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취재파일] '문데렐라' 문정원, 새 역사를 쓰다

'20경기 연속 서브 득점'

● 1/19, 장충체육관 개장 첫 경기 GS칼텍스 vs 도로공사,  4세트

도로공사 라이트 문정원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렇게 잘만 들어가던 서브가, 이날만큼은 지독하게 들어가지 않았다. 너무 멀리 날아가 코트를 벗어나거나 네트를 맞고 떨어졌다. 오랜만에 안방에 돌아온 GS칼텍스 선수들도 단단히 독기를 품고 나왔다. 서브가 라인 안에 떨어지도록 도통 내버려두지 않았다. 1세트에서 4세트까지, 문정원이 기록한 서브 범실만 6개였다.

서브가 안 되니까 다른 것도 흔들렸다. 범실만 팀 내 최다인 8개. 풀세트 승부에서 득점은 7점에 불과했다. ‘20경기 연속 서브 득점’이라는 신기록을 의식했는지도 모른다. ‘부진’이었다. 고개를 떨구는 문정원을, 중계 카메라가 당겨 잡았다.

[문정원 : 솔직히 좀, 오늘은 안 되나, 실망했어요.]

그렇게 한 개의 서브도 성공하지 못한 채 맞은 마지막 풀세트, 가장 중요한 승부처에서, 문정원의 서브가 거짓말처럼 터졌다. 초반 기세싸움이 치열하던 3대 3 동점 상황, 호를 그린 채 달려 나가며 왼손으로 때린 서브가 코트 끝자락에 정확히 들어갔다. 순간 장충체육관이 함성으로 가득 찼다. 문정원은 주먹을 불끈 쥐고 환호했다. 그것도 두 번이나, 주먹을 아래로 붕붕 휘둘렀다. 평소에는 보기 드문 ‘격한’ 세리머니였다. 마치 경기 내내 쌓인 마음의 짐을 그렇게 털어내는 것 같았다.

[문정원 : 말로 표현 못할 만큼 기분이 더 좋았던 것 같아요. 평소에 서브를 넣었을 때보다 더 좋았어요.]

문정원의 ‘20경기 연속’ 서브 에이스를 기점으로 승부의 추는 기울었다. GS칼텍스가 또 한 차례 경기를 뒤집었지만 도로공사가 다시 앞섰고, 그대로 경기를 끝냈다. 8연승째. 문정원의 서브 에이스가 천금 같았다. 열다섯 점 단기전인 5세트 초반, 자칫하면 끌려갈 수도 있던 흐름을 기다려왔던 서브 하나로 가져왔다. 경기를 마친 뒤 문정원의 눈가가 촉촉했다. ‘올 시즌 전 경기 연속 서브 득점’이라는 대기록을 세웠지만 그보다는 오랜만의 부진에 더 마음이 쏠렸다.  

[문정원 : 일단 제가 서브가 들어가야 언니들도 편하고 팀이 편한데 오늘은 4세트까지 서브가 들어가지 않아서 좀 많이 힘들었어요.]

이제 더 말이 필요없을 정도로, 문정원은 올 시즌 여자배구 최고의 ‘신데렐라’로 떠올랐다. 이번 시즌 전까지 지난 세 시즌동안 출전한 경기는 교체까지 포함해 17경기에 불과했다. 득점은 모두 더 해 달랑 9점이었다. 그만두겠다고 울음을 터뜨린 적도 있었다. 올 시즌 우연히, ‘서브’로 기회를 잡았고, 놓치지 않았다. 리그 전체 서브 2위에, 퀵오픈 부문에서는 선두로 올라섰다. 이제 9점은 한 경기에서도 그냥 뽑아낸다. 아직 방송카메라 앞에서는 울렁증이 있다지만, 이제 문정원은 “내가 잘해야 팀이 편하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경지에 올라섰다.

이날 경기에서 문정원보다 더 기뻐한 건 장충체육관을 찾은 팬들, 또 대기록에 관심을 갖고 TV로 경기를 지켜본 수많은 팬들이었다. 선수만큼이나 언제쯤 들어가나 기다리던 팬들은 그녀가 주먹을 휘두를 때 다 같이 환호했다. 팬들이 기다리는 건 이렇게 짜릿한 장면이다.

여자 프로배구는 한동안 ‘인물 가뭄’에 시달렸다. 정확히 말하자면 ‘스토리 가뭄’이었다. 원래 잘하는 선수, 익숙한 선수, 어린 기대주는 있었지만 2%가 부족했다. 한동안 여자 배구 주요 이슈는 외국인 선수 활약 여부였다. 올 시즌 초반까지만 해도 여자 배구 화제의 인물은 선수가 아니라 흥국생명 박미희 감독이었다. 이날 하나, 겨우 터진 문정원의 서브 에이스는 ‘왜 문정원인지’ 얘기해주는 장면이었다. ‘무명의 설움’에 ‘비장의 무기’, ‘전무후무한 대기록’까지, 갖출 것 다 갖춘 ‘중고 신인’이, 여자 배구의 새로운 장을 쓰고 있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