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이런 예외적인 조항을 활용해 일부 보험사와 텔레마케팅 조직이 부당 승환계약을 조직적으로 하고 있다는 겁니다.
직장인 박모씨도 이런 부당 승환 계약의 피해자중 한사람입니다. 박 씨는 모 생명보험사의 저축보험에 가입해 있는 상태였는데, 어느날 보험사 텔레마케터에게 이런 전화를 받습니다. 기존 보험은 충분한 수익률을 거두기 힘드니 해지하고 새로운 저축보험으로 갈아타라는 것이었습니다. 해지에 따른 원금손실을 감내해야 하지만, 새로운 상품의 수익률이 좋아 만기까지 부으면 원금손실도 만회할 수 있다고 얘기했습니다.
문제는 보험 모집인이나 텔레마케터들이 계약자에게 승환 계약의 불리한 점은 언급을 안해주는 경우가 많다는 점입니다. 계약자 입장에서는 자신의 계약 내용을 상세히 알고 접근하는 모집인과 텔레마케터의 설명에 넘어갈 수 밖에 없습니다. 이들은 승환 계약을 하기 전에 교육을 단단히 받고 계약자에게 접근하기 때문에 계약자가 의문을 제기할 때마다 교묘히 피해가며 계약자를 설득합니다.
얼마 전 용기 있는 전직 보험사 모집인이 기자한테 제보를 해왔습니다. 올해 1월말까지 모 손해보험사에서 조직적인 승환 계약이 대규모로 있었다는 겁니다. 이 제보자는 모집인이나 전화상담원의 감언이설에 넘어가는 계약자의 피해를 더 이상 방치할 수 없어 고심 끝에 제보하게 됐다고 속사정을 털어놨습니다. 놀랍게도 지난해 연말부터 카드정보유출 사태가 터지기 직전인 1월말까지 만 건이 넘는 부당 승환 계약이 있었다고 증언했습니다. 충분한 자료와 녹취록도 제시했습니다.
승환 계약은 주로 기존의 보험을 해지하고 새 보험으로 갈아타게 하는 유형이 많습니다만, 최근에는 의료실비보험(실손보험) 등 상품을 가리지 않고 일어나고 있습니다. 예전에 나왔던 실손보험은 환자가 부담한 비용의 100%를 지급했지만, 보험사의 손해율이 급증하자 규정을 바꿔 80~90%로 보장을 낮췄습니다. 3년에 한번 올리던 보험료도 1년에 한번으로 바꾸고 암을 비롯한 질병 보장 내용도 변경한 새로운 실손보험을 출시한 겁니다. 모집인은 과거에 100% 보장하던 실손보험 가입자에게 전화를 걸어 새 상품이 좋으니 갈아타라고 권유합니다. 제보자가 제공한 녹취록에는 놀랍게도 이런 내용이 고스란히 들어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월 20만을 내던 저축 보험료를 감액하고 새로운 상품으로 갈아타게 하는 수법도 등장했습니다. 해지에 따른 민원의 소지를 줄이기 위해 보험사가 고안해낸 꼼수인 겁니다. 보험상품은 감액할 경우 보험료만 줄어드는 게 아니라 감액 전에 이미 떼였던 사업비 손실을 감수해야 합니다. 부분 해지나 다릅없는 겁니다. 또 감액에 따른 별도 사업비도 공제됩니다. 결국 계약자 입장에서 기존 보험료의 원금 회복 기간이 길어지거나 영영 원금 회복이 안 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불리한 계약사항은 말해주지 않고 기존 상품의 단점과 새 상품의 장점만 부각시켜 부당 승환 계약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그나마 금감원의 정기검사에 적발되면 원상회복이 비교적 수월하지만 계약자 개개인이 뒤늦게 이런 사실을 알면 보험사와 힘겹게 싸워야 합니다. 부당하게 승환 계약을 당한 한 계약자는 보험사가 사후처리를 질질 끌고, 금감원에 민원을 해도 묵묵부답이거나 보험사와 해결하라는 말만 늘어놓는다고 항변합니다. 개인이 보험사나 금감원에 민원을 제기하면 처리속도가 늦는다는 불만이 곳곳에서 들리고 있습니다.
부당 승환 계약이 근절되지 않는 이유는 보험사와 모집인에게 이익이 되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보험계약을 성사시켜야 보험사의 수익도 늘어나고 모집인도 수당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부당 승환 계약 관행은 반드시 사라져야 합니다. 지금껏 금융당국은 보험산업에 대한 발전에 신경을 주로 써온 게 사실입니다. 이제는 양적인 보험산업 성장뿐만 아니라 질적인 성장을 해야할 때입니다. 계약자의 이익에 반하는 부당 승환 계약에 대해서는 엄정하게 징계 수위를 높이고, 계약자들이 억울하게 손해를 본 경우 신속하게 구제받을 수 있는 방안을 더 마련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