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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국정원 특위 위원들은 모두 감청당하고 있다"


김수형 취재파일


“국민 여러분, 안심하고 통화하십시오!”

1999년 9월 22일, 조석간 신문 1면에는 국가정보원 등 4개 부처 명의로 <국민 여러분 안심하고 통화하십시오>라는 제목의 광고가 일제히 실렸습니다. 전날 김대중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도감청 시비를 거론하며, 정부 부처를 질책한 것에 대한 국정원의 즉각적인 반응이었습니다. 그 즈음 언론에서 도감청 문제가 집중 제기되자 결백을 주장하며, 안심하고 통화하라는 대국민 호소문을 낸 겁니다. 여기서 중요한 대목은 휴대폰은 감청이 안 된다고 못박아놓은 부분입니다. 휴대폰은 통화 감청이 불가능한데, 가입자의 인적 사항을 조회하거나 통화사실 유무 등을 확인하는 정보제공이 통화 내용을 감청하는 것으로 국민들이 오해하고 있다고 표현해놨습니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국정원은 억울하기 짝이 없을 거 같습니다. 하지도 않는 도청을 했다고 주장했으니 펄쩍 뛸 일입니다.
김수형 취재파일


6년 만에 드러난 국정원의 거짓말

하지만 이런 국정원의 신문 광고는 그로부터 6년이 지나 거짓말이었음이 검찰 수사로 명백하게 밝혀졌습니다(수사 결과 발표를 당시 서울중앙지검 2차장 검사였던 황교안 현 법무장관이 맡았었습니다.) 검찰은 당시 정치인 등에 대한 도감청 의혹을 국정원이 모두 부인하면서 중앙일간지에 '휴대폰 감청 불가' 취지의 광고를 게재하여 진실과 다르게 발표했다고 수사 결과문에 못박았습니다. 진실을 오히려 숨기면서, 국내 주요 인사 등에 대한 고급첩보 수집을 독려하면서 보안을 유지했다고 밝혔습니다. 이 때문에 휴대전화 도청을 담당했던(휴대전화 감청장비를 R-2라고 불렀습니다.) R-2 수집팀들은 격무와 난청 등으로 고생했다고도 써놨습니다. 앞으로는 휴대전화 감청은 안 된다고 하면서, 뒤로는 영장도 없이 국정원은 도청을 계속 했다는 얘깁니다.

휴대전화 감청 지금은 정말로 안 되나?

2G폰이 많았던 2000년 대 초중반과는 달리 지금은 세상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이제는 3G폰과 4G폰인 LTE스마트폰을 쓰는 사람들이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하지만 지금도 휴대전화 감청이 되니 마니 논란이 많습니다. 물론 지금도 정부는 휴대전화 감청이 안 된다고 합니다. 국정원은 물론 통신사들도 이제는 감청 장비도 없다고 말합니다. 2005년, 검찰도 수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개정된 통신비밀보호법의 시행을 앞둔 2002년 3월 말, 감청장비였던 R-2와 CAS라는 장비를 국정원이 인천의 한 제철소 용광로에 넣어서 없애버렸다고 발표했습니다. 이로써 대한민국의 수사기관의 감청장비는 사라진 겁니다. 하지만 지금도 과연 감청이 안 될까하는 의문은 여전히 제기되고 있습니다. 한번 속았던 경험이 있기 때문에 쉽게 믿음이 가지 않는 게 사실입니다.

‘휴대전화 감청되나’ 국정원 특위에서 쏟아진 전문가 발언

국정원 개혁특위의 공청회에서는 일반인들의 흔한 의문인 '휴대전화가 과연 감청이 될까'라는 질문에 관련 전문가들의 거침없는 답변이 이어졌습니다. 정세균 위원장의 호기심 어린 질문으로 얘기가 시작됐습니다.

