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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K교수 사태 관련, 서울대에 묻고 싶습니다

[취재파일] K교수 사태 관련, 서울대에 묻고 싶습니다
저는 서울대를 출입하는 SBS 사회부 류란 기자입니다. 서울대 수리과학부 K모 교수의 성추행 사건에 대해 지난 보름간 취재하고 기사를 썼습니다. 어제 오후, 법원이 K교수의 구속영장을 발부했습니다. 서울대 역사상 성추행 혐의로 교수가 구속된 것은 처음이라고 합니다. 수사기관과 사법기관이 이번 사건과 관련해 정당한 결정을 내리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쯤에서 다른 이야기를 해 볼까 합니다. K교수가 몸 담은 서울대학교라는 조직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다음 제 질문에 대해 책임있는 누군가가 답해 주신다면 정말 고맙겠습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이번 사건을 시간 순으로 정리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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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면직 조치'했다던 K교수의 사표, 왜 갑자기 유예됐나?  

서울대는 검찰이 K교수의 영장을 청구했다는 사실이 알려지기 7시간을 앞둔 1일 오후, 다음과 같은 보도자료를 배포했습니다. '인권센터가 K교수를 상대로 정확한 진상조사를 하도록 조치했다'는 내용입니다. 참고로, 인권센터는 피해자들의 제보를 접수하고 조사하는 학내 기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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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보도자료를 읽은 많은 기자들이 황당함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4일 전인 11월 27일, 마찬가지로 서울대가 배포한 보도자료를 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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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교수는 11월 중순 부터 인권센터의 조사 대상자였습니다. 하지만 서울대는 그런 그가 낸 사표를 만 하루도 되지 않아 수리한 후 '자연스레 진상조사도 종료될 것'이라는 설명도 곁들였습니다. 

이날 오후 서울대의 책임있는 관계자는 기자들과 만나 다음과 같은 대화를 나눕니다.

"K교수가 결국 파면이나 해임(면직보다 수위가 높은 징계 단계)을 면하려고 사표 낸 것 아닌가?"라는 질문에 "주관적인 판단이다. 아마 학생입장에서 보기 때문에 그런 것일 듯. 교수 입장에서는 또 교수 나름대로 다툼의 여지가 있어 계속 다툴 수도 있지만 이쯤에서 본인이 사표를 쓴다는 것은 책임을 진다는 의미도 있다 그런 맥락으로 (이해하면 된다)"라고 답했습니다.

사표 수리를 미루고 진상조사를 계속해 진위를 가려 징계(파면이나 해임)를 할 수도 있지 않느냐는 지적엔 "교수가 사직서를 제출했을 때, 우리 나름대로 (알아본 결과) 수리를 거부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례가 있다. 법적으로 보장되는 개인의 자유라고 하면 (학교가 교수의 권리를)침해하기 어렵다."고 말합니다.

"극단적으로 교비횡령건이라고 한다면, 그래도 즉시 사표수리했겠나?"라고 반문하자 "교비 횡령건은 다르겠다. 상황에 따라 다른 것이다. 횡령부분은 추가로 고발 조치 할 수 있다", "최종 결정권자는 총장인데 (사표수리 결정이) 뒤집어 질 수 있나? (* 당시 성낙연 총장 해외출장으로 부재 중)"라고 묻자 "가능성은 전혀 없다고 말할 순 없지만 적다고 판단한다."고 답했습니다.

대법원의 판례까지 근거로 들어 서울대는 '사표 수리를 거절당하지 않을' K교수 개인의 권리를 지켜주느라 어렵사리 증언을 시작한 피해자들의 인권은 뒷전이었던 셈이었습니다. 심지어 ‘다툼의 여지가 있지만 이 쯤에서 K교수가 책임지고 사직하는 것’이라는 맥락의 말까지 했는데요, 법원이 사전 구속영장을 발부한 것을 보고도 그 생각이 변함없는지 묻고 싶습니다. (최소) 22명의 피해자가 확인된 상황, 다툼의 여지를 포기하는 게 학생들과 교수 중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이었을까요?

어렵사리 아픈 기억을 끄집어낸 피해자들이 바라는 건 진심어린 사과와 죄에 합당한 처벌이었을 겁니다. 서울대는 하지만, 교수에게 달아날 기회를 제공했습니다. 그것도 ‘인권’을 명분으로요. 서울대는 안전한 캠퍼스에서 학습권을 보장받을 학생들의 권리는 어떻게 지켜냈나요?

