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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대한항공 측 입장 자료를 찬찬히 뜯어보니…

부사장의 돌출 행동과 사과의 진정성에 대하여

[취재파일] 대한항공 측 입장 자료를 찬찬히 뜯어보니…
대한항공 조현아 부사장의  돌발 행동이 외신에까지 대대적으로 보도되고 있습니다. 일파만파입니다. 대한항공 측은 어젯 밤 부랴부랴 ‘입장 자료'라는 형식의 글을 기자들에게 보내왔습니다. 그런데도 여론은 쉽사리 수그러들지 않을 기세입니다. ‘사과' 라는 표현이 들어있긴 하지만 시민들과 네티즌들의 마음을 돌리기엔 역부족으로 보입니다.

대한항공이 ‘입장 자료'를 보내온 건 어젯밤 21시 24분입니다.  오너 일가가 관련돼 있고 그것도 여론이 민감하게 반응할 만한 사안이라면 보도가 나온 직후 신속하게 사과 등 적절한 대응을 하는게 상식적인 기업들의 속성입니다. 그런데 대한항공 측은 어젯 밤 기습적으로 기자들에게 ‘입장 자료'를 보내왔습니다.

어제 아침 일부 조간 신문에 1보 기사가 난 이후 15시간 만입니다. 돌발행동의 주인공이 직접 사과해야 할 일에 회사가 대신 나서는 모양새는 그렇다 치더라도, 그 15시간 동안 당사자인 조현아 부사장과 위기 대응에 나서야 했을 대한항공 측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걸까 궁금합니다. 여론이 이렇게까지 험악해질 줄 모르고 추이를 지켜보고 있었던 걸까요? 아니면 실은 사과하자니 도저히 입이 떨어지지 않았던 걸까요?

15시간 동안 고심에 고심을 거듭한 덕인지 대한항공의 ‘입장 자료'는 단어 선택에서 부터 세심함이 진하게 느껴지긴 합니다. (하긴 마카다미아 포장 개봉 여부로 항공기 운항을 결정 지을 정도로 디테일하고 엄격한 서비스 마인드가 풍부한 기업이니 충분히 그럴 만하다 생각은 됩니다.) 우선 제목 부터가  ‘사과'가 아닌 ‘입장 자료' 입니다. 다음 문장은 더 흥미롭습니다.

○   비상 상황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항공기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 승무원을 하기시킨 점은 지나친 행동이었으며, 이로 인해 승객 분들께 불편을 끼쳐드려 사과 드립니다.  

‘사과'란 표현이 있긴 합니다만 뭔가 문장이 이상합니다. “비상 상황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항공기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 승무원을 하기 시킨 점은 지나친 행동이었으며... " 뉴욕과 미국을 오가는 대한항공 A380이 최신 기종이긴 하나 과거 외화에 등장했던 키트나 에어울프처럼 저절로 움직이는 것도 아닐 것이고, A380 항공기가 승무원에게 내리라고 한 것도 아닐텐데 표현이 어색하기 짝이 없습니다. 사과의 주체, 즉 조현아 부사장을 언급하지 않으면서도 어떻게든 사과의 모양새를 취하려다 보니 빚어진 문장 참사입니다.  

그나마도 사과의 의미가 담긴 건 딱 이 한 문장입니다. 그 다음 부터는 곧바로 민심(?)과 동떨어진 (하지만 대한항공의 본심일 수 있는) 내용이 등장합니다.  
 
○   당시 항공기는 탑승교로부터 10미터도 이동하지 않은 상태로, 항공기 안전에는 문제가 없었습니다.
2.   대한항공 임원들은 항공기 탑승 시 기내 서비스와 안전에 대한 점검의 의무가 있습니다.
○   사무장을 하기시킨 이유는 최고 서비스와 안전을 추구해야 할 사무장이
1)담당 부사장의 지적에도 불구하고 규정과 절차를 무시했다는 점
2) 매뉴얼조차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고 변명과 거짓으로 적당히 둘러댔다는 점을 들어 조 부사장이 사무장의 자질을 문제 삼았고, 기장이 하기 조치한 것입니다.