@ 정세균 국정원 개혁특위 위원장(민)
= 과거에 그런 업무(정보 분야)에 종사했던 분들이 휴대폰을 여러 개 가지고 다니시는 걸 봤단 말이죠. 그렇기 때문에 국민 어느 누구도 다는 아니겠지만, 많은 국민들께서 감청이 안 될 리 없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거든요. 어떤 게 진실인지 확인이 안 되는 거 같아요.

“미국 국가안보국, 북한 정찰총국이 여기 계신 분 다 감청한다”

이 질문에 국내 국가안보학 분야 권위자인 한희원 동국대 법대 교수가 장내가 술렁일 정도의 폭탄발언을 했습니다. 국정원 특위 위원들은 다 감청을 당한다고 봐야한다는 충격적인 말이었습니다. 물론 우리 정보기관이 한다는 건 아니었습니다. 미국의 국가안보국, 북한의 정찰총국 등이 감청하고 있다는 거였습니다.

@ 한희원 동국대 법대 교수
= 감청의 영역은 영토 섹터, 국가가 없는 무한 경쟁의 영역이거든요. 우리 국민들에 대해서 (미국) 국가안보국이 더 많이 가지고 있는 거예요, 우리 국민들에 대해서 북한 정찰총국이 더 많이 감청하는 거죠. 중국이 하고. 우리가 안했다고 해서.. 여기 계신 분들은 분명히 다 한다고 보셔야합니다. 우리 정보원이 안 해도…….

정세균 위원장의 반론이 바로 이어집니다.

@ 정세균 국정원 개혁특위 위원장(민)
= 아니, 그럼 못한다는 게 말이 안 되잖아요.

@ 한희원 동국대 법대 교수
= 우리가 안하고 다른 해외정보기구들이 한단 말이죠. 우리 정보원은 내가 모르겠어요. 이론적으로는 지금 장치가 설비되지 않았기 때문에 못하는데 어디 깊은 어디에 장비가 있다고 하면, 사실상 불법으로 할 수 있죠. 그러나 역대 어느 파기한 이후에 지금까지 어느 정보 수장도 그렇게까지 책임질 일을 하지 않고, 사실상 안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안하는 사이에 해외정보기구들은 우리보다 우리 국민들에 대한 사생활 침해를 더 많이 한다는 것이 현실입니다.

결국 우리 정보기관은 국내에서 휴대전화 감청 장비를 파기한 이후에 정보수장들이 책임질 수 없기 때문에, 감청하지 않고 있지만, 해외 정보 기구들은 대한민국 국민들을 마음 놓고 감청하고 있다는 얘기였습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미 국가안보국이 독일의 메르켈 총리까지 도청한 게 드러난 상황에서 우리나라 국민이라고 휴대전화를 도청하지 말라는 법은 없을 거 같습니다. 한 교수는 다른 나라는 다 감청을 하는 상황에서 우리만 휴대전화 감청을 못하는 거는 우리 정보기구의 손발을 묶을 뿐이라는 주장을 폈습니다.

“휴대전화 감청은 2G부터 4G까지 다 된다”

그렇다면 어떤 방식으로 해외 정보기관들은 휴대전화를 감청한다는 말일까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공청회 또 다른 진술인으로 나왔던 오길영 신경대학교 경찰행정학과 교수의 말에서 들을 수 있었습니다. 오 교수는 감청 관련한 논문만 4-5건을 썼을 정도로 관련 분야 전문가입니다.

@ 오길영 신경대학교 교수
= 답만 말씀드리겠습니다. 2G부터 4G까지 다 감청됩니다. 그리고 지금 얘기하신 것처럼 통신회사에 설비를 장치하지 않아도 감청됩니다.(중략) 독일 같은 경우는 IMSI라고 해서 가상 기지국, 원래는 위치추적용입니다만, 그 기능을 좀 더 추가하면 감청이 됩니다.(중략) 그렇기 때문에 기술적으로 감청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저는 사견입니다면 인정할 수가 없습니다.

