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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한 박자 늦게 시작된 애도의 시간

경주 리조트 사고 취재를 다녀와서

[취재파일] 한 박자 늦게 시작된 애도의 시간
나른하게 앉아있었던 어제 오후, 스마트폰으로 인터넷에 접속했습니다. 포털 사이트 메인 화면에 어떤 기사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희생자 아버지, ”딸이 갔으니 모든 것 용서“
(부산=연합뉴스) 오수희 차근호 기자 = 10명의 목숨을 앗아간 경주 마우나오션리조트 붕괴사고 희생자의 첫 장례식이 20일 엄수됐다. 이날 부산 성모병원에서는 부산외대 비즈니스일본어과 신입생 고 박주현(18)양의 발인식이 열렸다.

박양의 영정과 시신이 성전으로 들어가자 미사에 참석한 사람들은 일제히 흐느꼈다. ....특히 박양의 아버지 박규생씨는 모든 걸 용서하겠다고 말해 주위를 숙연하게 했다.

박씨는 "너무 슬퍼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우시면 (제 딸이) 길을 잘 못 찾을까 봐 염려가 됩니다. 대단히 감사드리고 모든 걸 다 용서하고, 제 딸이 갔으니…."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갑자기 후두둑 눈물이 떨어졌습니다. 주변에 보는 눈도 있었는데 멈추지 않고 흘러내렸습니다. 워낙 아버지와 각별한 사이라 부녀간의 정을 다룬 드라마나 영화를 볼 때마다 남들보다 반응 속도(?)가 빠른 편인 이유도 있지만, (지금 와서 생각하니) 제가 기사를 읽고 흘린 눈물엔 다른 의미도 담겨 있었던 것 같습니다.

오늘로 경주 마우나리조트 붕괴 사고가 발생한 지 5일 째에 접어듭니다. 사고 발생 8시간 후인 화요일 새벽 5시부터 이틀동안, 전 경주 리조트 사고 현장에 있었습니다. 월요일 밤 회식을 하던 도중 갑자기 사고가 났다는 속보가 뜨자마자 (기자들끼리 표현을 빌리자면) ‘총’을 맞고 서울에서 5시간 반 거리의 경주로 급히 달려갔습니다. 경주에 도착하기 전부터 라디오와 TV를 통해 시시각각 조금 더 구체적인 사고 현황과 개요를 접했습니다. 체육관에 있던 학생수가 560명 정도인데, 여전히 매몰돼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수가 100명 가까이 된다는 속보가 떴을 땐 정말 아찔했습니다.

경주 리조트 붕괴
현장에 도착하니 상황은 생각보다 더욱 열악했습니다. 리조트는 외딴 산 기슭에 위치했는데 가는 길이 어찌나 굽이굽이 곡선 형태였던지, 왜 초기 대응이 늦어졌는지 이해할 만했습니다. 며칠 동안 내린 눈이 꽁꽁 얼어 길은 온통 빙판이었습니다. 스노우체인을 설치하지 않으면 위험할 정도였습니다. 리조트 입구에서 사고가 난 체육관까지는 차를 타고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산길을 올라 15분 이상 걸었습니다. 눈발이 거세게 날려 눈을 뜰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급하게 오느라 부츠나 방한복을 못 챙겨왔던 저로선, 아찔한 추위였습니다.

사고 현장에 도착했을 당시엔 이미 상당 수의 매몰자들이 구조된 이후였습니다. 벌써 도착한 십수개의 방송사 기자들이 체육관을 배경으로 일제히 중계 방송을 시작했습니다. 새벽 5~6시,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실종자들이 여럿 있었던 터라 구조대원 분들은 극도로 예민한 상태에서 매몰자들을 찾고 있었습니다. 빙판길을 엉금엉금 기어 오르다시피 도착한 크레인과 포크레인 같은 중장비들이 내는 소음이 아직도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그렇게 서서히 날이 밝았고, 다행히 소재지가 파악되지 않았던 몇몇이 다른 곳에 이동을 해 있다는 사실이 확인됐습니다. 체육관엔 더 이상 매몰자가 없다는 사실이 확인된 겁니다.

그로부터 하루 꼬박, 실시간으로 중계 방송을 하고 시간이 날 때마다 사고대책본부로 달려가 본부가 내놓는 대책과 일정들을 취재해 보고하는, 정신없는 일정이 시작됐습니다. 안행부 장관에 경찰청장 등 주요인사가 찾아오고, 국과수와 경찰의 현장감식이 이뤄지는 가운데 외부에선 합동분향소가 설치되고 병원에선 유족들이 리조트 측과 보상을 두고 협의에 들어갔다는 소식까지 전해졌습니다. 후배기자와 단둘이 현장을 뛰어야 하는 상황이라 눈코 뜰 새가 없다는 말로는 부족할 정도로 바빴습니다. 30시간쯤 연속근무를 한 터라 어느 순간부터는 머리가 잘 돌아가지 않고 그야말로 백지처럼 눈 앞이 하얘지는 순간도 몇번 경험했습니다. 빙판길을 이리저리 뛰어다니다 엉덩방아를 심하게 서너번 찧었는데 잠시 화장실에 들어가 옷을 내려보니 피멍이 시퍼렇게 들어 있었습니다.

그렇게 만 하루 반을 꼬박 현장에서 치인 후, 서울로 복귀해 미뤄둔 잠을 몰아자고 겨우 정신을 차렸습니다. 그렇게 주섬주섬 일상으로 복귀를 준비하고 있던 차에 우연히 위의 기사를 읽은 겁니다. 딸의 죽음에 생살이 찢기는 고통을 느끼고 있을 아버지가 괜찮다며 '모든 것을 용서한다' 말하는 것, 오히려 슬퍼하는 사람들을 위로하는 것, 억울하게 떠난 딸이 좋은 곳으로 가는 길을 잘못들까 걱정돼 사람들이 흐느끼는 울음소리조차 염려하는 아버지의 마음. '내가 이런 일을 겪었더라면 우리 아빠는 어땠을까?' 상상하니 꺼이꺼이 울음이 터졌습니다. 그리고, 그런 저 스스로에게 생경하다 못해 혐오스러운 기분까지 들었습니다. 그제서야 제가 현장에서 스러진 학생들의 죽음에 대한 애도를 미뤄두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기 때문이었습니다.

현장에서 뛰는 기자가, 시청자들에게 이들의 안타깝고 억울한 죽음을 조금이라도 생생하게 알리겠다고 달려간 기자가, 마음으로 슬퍼하는 것을 미뤄두고 입으로만 실컷 떠들어댔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황망하다 못해 비현실적이기까지 한 人災로 떠나간 피해자들의 사연에 기계적으로 반응하다가 뒤늦게 불현듯, 내가 있었던 현장이 얼마나 비참하고 고통스러운 곳이었던가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건물 자재 밑에 깔려있었을 피해자들에게 내가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카메라로 비춘 그곳이 얼마나 지옥같은 곳이었을까,에 대해 감정이입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애도의 감정은 뒤늦게 찾아와 어제 하루 소름이 돋을 정도로 슬프고 우울했습니다. 늦게 찾아온 모든 감정이 그렇듯, 여운은 길고 농도는 더 진할 것 같습니다. 제가 미처 현장에서 묵념 한번 하지 않고 와버렸다는 사실도 깨달았습니다. 꽃같은 시기에 세상을 떠나야 했던 학생들, 그리고 생계를 책임지려 아르바이트로 현장을 찾았던 연극인까지. 진심으로 고인이 된 분들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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