지나친 행동인 건 (마지못해) 인정하고 승객들에게 사과는 하겠지만 (물론 이번 일로 불편한 감정을 느꼈을 다수 국민들에 대한 사과는 없었지만 이건 일단 넘어 가겠습니다.) 안전에 문제는 전혀 없었고, 또 그럴만한 이유도 충분했다는 겁니다. 돌발 행동의 주인공은 쏙 빼고 은근슬쩍 해당 승무원과 사무장에게 책임을 돌리는 거죠. 심지어 이런 표현까지 등장합니다.

○   대한항공 전 임원들은 항공기 탑승 시 기내 서비스와 안전에 대한 점검 의무가 있습니다.

조현아 부사장은 기내 서비스와 기내식을 책임지고 있는 임원으로서 문제 제기와 지적은 당연한 일입니다.
맞습니다. 서비스 총괄 부사장은 기내 서비스와 기내식을 책임지는 자리이기에 서비스 담당 직원이 업무를 정확하게 숙지 하지 않았다면 이를 지적하거나 질책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이미 운항을 시작한 항공기를 되돌리는 행위까지 정당화 되지는 않습니다. 부하 직원의 업무가 미숙했다면 인천 공항에 도착해서 회사 내규나 교육 매뉴얼에 따라 조치하면 될 일입니다. 담당 임원으로서 직원들을 지적하는 것과 운항을 시작한 항공기를 되돌리는 일은 대한 항공과 아시아나 항공 사이 만큼이나 아득한 간극이 있습니다.

대한항공 측의 입장 발표문은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끝을 맺습니다.

3.   철저한 교육을 통해 서비스 질을 높이겠습니다.
○   대한항공은 이번 일을 계기로 승무원 교육을 더욱 강화해 대 고객 서비스 및 안전제고에 만전을 기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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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서비스 기업이라면 고객과 잠재적 고객의 마음을 잘 읽어야 합니다. 잠재적 고객인 국민들이 대한항공의 서비스의 질이 낮다고 해서 분노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번 일을 계기로 국민들이 대한항공 측에 바라는 것 역시 승무원 교육 강화가 아닙니다. 대한항공이 최고의 항공사이자 최고의 서비스 기업을 추구한다면 이것 보다는 조금 더 성의있고 진정성있는 글을 냈어야 하지 않았을까요?    

마지막으로 많은 분들이 이번 일로 해당 승무원과 사무장이 불이익을 받는 것은 아닌지 우려하고 있습니다. 대한항공측이 당사자들에게 필요 이상의 조치를 취한다면 아마도 또 한번 구설에 오르며 역풍을 맞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언론도 지켜볼 것입니다. 그게 언론이 할 일이니까요.

ps. 기자로서, 한 명의 직장인이자, 또 미생으로서 이런 식의 ‘입장 자료'를 ‘쓸 수밖에 없었’을 대한항공 측 담당자께 진심 어린 위로와 사과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 대한항공 입장 전문 >>

대한항공 뉴욕발 인천행 항공기 승무원 하기 관련 입장자료 보내드립니다.

1.   승객분들께 불편을 끼쳐드려 사과 드립니다.
○   비상 상황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항공기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 승무원을 하기시킨 점은 지나친 행동이었으며,
이로 인해 승객 분들께 불편을 끼쳐드려 사과 드립니다.

○   당시 항공기는 탑승교로부터 10미터도 이동하지 않은 상태로, 항공기 안전에는 문제가 없었습니다.

2.   대한항공 임원들은 항공기 탑승 시 기내 서비스와 안전에 대한 점검의 의무가 있습니다.
○   사무장을 하기시킨 이유는 최고 서비스와 안전을 추구해야 할 사무장이

1)담당 부사장의 지적에도 불구하고 규정과 절차를 무시했다는 점

2) 매뉴얼조차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고 변명과 거짓으로 적당히 둘러댔다는 점
을 들어 조 부사장이 사무장의 자질을 문제 삼았고, 기장이 하기 조치한 것입니다.

○   대한항공 전 임원들은 항공기 탑승 시 기내 서비스와 안전에 대한 점검 의무가 있습니다.
조현아 부사장은 기내 서비스와 기내식을 책임지고 있는 임원으로서 문제 제기 및 지적은 당연한 일입니다.

3.   철저한 교육을 통해 서비스 질을 높이겠습니다.
○   대한항공은 이번 일을 계기로 승무원 교육을 더욱 강화해 대 고객 서비스 및 안전제고에 만전을 기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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