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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당나라 군대'와 '매관매직'의 법칙

[월드리포트] '당나라 군대'와 '매관매직'의 법칙
군기가 문란하고 전투력이 형편없는 군대를 흔히 '당나라군대'라고 부릅니다. 중국 역대 왕조 가운데 가장 개방적이며 국제적인 제국으로 평가받는 당나라(618-907년)는 군사력 또한 당시 세계 최강이었습니다. 하지만 재물을 주고 지휘관 자리를 사고 파는 매관매직이 성행하면서 군기는 문란해지고 서서히 오합지졸로 전락해 갔습니다. 변방을 지키는 최고 사령관인 절도사 자리도 돈만 있으면 살 수가 있었습니다. 당나라군대는 이렇게 하루하루 타락해갔고 천년 왕국을 꿈꾸던 당은 매관매직의 정점인 절도사들이 난립하며 나라를 어지럽힌 끝에 안사의 난을 분기점으로 쇠락의 길을 걷기 시작해 삼백년이 못돼 결국 멸망하고 맙니다.

신해혁명 이후 중국 대륙을 통일한 국민당의 군대는 병력의 수에서 뿐 아니라 미국 등의 지원으로 확보한 화력과 보급물자에서도 공산당 군대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압도적인 우위에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연전연패하며 결국 대륙을 내주고 타이완 섬으로 쫓겨나고 말았습니다. 장개석의 국민당군대를 천 년 전 '당나라군대'로 만들어 버린 것도 역시 매관매직에 따른 군기 문란이었습니다.

이런 역사적 경험 때문에 중국은 당나라군대 콤플렉스를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서슬 퍼런 시진핑 정부의 반부패 사정 드라이브 속에 인민해방군에 대한 대대적인 숙군작업이 벌어졌습니다. 중앙군사위 부주석까지 지냈던 쉬차이허우를 군내 부패의 몸통으로 지목해 군적과 당적을 박탈하는 등 상당수의 장성들을 낙마시켰습니다. 부패의 핵심은 매관매직이었습니다. 계급 조직인 군대에서 진급만큼 중요한 것은 없기 때문에 인사철이면 상상을 초월하는 매관매직 거래가 있기 마련입니다. 매관매직으로 자리를 얻은 자는 필연적으로 부하들로부터 진급을 미끼로 뇌물을 받기 마련입니다. 본전 생각 때문일 겁니다.

인민해방군에 대한 감찰 과정에서 장군, 즉 별을 달기 위해 3천만 위안, 우리 돈으로 최소 50억 원의 상납금이 기본이라는 사실도 밝혀졌습니다. 매관매직 혐의에 대한 수사망이 좁혀오자 해군에서만 지난 석 달 사이 두 명의 장군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중국의 한 부패 연구기관은 2003년부터 10년간 통계를 근거로 진급에 필요한 평균 뇌물비용이 10만 위안, 우리 돈으로 약 1700만 원 정도라는 자료를 내기도 했습니다.

사고파는 경제관념에 있어서는 세계 그 어느 민족보다 철두철미한 중국인들인지라 이 매관매직에도 나름 몇 가지 원칙이 있다고 합니다. (아래 글은 신화통신 인터넷 판에 실린 기사를 바탕으로 작성했습니다.)
중국군

● 누가 사고? 누가 파나?

돈을 주고 자리를 사려는 자들은 크게 두 가지 유형으로 나뉩니다. 첫 번째는 '출세'형입니다. 물려 받은 유산이 많거나 해서 돈은 크게 아쉬울 게 없고 무조건 윗자리로 올라가기 위해 뇌물 쓰기를 주저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두 번째는 '보직'형입니다. 진급보다는 재물에 관심이 많아 직위는 높지 않아도 이런 저런 인허가권이나 군수 관련 이권을 쥐고 흔들며 떡고물을 받아 챙기려고 합니다.

관직을 마치 상품처럼 팔려는 자들은 크게 둘로 나눌 수 있습니다. 먼저 인사권을 쥔 당정의 영도자급 최고 실력자들입니다. 이들은 이미 재물 욕심보다는 자기 세력을 키워 상무위원 진출 등 최고위직으로 올라갈 발판을 바로 이 매관을 통해 마련하고자 합니다. 따라서 이들에게는 상납 못지 않게 확실한 충성 맹세를 보여주는 게 중요합니다. 영도자급에는 못 미치지만 이들 밑에서 수하 노릇을 하는 차급, 부급 실력자들입니다. 이들은 직접 인사권을 행사하지는 못하지만 보스 아래 계파를 뜻하는 이른바 '방(幇)'을 실무적으로 관리하며 줄 세우기도 하는 문고리 권력입니다. 실제 매관매직은 이들의 손을 거쳐야하기 때문에 지저분한 뒷거래도 이들의 몫입니다. 이들을 발본색원해야 매관매직 근절이 가능한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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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제 이뤄지나?

