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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일본 국립공원에선 불곰이 '원주민'(?)

- 일본과 지리산 사례 비교.분석

[취재파일] 일본 국립공원에선 불곰이 '원주민'(?)

"원래 곰의 서식지였던 곳에 인간이 들어와서 사는 것이다." 야생 동물에 관한 일본 사람들의 사고 방식은 뭐랄까 참 '교과서적'이었습니다. 일본 홋카이도 시레토코 국립공원과 그 주변 지역의 이야기입니다.

박현석 취파_640


그런 생각은 결국 원주민(?)인 그들, 즉 곰의 삶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대신 '사람'을 통제하는 쪽으로 공존의 원칙을 세우게 만들었습니다. 그런 원칙에 입각해 고작 8백 미터 남짓한 탐방로를 만드는 데 8억 엔, 우리 돈 80억 원이나 되는 거금을 들였습니다. 곰이 사는 곳을 빌려서 사람이 탐방하려면 그 정도 돈을 지불해야 한다는 선진국다운(?) 발상이었습니다. 뭐 그렇다고 눈에 확 들어오는 특별한 탐방로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곰이 자주 출몰하는 곳이다보니, 3미터 높이의 고가 나뭇길을 만들어 사람이 조금 더 높은 곳으로 곰을 피해다니도록 한 겁니다.

돈을 많이 쓰는 것보다 더 놀라운 점은 산과 인접한 학교들에서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한 번은 학교 운동장에 침입한 곰이 사살되기도 했다는데, 운동장 주변에 낮은 전기 울타리만 설치했을 뿐 더 이상의 특단의 조치는 없었습니다. 키가 2미터에 가까운 불곰의 출현에도 이곳 교사들은, 또 학부모들은 자신의 아이들에게 그동안 주민들이 곰과 공존해왔고, 공존할 수 있으며, 공존해야만 한다고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곰이 한 번 나타났다고 해서 수선을 떨거나 주변의 곰을 모두 잡아들여야 한다는 식의 논리는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농작물 피해를 자주 본다는 농민들도 곰을 관리하지 않는 당국에 화를 내기보다, 곰을 그저 친구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정말 얄미울 정도로 바람직해 보이는 사고 방식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물론 시스템에 대한 원천적인 믿음과 경제적 보상이 밑바탕에 깔려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될 수 있는 한 곰과 사람의 만남을 막되, 만약의 상황에 대비해 잘 갖춰진 24시간 대응 시스템에 대해 주민들은 신뢰를 표했습니다. 실제로 지난 30년 간 곰에 의한 인명피해는 한 차례도 없었고, 농작물 등의 피해에 대해서는 적절한 보상이 뒤따르고 있었습니다.
박현석 취파_640

지리산 반달가슴곰 복원 10년을 맞은 우리나라에서 배울 만한 부분이 있어 보입니다. 최근에 지리산 대피소 주변에서 곰과 맞닥뜨린 탐방객 이야기가 전해지면서 이런 생각이 더욱 절실해졌습니다. 일단 시스템을 갖출 것, 일방적으로 지역 주민들의 희생을 강요할 것이 아니라, 적절한 금전 보상을 통해 현실적으로 곰과 공존이 가능하도록 만들어 줘야 합니다. 거기에 비록 비용이 들더라도 전기 철책과 같은 안전 시설 설치를 통해 사용 공간의 분리를 확실하게 해 줘야 곰도 사람도 편하게 지낼 수 있습니다.

물론 우리 반달가슴곰은 멸종 상태까지 갔다가 다시 복원하는 경우로, 엄밀히 일본 시레토코의 불곰과 상황이 많이 다릅니다. 하지만 임산물 채취에 나설 때마다 불안에 떨어야 하는 주민이나 곰을 만날까 두려운 등산객들, 매년 실제로 피해를 보고 있다는 양봉 농민들이 '뭐하러 돈 들여가며 곰을 복원해서 해를 입히느냐'는 비난을 받지 않기 위해서라도 적절한 보상 사고 예방 시스템 정립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박현석 취파_640

지리산에 사는 반달곰의 개체수가 이제 서른 마리를 넘어서면서 국립공원 경계를 수시로 넘나들고 있고, 실제로 사고도 경계 밖에서 일어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만큼 사람과의 접촉 기회가 높아졌다고 본다면 이제는 사람과 공존하는 방법에 대한 연구와 논의가 필요해진 겁니다. 곰의 서식지를 사람이 빌려 쓴다는 일본인들의 마음가짐까지 베껴 올 필요는 없지만, 지금까지처럼 몇 마리를 복원했니, 못했니 따지는 정량적 성과주의에서 우선 벗어나야 할 때입니다. 없이 살던 시절 개발 논리, 혹은 무지함 속에 많은 야생 동물들을 멸종 위기로 내몰았던 만큼 지금이라도 그들에게 한걸음 정도 양보하는 방법을 고민해야 할 것 같습니다.

▶반달가슴곰 복원 10년…아름다운 공존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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