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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태아 세포가 엄마에게 이식되는 키메라 현상…그 역할은?

[취재파일] 태아 세포가 엄마에게 이식되는 키메라 현상…그 역할은?
● 키메라(Chimerism)-태아의 세포가 엄마에게 이식된다

사자 머리에 염소 몸통, 뱀 꼬리를 가진 고대 그리스 전설 속의 괴물을 '키메라'라고 합니다. 키메라는 '악의 힘'을 가진 불길한 동물로 묘사되지만, 드물게 발생하는 기이한 생명 현상을 표현한 것으로도 해석합니다.  그래서, 키메라는 과학 용어로 쓰이는데, 한 생명체에서 다른 생명체의 유전자가 발견되는 현상을 말합니다. '콩쥐'의 몸 속 세포에는 오직 콩쥐의 유전자만 있어야 하는데, '팥쥐' 유전자가 간이나 콩팥 같은 일부 장기에서 발견되는 겁니다. 전통적인 의학 법칙을 어긋나는 현상이지만, 키메라 현상은 1990년대부터 학계에 잇따라 보고되고 있는 팩트 입니다.

최근 미국 허치슨대와 워싱턴대 그리고, 시애틀대 공동 연구팀이 여성의 뇌에서 키메라 현상이 있다는 걸 확인했습니다. 여성 뇌에 있는 다른 사람의 세포는 그 여성이 임신했던 태아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논문 제목 : Male Microchimerism in the Human Female Brain. 출처 : PLos one)

연구팀은 사후에 자신의 시신을 연구 목적으로 기증한 사람들 중에서 신경학적 질병이나 치매가 없었던 26명의 여성과 반대로 신경학적 질병이나 치매를 앓았던 33명의 여성의 뇌를 부검해 뇌세포 속 유전자를 분석했습니다. 여성들의 뇌세포에는 Y 염색체가 없어야 합니다.  Y는 성염색체인데, 남성은 XY, 여성은 XX 이기때문입니다. 염색체 질병이 없는 여성이라면 태어났을 때 Y 염색체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실험 대상 여성들은 모두 염색체 질환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유전자 분석결과 59명의 여성 중 37명,  63%의 여성에서 Y 염색체가 발견됐습니다. 염색체 질환이 없는 여성들이기 때문에, 후천적으로 이식된 것이고, 앞선 연구들을 종합해볼 때 태아에서 온 것이라고 연구팀은 설명합니다. 

● 태아의 세포, 어떻게 엄마의 뇌에 갔을까? 
 
태아의 세포가 산모에게 이식될 수 있다는 건 18년 전인 1996년 미국 하버드대학이 처음으로 밝혀냈습니다. 20명의 여성을 대상으로 혈액 검사를 한 것인데, 임신 했을 때 아들에게서 온 세포가 출산 이후 27년 동안 엄마의 혈액에 남아 있다는 게 확인된 겁니다. (논문 제목 : Male fetal progenitor cells persist in maternal blood for as long as 27 years postpartum. 출처 : Medical Scinece) 

이 하버드대학의 연구 이후 많은 후속 연구에서 태아의 세포가 엄마에게 이식되는 사실이 확인됐습니다. 태아에게서 유래된 세포가 엄마의 자가면역질환에 관여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들이 속속 이어졌고, 엄마의 유방암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연구들도 발표됐습니다. 

하지만, 태아의 세포가 엄마의 뇌에까지 이식된다는 사실이 밝혀진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뇌에는 강력한 혈관-뇌- 장벽(BBB, Blood-Brain-Barrier)이 있어서 외부 세포나 바이러스의 침투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태아에서 온 세포도 엄마의 혈관-뇌-장벽을 뚫을 수는 없다고 생각해왔습니다.

그런데, 그 예상을 깨뜨린 겁니다. 연구팀은 냄새를 맡는 후각 신경을 중요한 경로라고 추정했습니다. 후각 신경은 미세먼지가 뇌 속에 직접 침투하는 통로로도 주목받고 있습니다.  후각 신경은 가지는 뇌 밖에 있으면서 그 뿌리가 뇌 안으로 들어가 있는 해부학적 특징이 있기 때문입니다.

● 키메라의 역할…아들과 딸은 같을 것이다. 

엄마의 뇌 속에 있는 태아의 세포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 아직 명확하지 않습니다. 다만, 이번 연구에서 그 기능을 가늠할 수 있는 초기 단서 정도가 나왔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연구팀은 신경학적 질환이나 알츠하이머 치매가 없는 여성과 반대로 신경학적 질환이나 치매가 있는 여성을 나눠서 검사를 했는데 두 그룹 간의 차이가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신경학적 질환이나 치매가 없는 그룹에서 질환이 있는 그룹보다 태아에 유래한 세포의 양이 47% 나 더 많았습니다. 이를 두고 연구팀은 두 가지 해석을 했습니다. 

치매는 남성보다 여성에게 더 많은데, 이 때문에 남성의 Y 염색체가 뇌를 보호하는 기능이 있을 것으로 보는 학자들이 있습니다. 연구팀은 이 학자들이 주장하는 가설을 인용해서 엄마 뇌 속에 있는 태아의 Y 염색체가 엄마의 뇌세포를 보호할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 첫 번째 해석은 아들을 둔 여성에게는 듣기 좋지만, 딸을 둔 여성에게는 서운합니다. 하지만, 많은 학자들은 이 첫 번째 해석에 무게를 두고 있지는 않습니다.

연구팀의 두 번째 해석은, 엄마에게 이식된 태아의 세포가 줄기세포처럼 엄마의 몸 속에 남아있다가 엄마의 세포가 손상되었을 때 이를 회복시키는 역할을 한다는 겁니다. 아들이든 딸이든 태아의 세포는 엄마에게 이식되고, 치료 세포 기능을 담당한다는 설명입니다. 다만, 지금의 기술로는 같은 XX 성염색체를 지닌 엄마와 딸의 세포를 구분할 수 없어서 딸의 키메라 현상을 발견 못했을 뿐이라는 겁니다. 

두 번째 해석이 더 많은 학자의 지지를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모두 가설입니다. 엄마의 뇌 속에 있는 태아의 세포가 어떤 기능을 하는지 성급하게 말할 수 없습니다. 다만, 분명한 사실은 임신이라는 과정을 통해 태아는 받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엄마에게 무언가를  주고 있다는 겁니다.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지금까지는 긍정적인 방향일 것이라고 추정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 논문을 읽은 후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태어난 후 성장하는 데에 가장 중요한 사람이 엄마라는 걸 태아는 알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이건 임신과 출산을 통해 인류를 이어나가게 하는 여성에게 신이 배려한 선물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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