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월드리포트] 화장실과 성폭행의 관계

[월드리포트] 화장실과 성폭행의 관계
인도의 한 시내버스에서 자매가 성추행을 하려는 남성들에게 대담하게 맞서는 동영상이 화제였습니다. 자매는 힘이 부치자 허리띠까지 빼서 성추행범에게 휘둘렀습니다. 성추행범들은 자매의 신고로 경찰에 붙잡혔고, ‘용감한’ 자매는 정부 표창과 함께 500달러씩 포상금을 받게 됐습니다.

이 일을 계기로 또 다시 인도의 성폭력 실태가 부각되고 있습니다. 인도에 대해선 많이들 아시겠지만 인도는 요즘 극심한 성폭행 사건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습니다. 성폭행 근절을 위해 예방 비디오까지 만들어 배포했지만 이마저도 별 효과가 없어 보입니다. (남성들이 한 여성을 성폭행하려고 몰려들었는데 알고 보니 그 여성이 무리 중 한 남성의 여동생이라는 반전.)

인도 국가범죄기록국의 통계를 보면 지난해 3만 3천 7백건의 성폭행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하루 평균 92명, 16분에 한 명꼴로 성폭행 피해자가 나오는 셈입니다.

인도하면 ‘간디’, 간디하면 ‘비폭력주의’가 떠오르는 나라가 성폭행의 왕국이라니… 정말 그럴까? 인도는 세계 제 2의 최다 인구 국입니다. 12억 3천만 명, 지난해 성폭행 사건 수를 계산해보니 인구 10만 명당 2.7건이 발생한 셈이더군요. 그럼 우리나라는? 인구 4천 9백만 명, 지난해 성범죄 2만 2천 3백 건, 인구 10만 명당 무려 ’45.5건’!!!

엥? 우리나라가 더 위험한 나라인가? 미국과 유럽의 선진국과 비교해도 인도의 수치는 훨씬 작게 나타납니다. 뭐야? 괜한 호들갑? 아닙니다. 제 글을 자세히 봤으면 인도와 우리나라의 조건이 뭔가 다르다는 걸 아실 겁니다. 인도는 ‘성폭행’ 우리나라는 ‘성범죄’ 라는 점입니다. 성폭행은 ‘강간’의 완곡한 표현입니다. 성범죄는 강간과 강제추행, 성희롱까지도 포함한 광의의 단어입니다. 영어표현을 들더라도 성폭행에는 Sexual Attack, Violence, Assault 같은 무시무시한 단어가 따라붙고 성범죄는 Sexual Crime, Abuse 등이 붙습니다.

성범죄를 저지르는 이들의 죄질은 다 똑같은 생각과 마음에서 비롯됐기에 비교할 수 없겠지만 물리적으로 드러나는 성범죄의 정도에서 인도는 우리보다 훨씬 더 심각한 수준입니다. 성폭행의 정도도 집단 성폭행에 살인까지 이어지는 경우가 다반사입니다. 그래서, 인도가 여성에게 훨씬 위험하고 살기 힘든 나라로 여겨지는 겁니다.
취파

2012년 한 여대생이 버스에서 집단 성폭행을 당한 뒤 숨진 사건이 있죠.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든 사건입니다. 지난달에는 집단 성폭행에 저항하던 10대 소녀가 산 채로 불태워져 숨지기도 했습니다.

인도에서 성폭행이 일어나는 이유는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크게 세 가지 정도를 이야기합니다. 뿌리깊은 여성에 대한 경시 풍조, 남녀 성비의 불균형, 심각한 경제 양극화로 인한 극빈층의 박탈감을 많은 이들이 원인으로 들죠.

