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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피노키오'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피노키오 가이드북 ①

[취재파일] '피노키오'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SBS 드라마 ‘피노키오’의 인기에 힘입어 ‘기자들은 정말 그렇게 사느냐’고 묻는 분들이 늘었습니다. 대본을 쓴 작가들이 SBS 기자들을 꽤 오랜 기간 밀착마크(?)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더 그런 것 같습니다. 의학이나 법학 드라마에 나오는 전문용어만큼이나 기자들끼리 쓰는 은어를 궁금해 하는 분들도 많은데요, 다음 대화를 한 번 보실까요.

"라인에 빨대 한 명 없이 도꼬다이하는 거 보면 말진이 꽤 능력 있나 봐? 마와리를 열심히 도는 건가?"

"수습 때 하리꼬미하면서 물 먹는 일도 얼마 없었어. 자기들끼리 풀(pool)하는 것 같지도 않았는데.“

도대체 어떤 맥락에서 나온 대화일까? 생소한 단어가 대부분일 텐데요. 기자들, 특히 사건팀 기자들 사이에선 자주 사용하는 단어들입니다. 이참에 하나씩 설명하는 기회를 가져볼까 합니다. 드라마를 더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가이드북이라고 생각하시면 좋을 것 같네요. 첫 번째, ‘라인’입니다.

● (1) 라인 / "우리 라인만 아니면 돼" - 철저한 라인 속지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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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노키오 속 주인공 4명, 최달포, 최인하, 서범조, 이유비는 모두 ‘한강 라인’의 수습기자입니다. 한강 라인은 사건도 많이 발생하고 1진 기자들(나중에 설명하겠습니다)이 무섭기로 유명해 수습(기자는 생략하겠습니다. 저희는 주로 '수습'이라고 부르거든요)들이 꺼리는 곳으로 묘사되는데요, ‘라인’은 무슨 뜻일까요?

서울엔 총 31개의 경찰서가 있습니다.(길 가다 자주 마주치는 지구대나 파출소와는 다른 '서'입니다.) 라인은 이 31개 경찰서를 효율적으로 취재하기 위해 임의로 나눈 일종의 ‘구역’인 셈입니다. 언론사 별로 다르지만, SBS 사건팀을 기준으로 보자면 서울시내 경찰서 31개를 나누는 라인은 크게 6곳입니다. 참고로 전, 관악라인 기자입니다. ^^

강남(강남,서초,수서,송파,광진,강동,성동)라인, 영등포(영등포,구로,양천,강서)라인,
마포(마포,서대문,서부,은평,)라인, 종로/중부(종로,종암,성북/중부,남대문,용산)라인,
혜화/도봉(혜화,강북,중랑,동대문/도봉,노원)라인, 관악(관악,금천,동작,방배)라인.

재미있는 사실은, 드라마에 나오는 한강 라인이 실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보통 그 라인에서 규모가 가장 크거나 중요한 사건이 많이 발생하는 경찰서 이름을 따라 라인이름을 정합니다. 한강라인이라고 하면 한강경찰서를 포함해 근처 경찰서 3~4군데를 일컬을 텐데, 서울시내 어느 곳에도 한강경찰서라는 곳은 없죠. 그래서인지 드라마를 자세히 뜯어보면 경찰서 1층 로비 장면은 마포경찰서와 노원경찰서에서 번갈아 찍더군요. 외경으로 나오는 경찰서도 번번이 달라지는 게 보입니다.(주로 노원경찰서입니다)

라인 때문에 벌어지는 재미있는 일은 참 많습니다. 배우 박중훈 씨와 이선균 씨가 출연했던 영화 ‘체포왕’은 마포경찰서 실적1위의 에이스 강력팀장(박중훈)과 서대문으로 전입한 신임팀장(이선균)이 주인공인데요, 이들이 나중에 각각 동작경찰서와 용산경찰서로 자리를 옮긴 뒤 이런 에피소드가 벌어집니다.

동작대교 한가운데에서 젊은 남자가 자살소동을 벌이는데, 두 팀장이 절체절명의 순간에 사정사정하며 어차피 강으로 빠지기로 결심했다면 상대의 구역으로 넘어가주길 부탁하는 겁니다. (영화라서 재미있게 표현하려다 보니 나온 에피소드입니다. 실제 이런 경찰 분은 없습니다!) 동작대교를 두고 동작서와 용산서의 관할이 달라진다는 점을 재미있게 표현한 건데, 기자들이야말로 이런 일을 겪는 경우가 많습니다.    

'속지주의'. 국가의 입법·사법·집행관할권을 자국의 영역 내에서만 행사하는 것을 가리키는 말인데, 기자들 세계에선 라인에서 벌어지는 일은 무조건 담당기자가 책임지는 강력한 '라인 속지주의'가 존재합니다.

요즘 이른바 '땅콩 회항' 사건 때문에 가장 분주해진 곳은 마포라인입니다. 사건 기자들은 라인 내 경찰서 뿐만 아니라 검찰, 법원, 주요 대학과 병원도 챙기는데 시민단체 '참여연대'가 서부지방검찰청으로 고발장을 제출했기 때문입니다. (조현아 대한항공 전 부사장의 자택이 서부지검 관할인 용산이라고 하네요) 

제가 있는 관악 라인에선 최근 서울대(관악구에 있죠) 성추행 교수 건이 큰 이슈였습니다. 그런데 같은 서울대 교수라고 해도, 가장 먼저 알려진 강모 교수의 경우엔 사건이 도봉경찰서에서 북부지검으로 송치돼 혜화도봉 라인이, 나중에 기사화된 배모 교수의 경우엔 서초서로 고소장이 접수돼 강남라인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기자들은 그래서 아침 저녁으로 '오늘 하루 라인에 사건사고가 없길' 간절히 기원하고 기원합니다. 한마디로, 무탈한 하루의 기준은 라인에 큰 발생이 없는 건데요, 아침엔 조간들이, 저녁엔 각 방송사 메인뉴스에서 그날의 주요 사건들을 아껴놨다가 터뜨리기 때문에 타사 모니터링을 하는 동안 내 라인의 이름이 나오면 이른바 심쿵! 심장이 쿵 내려앉습니다. 

앞으로 사건사고 기사를 볼 때, 기자의 이름을 주목해 보세요. 경우에 따라 다르지만, '요즘따라 자주 보이는' 기자가 한두 명씩 있을 텐데요, 실은 그 기자가 속한 라인에서 큰 발생이 터졌기 때문입니다. 자주 보이는 그 기자, 하루에도 몇 번씩 '왜 하필이면 우리 라인에서!'를 중얼거릴 지도, 한 편으론 내가 속한 구역에서 큰 사건이 터진 것에 신이 나서 백방으로 뛰고 있을 지도 모르죠. 

(다음에 이어집니다)   


▶ [취재파일] 피노키오 가이드북 ② 취재원과 내부고발자, 그리고 특종 
▶ [취재파일] 피노키오 가이드북 ③ 수습과 마와리, 그리고 하리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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