매관매직이 집중적으로 일어나는 시기는 크게 둘로 나뉩니다. 하나는 공산당 대표대회 등 이른바 선거 시기입니다. 중국은 우리나라와 달리 군인들도 공산당의 당적을 보유하기 때문에 당 대회에도 참석합니다. 얼마 전 끝난 18기 4중 전회나 전인대 같은 대규모 행사 때는 전국 각지의 간부들이 베이징으로 다 모여드는데 이때 경향 간 교류는 물론 각종 '관시'가 동원된 인맥 쌓기, 눈도장 찍기가 밤낮없이 천지사방에서 벌어집니다.

다음은 권력 교체기입니다. 새 권력이 들어서면 당연한 수순인양 수많은 자리가 바뀌게 마련입니다. 매관매직에 절호의 기회입니다. 물러나는 권력도 결코 꺼진 불은 아닙니다. 끈 떨어진 게 아니라 더 좋은 곳으로 영전해 갈 경우엔 떠나기 전에 미뤄 뒀던 인사 청탁을 한꺼번에 처리하고 싶어 하고 그 자리에서 뒤가 구린 일이 많았다면 후환을 없애기 위해라도 자신의 약점을 아는 자들의 입을 막을 필요도 있습니다.

매관매직 흥정엔 명절이 가장 좋은 시기입니다. 중국에서는 춘제와 단오절, 중추절 이 세 명절에 윗사람 집을 방문하거나 고가의 선물을 하는 것을 비교적 관대하게 여기는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밖에 윗사람이 아프거나 자녀들이 상급학교에 진학하거나 경조사라도 생기면 역시 좋은 기회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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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떻게 이뤄지나?

뇌물로 자리를 얻으려는 자들이 자금을 마련하는 루트는 네 가지입니다. 첫째, 주위에서 돈을 빌리거나, 둘째, 대출을 받거나, 셋째, 부하들로부터 찬조금을 수금하는 방법, 마지막 넷째, 공금횡령입니다.

이들의 행동 유형은 크게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강태공'형입니다. 긴 낚시줄을 드리우고 일희일비하지 않고 대어를 낚을 때를 진득하니 기다리는 부류입니다. 둘째, 흰 눈 밭에 검은 연탄을 던지는 유형입니다. 윗사람이 갑자기 아프거나 그 자녀가 갑자기 출국을 하거나 이런 의외의 상황이 닥치면 절대 이를 놓치지 않고 강한 인상을 남겨 원하는 바를 이루려는 감성형 부류입니다. 셋째, 화끈한 파이터 유형입니다. 인사권을 쥔 윗사람이 절대 거절할 수 없는 상상 이상의 금액으로 한 방에 게임을 끝내려는 부류입니다.

자리를 팔아 영달을 추구하려는 자들의 행동 유형도 세 가지입니다. 첫째, 철저히 청렴관 행세를 하면서 뒤에서 은밀하게 매관을 하는 유형입니다. 언제든 상황이 불리해지면 꼬리자르기를 합니다. 둘째, 말로는 거절하지만 실제 뇌물 앞에선 바로 무너지는 가장 흔한 유형입니다. 셋째, 대놓고 받아 챙기는 유형으로 거래는 확실하지만 비밀유지가 어렵습니다.

매관매직이 횡횡하다보면 능력 있고 정의로운 사람들은 자취를 감추게 되고 부패한 자들만 남아 결국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게 됩니다. 중국공산당이 부정·부패 척결과 공직기강 확립을 위해 지난 2년 가까이 전국적으로 벌여온 '중앙순시조'의 특별감찰이 지난주로 일단락됐습니다. 시진핑 정부가 당나라군대 콤플렉스에서 어느 정도 자신감을 갖게 됐다는 얘기입니다. 하지만 언제고 조직에 틈이 생기면 매관매직의 악습은 다시금 고개를 들게 마련입니다.

군에 대한 문민의 지휘를 주창하며 등장한 문민정부 이래 역대 어느 때 보다 군 출신 인사들을 중용하고 있는 박근혜 정부입니다. 군 선호 인사로 군의 사기에는 분명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지만 그와 동시에 남의 나라 얘기로만 치부하지 말고 '당나라군대' 콤플렉스에 대한 경계에 한 치의 부족함도 없어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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