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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시리아 난민 취재기 ① 베카밸리를 택한 까닭은?

[월드리포트] 시리아 난민 취재기 ① 베카밸리를 택한 까닭은?
제가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시리아 내전으로 고통 받는 난민 아동의 실상을 알리기 위함도 있지만 앞으로 난민 관련 취재를 하는 동료들에 참고가 될 만한 자료를 남기려는 목적도 포함돼 있습니다. 취재 후기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11월 17일부터 23일은 유엔이 정한 아동학대 예방 주간이었습니다. 전쟁과 폭력, 노동에서 아동을 보호하자는 취지에서 만들어졌습니다. 그 주에 맞춰 시리아 난민 아동에 관한 르포를 하기로 했습니다.

시리아는 3년 넘게 내전 중입니다. 전쟁을 보금자리를 잃은 난민이 1천 1백만 명으로 추산됩니다. 그 중 330만 명이 주변국 터키, 요르단, 레바논, 이집트, 사우디 등으로 국경을 넘어온 것으로 유엔은 보고 있습니다.

가장 먼저 떠오른 고민은 ‘어디를 갈 것이냐?’ 입니다. 시리아 난민이 대거 모여 있는 나라를 찾아봤습니다. 제가 있는 이집트에도 시리아 난민이 적지 않게 있지만 난민의 실상을 보여주기는 미흡하다고 느꼈습니다. 일단 이집트에는 난민이 모여 사는 곳이 없습니다. 그리고, 이집트까지 온 시리아 난민은 지금은 생계에 심한 곤란을 겪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나름 시리아에서는 어느 정도 생활 수준을 유지하던 터라 카이로 인근에서 여러 가정이 주택을 빌려 생활하고 있는 게 대부분이었습니다. 이집트는 제외. 나라 밖으로 눈을 돌려봤습니다.

요르단과 터키, 레바논 세 곳으로 압축이 되더군요. 요르단에는 난민캠프의 대표격인 자타리 캠프가 있습니다. 자타리 캠프는 시리아 내전 초기부터 생겨나 거주난민만 11만 명에 육박합니다. 너무 넓어 하루에는 절대 돌아볼 수 도 없을 정돕니다. 그 안에 학교도 들어서 있습니다. 중심에 상업지구 비슷한 구역도 형성이 돼 그야말로 난민 도시처럼 느껴질 정돕니다. 자타리 캠프 밖에는 더 많은 난민이 요르단에 터를 잡고 살고 있습니다. 캠프 안 난민과 캠프를 떠난 난민의 이야기가 다양하게 상존하는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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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거대한 천막도시 요르단 자타리 캠프
  
터키는 최근 시리아 북부 코바니 사태로 뉴스에 많이 나오는 나랍니다. 다에쉬 (‘이슬람국가’ IS의 아랍어 약자)가 쿠르드족이 모여사는 코바니를 공격하면서 수십만 명의 쿠르드족이 인접한 터키로 몰려들었습니다. 이들의 대부분은 터키의 국경마을 수루치에 모여있습니다.

워낙 급히 피난을 오다 보니 쿠르드 난민의 짐이라고야 옷가지 몇 벌 정도가 전붑니다. 쿠르드 난민은 대부분 마을 공터에 비닐 천막을 짓고 기거를 하거나 빈 창고. 건물에서 담요에 몇 장 깔아놓고 노숙과 다름 없는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다른 난민에 비해 학살의 위기를 가장 최근에 경험했기에 전쟁의 참상과 공포를 가장 생생하게 들을 수 있을 겁니다.

더구나 터키 국경에선 코바니에서 벌어지는 시리아 쿠르드 민병대인 인민수비대와 다에쉬간의 치열한 교전상황을 목격할 수 있는 점, 그 참상의 현장을 시청자에게 전할 수 있다는 점도 중요한 요소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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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터키 국경을 넘어 피난 오는 시리아 난민
 
레바논은 근본적으로 난민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난민캠프가 없습니다. 난민은 1년마다 거주비자를 따로 받아야 합니다. 방문객 신분입니다. 그들은 알아서 생존해야 합니다. 주로 레바논 북부에서 동부로 이어진 레바논 산맥을 따라 형성된 베카밸리라는 분지에 모여 살고 있습니다. 일부 지역은 다에쉬가 출몰하는 관계로 대한민국 정부에서 여행제한구역으로 지정한 곳입니다.

난민들은 대부분 수십에서 수백 개의 천막촌을 짓고 군데 군데 흩어져 살고 있습니다. 난민 취재를 위해 협조해주는 단체나 기관이 없습니다. 제가 알아서 찾아 다녀야 합니다. 난민 지원이 가장 열악한 곳이라 난민의 실상을 사실적으로 담을 수 있을 지 몰라도 잘못하면 서울서 김서방 찾기 식으로 시간만 낭비하다 올 수도 있습니다.

3곳 중에 어디를 가야 할까? 선택을 위해 두 가지 조건을 설정했습니다. 내전과 난민, 시청자들에게 익숙한 이 단어들을 새롭게 다가서게 만들 수 있는 곳은 어디인가? 또, 취재의 초점은 난민이 아니라 ‘난민 아동’이라는 것을 명심하기로 했습니다.

요르단 자타리 캠프는 ‘난민의 요람’ 이라고 불릴 정도로 그 동안 많은 언론이 취재한 곳입니다. 2년 전 SBS에서도 취재를 다녀왔더군요. 주요르단 한국대사관에 연락을 해보니 이미 타 방송사 한 곳에서 프로그램 제작 중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UN이 세웠지만 관리는 요르단 정부가 맡는 이중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어서 취재 허가를 받아내는 게 수월해 보이지 않았습니다. 잘못하다간 현장에 가지도 전에 진이 빠지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장 먼저 제외시켰습니다.

