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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사회적 배려 대상자' 입주 막아선 기존 주민들

"기존 주민들과 충분한 논의 거쳤어야"

[취재파일] '사회적 배려 대상자' 입주 막아선 기존 주민들
지난달, 서울의 한 아파트에 새로 입주하려던 사람들이 주차장 입구를 막고 있는 차 때문에 이삿짐을 집으로 나르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이야기가 들려왔습니다. 

이 아파트에 있는 임대주택에 입주하기 위한 사람들과 아파트에 살고 있던 주민들 사이에 문제가 생긴 것입니다. 기존 주민들이 드나들 수 있는 통로를 가로막는 바람에 새로 들어오기를 희망하고 있던 입주민들은 이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제보를 받고 바로 현장에 가봤습니다. 아파트 주차장 출입구에 차량 십여 대가 줄지어 서 있었습니다. 걸어서 들어갈 수는 있지만, 차량은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이삿짐을 싣고 온 차량은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 채 길가에 차를 세우고 서 있었습니다. 결국, 작은 짐부터 안으로 나르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주차난 때문이 아닙니다. LH가 추진하고 있던 임대주택과 그룹홈 문제를 둘러싼 갈등이 빚어낸 씁쓸한 풍경이었습니다. LH공사는 지난해 말 미분양 상태로 있던 해당 아파트 130세대 가운데 절반가량인 52세대를 사들였습니다. 임대주택과 공동생활가정인 그룹홈으로 사용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룹홈 제도는 사회생활에 적응이 어려운 노숙자나 홈몸노인, 청소년들을 그룹으로 묶어서 생활하며 지역사회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제도입니다.
취재파일

지난해 초까지 서울 시내에서 171곳이 운영되고 있었습니다. LH공사는 사들인 아파트 일부를 임대주택으로, 나머지는 그룹홈으로 사용하기 위해서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신청을 통해 임대주택 입주민 19세대를 추첨했고 당첨된 주민들의 입주가 지난달부터 차례대로 시작될 예정이었습니다.

여기서 문제가 시작됩니다. 기존에 살고 있던 주민들이 문제를 제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동안 임대주택과 그룹홈 설치에 관한 추진과정을 전혀 알지 못했고 어떠한 고지도 받지 못했던 것입니다.

기존 주민들은 말합니다. “LH공사와 시공사는 살고 있던 주민들에게 임대주택과 그룹홈이 들어온다는 사전 고지를 제대로 하지 않았습니다. 이사 들어오기 전날에서야 주민들이 사실을 안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만약 그룹홈이 들어와서 알코올 중독자, 탈북자, 노인성 치매환자 등이 주변에 살게 된다면 어떻겠습니까? 아무런 협의도 사전 예고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LH공사와 시공사에 대한 항의의 표시로 자동차를 세워 놓은 것입니다."

자동차로 아파트 주차장 입구를 막아선 것은 이것 때문에 시작됐습니다.

기존 주민들이 막아서자 LH공사와 주민 사이에 협상의 물꼬가 트였습니다. 협상을 통해 그룹홈은 들어오지 않는 것으로 결론났고 자동차는 치워졌습니다. 하지만, 좋은 집에 들어온다는 단꿈에 부풀어 이사를 시작했을 임대주택 입주민들은 마음에 상처를 입은 뒤였습니다.

전문가는 "임대주택이나 그룹홈이 들어오게 된다면 기존 주민들에게 설명회를 먼저 열어 충분한 논의를 거치는 것이 중요합니다. 외국의 경우 그룹홈과 같은 제도를 교육적으로 활용해 더불어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게 하는 프로그램이 있습니다."라고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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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H공사와 시공사가 기존 주민들과 논의를 충분히 거친 다음 임대주택과 그룹홈이 들어왔더라면 자동차로 주차장 출입구를 막는 불상사가 생기는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또 다른 의견도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이런 문제가 발생하는 이유는 항상 문제가 될 수 있는 것들을 은밀하게 일을 추진하다가 결과가 나타날 때쯤 표면으로 드러내 보이기 때문입니다. 애초에 시작부터 당사자들을 제외한 제3의 중재기관을 통해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그런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에 이런 일들이 계속해서 발생합니다. 애초에 행정기관이 나서서 문제를 해결할 의지를 보인다면 소모적 논쟁을 갈 필요성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고시 의무가 없다거나 관보에 게재했다는 등의 법률적으로 최소한의 것만 보여줄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개입해 문제 해결에 나서는 것이 중요합니다."

라인홀트 니부어는 그의 책인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에서 개인의 도덕성보다 집단의 도덕성은 훨씬 낮다고 이야기합니다. 이번 일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결국, 집단과 집단의 이익 갈등 때문에 이 같은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개인이 해결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결국, 제도적으로 뒷받침되어야 하고 행정기관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중재를 해야 할 문제이지만 그렇지 않다 보니 양쪽 다 상처를 입고 끝나는 경우가 많아지는 것입니다.

<한성대 행정학과 이창원 교수와 건국대 부동산학과 신종칠 교수가 자문을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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