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취재파일] 리조트 붕괴…부끄러운 우리의 자화상

[취재파일] 리조트 붕괴…부끄러운 우리의 자화상
 경주 마우나 리조트 붕괴사고가 난지 4시간여 뒤인 18일 새벽 1시20분쯤. 사고현장에서 7km가량 떨어진 울산 21세기병원 응급실은 들것에 실려들어오는 부상자와 대학생 아들, 딸을 찾으려는 가족들로 북적였다. 굵은 눈발은 진눈깨비로 변해 애타는 가족들의 마음을 적셨다. 응급실에서 전달받은 피해자 명단중 6명의 이름옆에는 DOA 라고 표시돼 있다. 응급실 도착시 이미 사망이라는 뜻의 의학용어다. 사건 기자 시절 새벽에 병원을 돌며 당직자들에게 늘 확인했던 그 용어, DOA! 비명에 스러져간 꽃다운 청춘들이 너무 가여워 마음이 무겁고 아팠다.
 
 다친 학생 중엔 다행히 중상자는 많지 않았다. 붕괴사고 때 탈출하거나 구조되면서 타박상과 찰과상을 입은경우가 대부분이란 병원측 설명에 그나마 마음이 놓였다. 머리에 붕대를 두르고 있거나 침대에 누워 링거를 맞고 있는 학생들에게 조심 스럽게 말을 걸었다. 이럴때는 참 곤혹스럽고 미안해서 최대한 조심해서 입을 뗐다. 사고당시 상황이 어땠는지? 어떻게 구조됐는지? 다행히 학생들은 침착했고 또렷하게 기억해 정황을 설명해주었다. 긴박하고 끔찍했을 현장 그림이 파노라마처럼 스쳐갔다.

  경주시 양남면 동대산 마우나 리조트 체육관 붕괴사고현장을 찾은 것은 낮 1시쯤 이었다. 경주 경찰서에서 34km거리였지만 해발 500m 정상 부근에 위치한 리조트까지 가는 길은 만만치 않았다. 더구나 눈발은 그칠 줄 모르고 흩날렸다. 구불구불 산허리를 타고 올라가는 길은 마치 대관령 옛길과 비슷했다. 며칠째 계속된 폭설로 온 산이 설국으로 변한 모습이어서 강원도 땅 같은 착각이 들기에 충분했다. 산 중간쯤 올라가자 경찰버스가 줄지어 차로에 세워져있고, 구조 및 응급차량의 통로를 확보하느라 의경들이 눈보라와 칼바람을 맞아가며 차량 진입을 막았다.

 독립된 리조트 숙소건물이 사방으로 줄지어 늘어서 있는 가운데 산속 끝자락에 체육관건물이 한눈에 들어왔다. 샌드위치 패널 지붕을 떠받치던 철골이 엿가락처럼 휘어 가운데로 무너져 내렸고 출입구 쪽 H빔 쇠기둥도 비스듬히 휘어진 모습이 참혹하고 끔찍했다. 무너진 지붕위에서 쏟아진 눈이 체육관 바닥에 수북이 쌓였다. 찢겨진 샌드위치 패널벽, 칼날처럼 깨진 유리문, 주인 잃은 신발과 소지품들이 간밤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비극의 순간을 말해 주었다. 구조작업이 마무리된 붕괴현장은 경찰조사를 위해 폴리스라인이 둘러쳐진 가가운데 무거운 침묵과 적막감이 돌았다.
 
 1박2일로 진행된 부산외대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는 모두 2천4백명중 1차로 1천52명이 참석했고, 사고당일 저녁 체육관 행사에 5백60여명이 입장해 운명의 기로에 서있던 셈이다. 아비귀환 속에 1백15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사망10명, 부상105명. 사망자 10명중 대학생은 9명이고 1명은 행사에 참가했던 레크레이션강사 연극인이다. 경찰은 수사본부를 설치해 붕괴원인조사에 착수했다. 체육관의 부실시공과 감리, 그리고 행사대행업체와 리조트측의 안전조치 부실 여부를 밝히는 쪽으로 수사의 갈래가 정해졌다.

 붕괴원인을 찾기 위한 현장감식이 우선 시작됐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직원13명,경찰 과학수사팀 직원14명 등 27명이 정밀감식에 참여했다. 건축주와 시공사, 감리가 시방서대로 공사를 진행해 건물을 지었는지,건축 허가후에 증축이나 개축은 없었는지, 부실건축 관계는 차차 밝혀지겠지만 그에 앞서 안전조치가 허술했다는 사실은 바로 드러났다.

현장포토_경주500


 1천명이 넘는 대규모 학생이 참가한 행사였고, 폭설로 눈이 수북이 쌓였지만 차가 드나드는 도로에만 눈을 치웠고 체육관 지붕의 눈은 손조차 대지 않았다. 5백60여명이 들어간 체육관 내부에는 안전요원을 배치하지 않았다고 한다.

 설마가 사람 잡는다는 속담이 기분 나쁘게 들어맞았다. 되 뇌이고 싶지 않은 안전 불감증이란 단어도 떠오른다. 인재라는 말 역시 또 나왔다. 리조트 소유주인 코오롱그룹과 부산외대는 잇따라 사죄발표를 했다. 정치인과 고위관료들의 방문도 줄을 잇고 이구동성으로 다시는 이런 일이 없어야한다고 입을 맞췄다. 그동안 참 많이들은 말이다. 귀가 앞을 지경이라면 좀 심할까? 모두 부질없이 소 잃고 지붕고치는 격이다.

 10년 전 1994년 10월21일에는 서울 성수대교가 붕괴돼 32명이 숨지고 17명이 다쳤고, 그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인 이듬해 6월29일에 삼풍백화점이 무너져 사망5백2명에 부상9백 37명,실종6명이라는 처참하고,비극적인 사고가 잇따랐다. 원인은 부실시공에 유지관리 잘못, 안전조치 미흡으로 요약된다. 인력으로 감당할 수 없는 천재지변이 아니고 사람의 잘못이 제일 컸다. 10년이 지났지만 이번에도 사람의 잘못이다. 달라진 게 없이 똑같은 말들이 무성하다.

 프랑스의 지성 스테판 에셀은 “분노할 일에 분노하기를 결코 단념하지 않는 사람이라야 자신의 존엄성을 지킬 수 있고,자신이 서 있는 곳을 지킬 수 있으며,자신의 행복을 지킬 수 있다”고 했다. 분노라는 말이 가슴에 와 닿는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