인도에서 가부장적, 남성 우월주의가 만연한 반면 여성인권은 상당히 열악합니다. 여성의 교육률도 낮습니다. 경제활동 기회도 적습니다. 여성에 대한 폭력도 난무합니다. 그러다 보니 여성이 업신여김을 당합니다.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는데 한 마을에서 20살 여성이 같은 마을의 남성들에게 집단 성폭행을 당했습니다. 이유는 이 여성이 이교도를 만나기 때문이었습니다. 더 놀라운 건 이 같은 결정을 마을 촌장이 내렸다는 겁니다. 인도는 아직도 여성이 성폭력 피해를 당하면 피해여성의 몸차림이나 행실을 탓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당연히 인도는 남아선호 사상이 높습니다. 남녀 성비에서 나타납니다. 남아 1천 명당 여아 비율이 940명 밖에 되지 않습니다. 여성이 남성보다 4천만 명이 적은 것으로 나타납니다. (대한민국에 사는 사람만큼 여성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면 좀 실감이 날 듯) 인도도 결혼을 하려면 신랑이 신부 측에 결혼 지참금이란 걸 줘야 합니다. 돈이 없으면 결혼도 못 한다는 말이죠. 못 배우고 가난한 계층일수록 결혼을 못한 남성이 많습니다. 사회적 박탈감은 성범죄의 원인 중 하나라는 해석입니다.
[8리]인도/

원래 제가 하려는 이야기는 이제부터입니다. 인도의 성범죄에 대해 이런 저런 자료를 찾다 보니 흥미로운 사실이 있더군요.

‘인도 성폭행은 화장실이 없어서?’ 이게 무슨 말인가 처음에 아리송하신 분도 계실터인데…. 인도 인구는 12억 3천만 명, 그 중 48%, 6억 명은 화장실이 없어 숲이나 들판, 도랑에 용변을 본다는 사실 아십니까? – 저도 처음엔 설마 했는데 세계보건기구 자료입니다. (세계에서 화장실 없이 사는 인구가 11억 명으로 추정되는데 그 절반이 인도 사람인 셈이네요.) 시골은 사정이 더 열악해서 65%가 집에 화장실이 없습니다. 시내라고 사정이 낫다고 할 수도 없습니다. 드문드문 공중화장실이 있긴 하지만 이것도 밤 9시면 문을 닫습니다.

인도 여성들은 사회적 편견과 수치심 때문에 주로 인적이 드문 밤에 밖에 나와 볼일을 보곤합니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합니다. 어두운 밤, 인적이 드문 들판이나 숲, 남의 눈을 피해 홀로 나온 여성, 성폭행범의 표적이 되기 십상입니다. 지난 5월 인도 시골 마을에서 사촌지간 여성 2명이 마을 주변 들판의 고목에 목이 매달려 숨진 채 발견된 사건이 있었습니다. 집단 성폭행을 당한 흔적이 역력했습니다. 인도 카스트 계급의 최하층인 ‘달리트’에 속하는 여성들은 집에 화장실이 없어 밤에 볼 일을 보러 들판으로 나왔다가 참변을 당한 겁니다. 인도 시민은 분노했고 전역에서 항의시위가 벌어졌습니다. (얼마 전 인도 수사당국이 이 사건을 엉뚱하게 자살로 판명 내렸지만 그 걸 믿는 이는 적으리라 생각합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인도 여성의 70%가 용변을 보다 성추행 피해를 경험했다는 조사도 나와 있습니다.
취파

‘사원(寺院)보다 화장실 먼저’

“여성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화장실을 지어야 합니다.” 지난 8월 15일 인도 독립기념일에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의 연설 내용입니다. 힌두 민족주의자인 총리가 사원보다 화장실이 더 필요하다고 그것도 독립기념일에 단골 연설 메뉴인 파키스탄 문제는 한마디도 하지 않고 꺼낸 말입니다. 모디 총리는 그러면서 4년 안에 1억 개의 화장실을 지어 인도의 모든 가정이 집에 화장실을 갖게 하겠다고 공언했습니다. 또한 여학생들이 학업을 중단하는 것도 화장실이 가장 큰 문제라며 모든 학교의 화장실을 남녀용으로 분리하겠다고 덧붙였습니다. 그저 위생을 위한 공간으로 인식해왔던 화장실이 어느 곳에선 가장 심각한 사회문제를 해결해주는 방패막이 될 수 있구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화장실이 짓는 게 사실 성폭행의 근본적인 해결책은 될 수 없겠죠. 성폭력 근절을 위해선 역시 여성을 존중하기 위한 인식의 변화와 교육의 필요성이 우선되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단기적, 물리적 측면으로 본다면 화장실 건설이 성폭행에 대처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는 점엔 이의가 없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요즘 인도에선 ‘화장실 없는 남자에겐 시집가지 말자’라는 캠페인까지 펼쳐지고 있다고 합니다.


▶ 성추행범 맞선 용감한 자매…"소란하다" 쫓겨나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