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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장쩌민, 저우언라이는 왜 '방광암'에 쓰러졌나?

[월드리포트] 장쩌민, 저우언라이는 왜 '방광암'에 쓰러졌나?
지난 추석 연휴 기간, 베이징 주재 특파원단에 예상치 못한 작은 파문이 하나 일었습니다. ‘중국 정가의 태상왕’으로 불리는 장쩌민(江澤民) 전 국가주석이 지병인 방광암이 악화돼 중추절을 하루 앞둔 7일 오전 베이징 301병원에서 숨을 거뒀다는 소문이 한국 언론 몇 군데에 실린 겁니다. 지난달 초에도 일본 언론에 한 차례 방광암 투병 중 위독설이 나돌았던 차에 88세 고령인 장쩌민의 사망은 어쩌면 이미 초읽기에 들어간 사안인지라 진위여부에 대해 백방으로 수소문해봤지만 어느 누구로부터도 확인을 받을 수 없었습니다. 속을 태우던 차에 이틀이 지난 9일 중국 외교부 대변인이 장 전 주석 사망설은 처음 듣는다며 오보임을 공식적으로 밝히면서 장쩌민 사망 해프닝은 일단락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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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쩌민이 투병 중이라는 방광암이 저에게는 좀 생소해 인터넷 검색부터 해봤습니다. 방광암은 우리나라의 경우 전체 암 발생의 1.7%를 차지하는 8위 순위의 비교적 희귀한 암이었습니다. 진단 환자의 80~90% 가량이 소변에 피가 섞여 나오는 증세를 보이기 때문에 초기진단율이 높고 생존율도 78%로 상당히 높은 축에 속한다고 나와 있었습니다. 방광암의 경우 60~70대에 많이 발생하고 남성의 발병률이 여성의 4배 이상 높았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방광암의 주요 원인이 흡연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중국은 좀 다를까 해서 찾아봤더니 대륙에서도 방광암은 폐암이나 위암, 간암, 식도암, 직장암, 자궁암, 유선암에 이어 10위권에 머물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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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것은 중국의 고위급 정치인 가운데 방광암으로 사망했거나 투병 중인 사람들이 꽤 된다는 사실입니다. 후진타오 주석 시절 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에 올라 군부 내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갖고 있던 쉬차이허우(徐才厚)가 한 사례입니다. 쉬 전 부주석은 시진핑 주석 집권 직후 일찌감치 인민해방군 ‘부패의 몸통’으로 지목되면서 당국에 체포돼 조사를 받은 것은 물론 인민해방군 상장 계급장과 공산당 당적까지 박탈당하는 수모를 겪었습니다. 말년에 밑바닥을 경험하고 있는 쉬차이허우가 설상가상으로 방광암 말기 진단까지 받아 죽음을 목전에 둔 신세가 됐다는 기사가 며칠 전 실렸습니다. 90세 전후까지 장수하는 영도자들이 즐비한 중국 정가에서 올해 71세에 불과한 쉬차이허우의 방광암 발병 원인은 짐작컨대 치열한 권력투쟁에서 힘없이 밀려난 노쇄한 정객이 받은 정신적 충격 탓이컸었을 겁니다. 설명해 드렸듯이 방광암은 혈뇨로 진단이 가능해 말기까지 악화되기 전에 충분히 발견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어디엔가 은밀히 수감돼 부패혐의를 강도 높게 조사받아야하는 입장에서 병원 검진이나 치료가 쉽지는 않았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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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광암으로 생을 마감한 현대 중국의 역사적인 인물로는 ‘영원한 총리’ 저우언라이(周恩來)가 있습니다. 마오쩌둥에 이어 2인자로 신 중국을 이끌었던 저우언라이의 죽음도 내막을 들여다보면 예사롭지 않습니다. 방광암 악화로 1976년 1월 78세의 나이로 사망한 저우언라이는 죽기 전까지 무려 14차례나 수술을 반복하며 오랜 투병 생활을 했습니다. 중국 최고의 의료진이 저우언라이가 방광암에 걸린 것을 처음 안 것은 닉슨 미국 대통령이 역사적인 중국 방문을 마친 직후인 1972년 5월이었습니다. 의사들의 진단은 방광암 초기였고 즉시 수술하면 충분히 완치가 가능하다는 소견이 나왔던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당사자인 저우언라이에 앞서 이 보고를 먼저 듣게 된 마오쩌둥은 예상 밖의 명령을 내립니다. 저우언라이에게 절대 암에 관해 귀띔하지 말고 별도의 지시를 내릴 때까지 수술을 허락하지 않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마오쩌둥은 다섯 살 연하인 2인자 저우언라이가 자기보다 오래 사는 걸 원치 않았던 겁니다. 1971년 린뱌오(林彪)의 쿠데타 모의 발각 사건으로 심적인 충격이 심했던 시점이라 혹시 저우언라이마저 자신에게 도전할 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컸기 때문이었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그래서 고의로 저우언라이의 조기 항암치료를 막았고 2인자가 4년 넘게 투병하며 하루하루 무기력하게 죽어가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본 겁니다. 마오가 저우의 수술을 허락한 것은 첫 암 진단 이후 2년이 지나서였습니다. 저우언라이도 주석의 음모를 알아차렸을 테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을 겁니다. 결국 저우언라이는 1976년 1월8일 방광암으로 78세에 숨을 거뒀고, 2인자를 먼저 보내고 난 지 여덟 달 뒤인 9월9일 비정한 ‘권력의 화신’ 마오쩌둥도 83세를 일기로 눈을 감았습니다. 담배를 전혀 피우지 않았던 저우가 방광암에 걸린 건 따지고 보면 평생 골초였던 마오 옆에서 오랫동안 간접흡연을 했기 때문이라는 분석까지 나올 정도로 저우언라이의 죽음은 자신에게는 꽤나 억울했을 것 같습니다.

장쩌민 전 주석은 현재 중국 전,현직 수뇌부의 휴양지인 베이다이허(北戴河)에서 요양 중이라는 얘기가 들려오고 있습니다. 저우융캉(周永康)을 위시해 자신의 수족이었던 상하이방과 석유방 인사들의 잇따른 낙마, 그리고 아들과 누이 등 자신의 일가에게까지 시시각각 반부패 칼날을 겨누고 있는 시진핑 지도부에 대해 장쩌민이 말 못할 분노와 배신감에 치를 떨고 있다는 뒷 얘기가 심심찮게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요양을 해도 시원찮은데 화병을 얻는다면 암환자에게는 치명적일 겁니다. 최고의 의술을 갖췄다는 베이징의 301병원을 오가며 마음편히 순조롭게 치료를 받는다면 장쩌민의 진짜 사망 소식은 어쩌면 한참 뒤에나 듣게 될 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부패 척결을 명분으로 한 중국 정가의 권력투쟁이 장쩌민에게 사뭇 불리한 쪽으로 치닫게 된다면, 노 정객의 부고는 예상보다 일찍 우리 귀에 전해질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인은 역시 방광암이겠지만 저우언라이처럼 장쩌민을 정말 고통스럽게 괴롭힌 건 아마도 암 세포가 아니라 곱씹을수록 쓰디 쓴 권력무상의 회한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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