오 교수는 독일 연방헌법재판소의 결정에도 드러난 IMSI (CATCHER)라는 감청기의 예를 들었습니다. 이 장비는 감청 대상을 쫓아다니면서 특수 장비를 이용해 기지국으로 들어가는 음성을 가로채 감청하는 장비입니다. 유튜브를 검색해보니 관련 장비의 실물로 추정되는 사진은 물론 감청을 어떻게 하는지 강의까지 하는 해외 동영상들을 손쉽게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IMSI 감청기 개념을 표현한 유튜브 동영상 (클릭)


기술적으로는 지금도 휴대전화 감청이 가능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우리 정보기관들이 휴대전화 감청을 합법적으로 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휴대전화를 감청하겠다는 관련 영장을 한 번도 신청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국내 정보기관의 휴대전화 감청, 불법인가?

그렇다면 국가정보원 등 국가기관의 휴대전화 감청이 불법인가 하는 문제를 짚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통신비밀보호법은 수사기관의 통신 감청을 허용하고 있습니다. 유선전화는 물론 카카오톡, 문자 메시지, 휴대전화까지 280개 중대범죄에 대한 영장이 있으면 가능합니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미국, 영국, 독일 등 주요 선진국들은 대부분 휴대전화 감청을 허용하고 있습니다. 다만 우리의 경우, 휴대전화는 교환기에 감청 설비가 있지 않아서 기술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말해왔을 뿐입니다.

감청설비 설치, 국정원을 믿을 것이냐, 통신사를 믿을 것이냐
김수형 취재파일 C


감청설비를 통신사의 심장과도 같은 교환기에 넣으면 수사기관은 손쉽게 감청할 수 있다고 합니다. 영장이 발부된 범죄 혐의자에 대한 번호만 입력해놓으면 휴대전화를 쓸 때마다 쫓아다니지 않고도 교환기에서 통화 전체를 손쉽게 감청할 수 있는 겁니다. 대포폰으로 바꾸더라도 신속하게 번호를 입력해서 감청할 수도 있습니다. 긴급한 경우 재빠르게 수사 기관들이 대응할 수 있습니다. 테러, 납치, 간첩 사건 등에 있어서는 꼭 필요해 보이는 설비입니다.

하지만 한 가지 짚어볼 부분이 있습니다. 감청 설비가 통신사 내부에 설치되는 문제입니다. 사기업의 내부에 고객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장비가 들어간다는 건 위험한 측면이 있습니다. 내부 통제를 엄격하게 한다고 해도 어떤 사고가 일어날지 솔직히 장담할 수 없습니다. 보안이 생명인 금융사들도 일부 직원들의 일탈 행동 등으로 개인정보가 통째로 털리는 걸 보면 통신사라고 해서 그러지 말라는 법은 없습니다. 법원, 수사기관, 통신사 3자가 모두 인증하는 방식이 논의되고 있지만, 제도적인 허점이 없는지 확인에 또 확인이 필요한 부분입니다.

'휴대전화 감청 허용' 주장하기 위한 선결 조건

국경 없는 정보 전쟁이 벌어지는 엄중한 시기에 다른 나라 정보기관들만 우리 영토에서 마음대로 정보활동을 한다는 거는 여간 불안한 일이 아닙니다. 국익을 지키고 중대 범죄로부터 국민을 보호한다는 목적을 위해서라면 영장을 받은 범죄자에 한해 휴대전화 감청을 하도록 감청설비를 들여와야한다는 주장도 일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국정원의 정치개입 의혹으로 온 나라가 떠들썩하게 검찰 수사가 진행되는 상황에서 바로 국정원의 숙원 사업을 액면 그대로 다 들어주기에는 국민들의 마음이 불편할 수밖에 없을 거 같습니다. 민주당 유인태 의원은 "다 좋은 주장인데, 지금 국정원은 잘못을 저질러서 매를 맞아야하는 입장"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국정원 개혁 특위를 통해 국정원이 얼마나 뼈를 깎는 자기반성과 정치개입을 근절하기 위한 노력을 보여주느냐가 수사력 강화 방안을 어디까지 허용하느냐와 맞물려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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