터키 수루치는 기자로서는 종군적인 목적도 겸해 다가설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취재에 대한 별 다른 제한과 허가도 필요 없더군요. 급히 고향을 떠난 난민의 실정은 처참할 것입니다. 사실적인 영상을 카메라에 담을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이동 경로가 너무 멀었습니다. 제가 계획한 3박 4일 일정으로는 비행기를 두 번 갈아타고 가야 하는 점이 부담스러웠습니다. 더구나 쿠르드족은 아랍어와 철자는 같지만 완전히 다른 말을 씁니다.

터키어와 영어, 쿠르드어를 쓰는 코디네이터를 구하기 쉽지 않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였습니다. 또 하나, 수루치에 머무는 쿠르드 난민은 고향을 떠난 지 불과 한 달 정도된 사람들이었습니다. 생계를 위해 새로운 일자리를 찾기 보다는 코바니 사태가 마무리되는 대로 고향에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 믿는 이들이 대부분입니다. (물론 지금도 코바니는 교전중이지만 10월 중순에는 사정이 좀 달랐습니다.) 아이들은 학교에 가지 못하지만 생계형 노동을 하는 경우는 많이 않았습니다.

레바논 베카밸리는 우선 안전이 우려됐습니다. 그리고, 여기저기 흩어져 사는 난민 가운데 제 기획의도에 맞는 사례를 어떻게 찾아낼 지가 걱정이었습니다. 그래도 레바논을 택한 건 일단 다른 곳에 비해 새로운 느낌을 줄 수 있을 것 같아섭니다. 난민을 인정하지 않는 나라의 난민, 스스로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난민의 삶은 무언가 다른 곳에서 찾을 수 없는 걸 보여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주 레바논 한국대사관의 도움도 컸습니다. 최종일 대사께서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셨습니다. (해외 취재 시 해당 정부의 허가가 필요할 시 대사관의 문을 두드리는 것도 괜찮은 방법입니다. 저 역시 해외의 많은 공관을 통해 많은 도움을 얻곤 합니다.) 대사관에서 레바논 정부에서 취재허가를 받는 절차까지 상세히 안내해 줬습니다. (레바논은 수도 베이루트의 공보처에서 간단한 신청서를 작성하면 취재허가를 받을 수 있습니다. 이집트에 주재하면서도 촬영허가를 매달 받는 저로선 너무나 낯선 시스템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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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바논 베카밸리는 해발 900미터로 겨울에 폭설이 옵니다.

가장 고마운 건 제가 정말 필요한 코디네이터였습니다. 레바논에서 3년째 난민 지원 사업을 하시는 정병훈 목사를 소개받았습니다. 정 목사는 아내와 함께 베카밸리의 한 난민 마을에서 2년 째 교육사업을 하고 계신 분입니다. 난민의 친구이자 보호자로서 지내고 계셨습니다. 그 분을 통해 사전에 베카밸리 난민의 생활상을 귀로 나마 상세히 들은 점은 제가 드넓은 베카밸리에서 적절한 사례를 찾아내고 먼 거리를 오가며 적절한 시간 배분을 하는데 큰 도움이 됐습니다.

취재의 방향은 어른들의 전쟁이 아이들에게 준 고통은 무엇인지. 그 고통으로 아이들의 삶이 어떻게 달라졌는지에 맞췄습니다. 가난과 트라우마 라는 두 단어가 가장 먼저 떠올랐습니다. ‘가난하면 배고프고 그러면 돈을 벌려고 공부를 포기하고 일자리를 찾아 나서겠구나…’ 그래서 노동 때문에 학교에 가지 못하는 아이를 찾기로 했습니다. 그때 정목사님이 사진 한 장을 SNS로 보내주셨습니다.

씻지 못해 때로 얼룩진 얼굴과 신발이 없어 낡은 슬리퍼를 신고 낡디 낡은 옷을 입고 해맑게 웃는 두 아이의 사진이었습니다. 고철을 줍는다고 했습니다. 그때 받은 느낌은 ‘불쌍하다’보다 ‘부끄럽다’가 더 컸던 것 같습니다. 하루 세끼 제대로 찾아먹고 아이들 학교 보내고 번듯한 옷 차려 입고 사는 난 그 동안 내 삶에 얼마나 감사하고 살았는가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꼭 이 아이들의 이야기를 다뤄야 하겠다고 마음 먹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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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리아 난민 12살 삭크르와 11살 아흐메드 형제

트라우마에 대한 부분은 제 스스로 답을 찾기로 했습니다. 정목사가 운영하는 천막학교의 아이들에게 그림을 그려보게 하자고 생각을 했습니다. 백 번의 말을 듣는 것보다는 한 번 눈으로 보는 게 더 느낌이 오래 남고 쉽게 이해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아이들은 고향 땅에서 어떤 기억을 가지고 있는지, 그리고, 아이들이 품은 꿈은 무엇인지. 그림이 대신 말해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3박 4일 일정이지만 사실 도착 첫 날 비자 받고 취재허가 받으면 하루가 다 갈 것이고 떠나는 날도 베이루트에서 카이로까지는 오전 비행기를 타야 하기로 만 이틀 안에 모든 걸 다 찍어야 했습니다. 솔직히 쉽게 갈 생각이면 여유 있는 일정이고 좀 더 욕심을 내면 빡빡한 일정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베카밸리 난민촌은 과연 내가 듣고 읽고 상상한 것과 많이 다르면 어쩌지? 라는 두려움이 베카밸리를 바라보는 순간까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베카밸리의 취재는 확신과 불안감을 동시에 안고 시작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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