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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242억 로또 1등의 몰락…진짜 사연은?

행운의 사나이에서 무일푼 사기꾼으로...


로또 1등 당첨, 누구나 한 번쯤은 꿈꿔볼 만한 일입니다. 흔히 인생역전이라고 얘기하죠. 그런데 때론 과분한 운(運)이 독(毒)이 되기도 합니다. 11년 전, 41살의 나이로 로또 1등에 당첨된 행운의 남성이 수백억 원을 모두 탕진하고 최근 사기 피의자로 구속됐습니다.



●  당첨금 242억 원…역대 2위 규모 ‘대박’

기구한 사연의 주인공 김 모 씨가 로또에 당첨된 시점은 지난 2003년 5월 24일입니다. 25번째 로또 추첨이었습니다. 앞서 2002년 말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로또가 도입되면서 일확천금의 열풍이 거세게 불고 있을 때였습니다. 당시 로또 1등 당첨금은 242억 2천7백만 원이었습니다. 역대 규모로 따지면 두 번째로 큰 액수입니다. 한 주 전에 있었던 24회 로또 추첨에서 1등 당첨자가 안 나오면서 이월금액까지 합쳐져 당첨금이 커진 겁니다. 1등 상금은 484억 원, 행운의 숫자 6개를 모두 맞춘 사람은 두 명이었습니다. 김 씨의 당첨금은 242억 원, 세금을 떼고 실제로 받아간 돈은 189억 원이었습니다.

●  그 많던 돈을 어디에 썼을까?

로또 당첨 당시 김씨는 뚜렷한 직업을 갖고 있지 않았습니다. 소액 주식 투자를 하며 근근이 생활을 이어가고 있었다는데요. 순식간에 억만금을 손에 쥔 김씨는 자신이 해오던 대로 각종 투자에 손을 벌리기 시작합니다. 일단 서울 서초구에 있는 주상복합 아파트 두 채를 마련했습니다. 각각 20억 원을 호가하는 고급 빌라였으니, 이곳에 쓴 돈만 40억 원 정도에 달합니다. 주변의 권유로 친인척의 병원을 설립하는 데 35억 원 정도를 투자했지만 한 푼도 회수하지 못했습니다. 가족에게 준 돈도 20억 원 정도. 이 밖에도 각종 투자와 소비로 김씨가 돈을 모두 쓰는 데는 불과 5년밖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  갑작스러운 ‘돈벼락’…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지금까지 나온 내용은 김씨가 경찰 조사에서 말한 내용입니다. 돈의 용처가 정교하게 드러나진 않습니다. 어쩔 수 없는 것이, 김씨가 돈을 어디에 썼느냐는 경찰 수사 대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경찰이 최근 벌어진 사기 사건을 수사하면서 배경지식 차원으로 진술을 받았을 뿐, 정확히 어떻게 로또 당첨금을 탕진했느냐는 본인이 아니고서는 알 수 없는 노릇입니다.

조금 더 내밀한 사연을 알아보기 위해 최근까지 김씨와 가깝게 지내온 지인 한 분을 만나 그간의 사정을 들어봤습니다. 놀랍게도 그는 김씨가 돈을 흥청망청 쓸 성격이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오히려 큰돈을 보고 몰려든 주변 사람들에게 돈을 ‘빼앗겼다고’까지 표현했습니다. 자산관리를 칼같이 하지 못하고 가까운 이들에게 한 푼 두 푼 쓰다 보니 금방 재산이 바닥났다는 겁니다. 실제로 김씨는 가족에게 20억 원을 ‘맡겼다고’ 주장하는데 가족은 ‘증여했다고’ 주장해 소송까지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김씨는 결국 민사소송에서 패소해 돈을 되찾지 못했지만 여전히 돌려받을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로또 당첨 직후에 결혼했지만 역시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로또 당첨과 함께 김씨 주위로 몰려든 사람들은 돈이 없어지자 신기루처럼 사라졌습니다.


● 순식간에 빚더미 신세로 전락

달콤했던 시간은 짧게 끝나버렸지만 강렬했던 만큼 긴 여운을 남겼습니다. 돈의 맛을 쉽게 잊지 못한 김씨는 미리 사둔 아파트를 담보로 사채를 빌려 주식 투자에 나섰습니다. 결과는 실패였습니다. 아파트를 잃은 것은 물론 제3금융권 빚 1억 3천만 원을 안게 됐습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2010년에는 인터넷 채팅에서 만난 여성에게 고수익을 내주겠다며 투자금 명목으로 1억 4천8백만 원 상당을 받아냅니다. 스스로 주식 투자 전문가라고 소개하면서 돈을 주면 선물옵션에 투자해 높은 수익을 내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로또 1등 당첨 영수증과 이미 제 것이 아닌 고급 아파트 매매계약서, 소송서류 등을 보여주며 신뢰를 얻었다고 합니다. 어김없이 투자는 실패했고 결국 김씨는 돈을 갚지 못해 고소까지 당하게 됩니다.


악성사기범으로 수배됐다가 3년 만에 구속

서울 강동경찰서에 고소장이 접수되면서 김씨에 대한 수사가 시작됐습니다. 김씨는 경찰의 출석 요구에 불응하고 잠적했습니다. 그렇게 흐른 시간이 3년. 피해금액이 큰 탓에 김씨는 악성사기범 명단에까지 올랐습니다. 찜질방을 전전해오던 김씨는 지난 15일 서울 강남에 있는 한 공인중개사무소에서 붙잡혔습니다. 그곳에서 아르바이트로 일하면서 겨우 생활을 이어가고 있었다고 합니다. 경찰 조사를 받으면서도 돈을 갚을 수 있다고 줄곧 주장하던 김씨는 이제 구속된 상태로 재판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흔히 로또에 당첨될 확률이 벼락 맞을 확률보다 낮다고 합니다. 로또 1등 당첨 확률은 8백만 분의 1. 엄청난 운이 따라야 합니다. 그렇게 다가온 행운이 마냥 좋은 결과만을 가져오는 것은 아닙니다. 김씨의 사례처럼 돈에 대한 맹신이 삶을 파탄으로 몰수도 있습니다. 이번 사건을 취재하면서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던 생각은 ‘사람은 자기 분수에 맞게 살아야 한다’는 겁니다. 돈이 우리 삶에서 중요한 요소라는 건 분명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가진 게 많을수록 선택의 폭도 넓어지고 마음의 여유가 생길 수도 있겠죠. 하지만 땀이 아니라 요행으로 얻은 부는 인생에서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에 대한 판단을 흐리게 할 수 있습니다. 이번 사건이 하나의 가십이 아니라 우리 사회에 만연한 물질만능주의를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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