이도 저도 아니다, 학교도 입장이 있고 할 말이 있다손 치더라도 마지막까지 이해할 수 없는 사실은 결국 K교수의 사표수리에 대한 부분입니다. ‘유예할 근거가 없다’던 사표가 왜 4일 후엔 번복됐나요? 보도자료 배포 7시간 후 영장이 청구된 것이 우연이라고 믿고 싶습니다만, 석연치 않은 부분이 남아있습니다.
그래픽_서울대교수학
2. 피해자 실명조사, 반드시 필요했나?

피해자들은 줄곧 학내 인권센터가 실명 조사를 요구해 부담스러웠다고 주장했는데요, 이에 대해 학교는 '실명 조사가 이뤄졌을 때 결국 K교수의 강력한 처벌로 이어질 것이라고 판단했다'고 밝혔습니다. 학생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시죠.

"저희는 인권센터와 학교의 전폭적인 수사를 이미 수차례 요구했지만 이에 대한 적절한 대응은 전혀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이 때문에 저희가 모든 부담을 감수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 교내 인권센터는 이미 한 명의 피해자가 실명으로 신고서를 접수하고 진술했음에도 불구하고 사건 처리를 위한 명목으로 다른 학생의 실명을 요구한 바 있습니다. 저희는 인권센터에 실명으로 접수를 해야만 강력한 조사가 가능하다는 절차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조사의 강도는 예측되는 피해 강도와 2차 피해 정도 등에 따라 충분히 조정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조사의 강도를 자체적으로 조정하고 추진할 수 없다면 인권센터 존재의 의의 또한 이해되지 않습니다."
                               - 11/27 피해자 비대위 선임 변호사 한유미
 
 
인권센터의 운영방침 상 익명의 제보가 접수될 때만 해도 ‘예비조사’ 단계였던 것을, 피해자 1명이 실명으로 신고한 이후엔 바로 ‘본조사’로 전환해야 합니다. K교수 피해자 측은 이미 실명으로 신고한 사람이 있어 본조사로 전환된 단계에서, 학교가 추가로 피해자들의 실명을 요구했고 부담이 됐다는 겁니다. 이에 대해 다시 입장을 요청하자 서울대는 “인권센터는 모든 사람의 인권을 배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불특정다수가 익명으로 특정인에 대해 제보한다면, 신고의 대상이 되는 사람의 인권을 침해할 수 있다”라고 답했습니다. 또, 이 대목에서, K교수의 인권이 근거가 된 셈인데요. 의견이 분분할 수 있는 대목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저런 이유로 학내 조사가 진척이 없자, 피해자들은 신변노출이라는 위험까지 무릅쓰고 세상에 모습을 드러낼 것을 망설입니다. 그리고  예정된 기자회견 시작 시각 30분 전, 학교는 마치 K교수의 면직 조치가 완료된 것처럼 알려왔습니다. 그리고 그마저도 4일 뒤에 뒤집었습니다. 급한 불만 끄려고만 했지, 처음부터 피해자들의 어려운 상황을 배려하고 그들의 목소리에 진심으로 귀 기울였는지 묻고 싶은 대목입니다.

 K교수는 결국 어제 오후, 구속수감됐습니다. 앞으로 남은 재판이 학교가 표현한 대로 ‘다툼의 여지’에 대해 어느 쪽의 말이 맞는지 손을 들어줄 것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용기를 낸 피해 학생들에게 진심으로 고맙다고, 수고했다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그들이 기자회견을 진행했던 날 발표했던 성명의 일부분을 인용하겠습니다.
 
"누군가가 타인에게 일방적 피해를 입었을 때 그것이 거대 조직이나 사회 구조적인 결함으로 약자에게 빈번하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면 개인이 대항하거나 고치기 힘든 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모두가 그것을 감내하고 묵인한다면 이 사회는 더욱 더 그런 피해에 무감각해질 것이고 올바른 것에 대한 기준이 모호해져 더욱 더 많은 사람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입니다."

"그 어떤 뛰어난 지식이 인간 그 자체의 존엄보다 참된 진리에 가깝겠습니까? 따라서 저희는 이번 사건이 힘의 논리가 아닌 도덕과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는 방향으로 처리되기를 진심으로 소망하며 나아가 다시는 이런 피해가 발생하지 않는 변화의 시작이 되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 교수 성추행 대처 '미적미적'…검찰이 영장 청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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