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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영장 없는 '영창 처분', 이대로 좋은가?

[취재파일] 영장 없는 '영창 처분', 이대로 좋은가?
"영창 보내겠다" 협박에 목숨 끊은 사병

지난 2008년, 뉴스추적 팀에 있었을 때 군대에서 자살한 한현우 상병의 사연을 취재했습니다. 건강하고 명랑한 청년이었는데, 부대장의 괴롭힘을 받다가 결국 초병 근무를 서는 도중 소총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한 상병이 자살을 결심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부대장이 "내일 영창을 보내겠다"고 선언한 거였습니다.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다가 부대장을 욕하는 유서 한 장 남기고는 방아쇠를 당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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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장 없이 가해지는 얼차려 '영창 처분'

신체를 구금당하는 영창 처분은 기간이 짧기는 하지만, 사실 구속되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극도의 스트레스이자, 보통 사병들은 군 생활을 하면서 겪을 수 있는 최고의 징계 처분이기도 합니다. 군 시절, 영창을 갔다 온 한 후임은 꿈속에 영창을 다시 가는 장면이 나온다며 괴로움을 호소했던 기억도 있습니다. 이런 공포의 대상인 영창 처분은 부대장의 권한으로 거의 전적으로 결정됩니다. 영내의 질서 유지를 위해서 군기 문란자에 대해서 가하는 일종의 '얼차려'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인식 때문입니다. 하지만 신체를 가두는 큰일이 너무 가볍게 결정된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국회 입법조사처에서 <군 영창제도의 쟁점과 개선방안>이라는 현안보고서를 냈는데, 이 내용을 중심으로 군 영창제도의 몇 가지 논란과 이슈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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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영창 처분은 몇 명이나?

국회입법조사처가 국방부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영창 처분을 받고 구금된 사병은 1만 5천683명이었습니다. 징계 처분 전체를 놓고 보면 31.3%에 달했습니다. 가장 많은 징계는 휴가제한으로 2만 9천78건으로 전체의 58.1%를 차지했습니다. 2003년에는 영창 처분이 휴가제한 보다 오히려 많았다는 점에서 그래도 지금이 나아졌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사실 여전히 병사들의 징계 수단에서 영창은 큰 비중을 차지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영창처분 말고 징계 수단이 없다"

입법조사처에서 왜 이렇게 영창을 많이 보내나 알아봤더니 지휘관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영창 처분 말고는 다른 징계 수단이 없다고 하소연하더랍니다. 영내 대기나 근신 조치는 이미 병사들이 영내 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에 사실상 징계가 아니고, 휴가 제한조치는 사회와 소통하는 통로를 끊어놓음으로써 반감만 키운다는 겁니다. 자신의 잘못을 확실하게 각인시키고 새사람을 만들어 오는 데는 영창만 한 게 없다는 설명입니다.

징계권자의 부하인 군법무관이 견제 가능?

지난 2007년부터 군법무관 제도가 시행되면서 영창 처분의 숫자가 줄어들었습니다. 부대장이 영창을 보내려면 군법무관의 의견을 물어서 처분해야 하기 때문에 어처구니없는 결정은 내릴 수 없는 구조가 됐다고 국방부는 설명합니다. 실제로 지난 2006년 전체 비중의 42%에 달하던 영창 처분은 법무관 제도가 시행된 2007년에는 36%로 줄어들었습니다. 하지만 신체 구금인 영창 처분이 전체 징계 비중에서 여전히 30%를 넘는다는 건 정상적이지 않아 보입니다. 지휘관의 자의적인 영창처분을 군법무관이 완벽하게 막을 수 있다고 말한다면 그걸 믿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겁니다. 군 법무관도 징계권자인 부대장의 부하라는 구조적인 한계 때문입니다. 행정조직에 소속된 간부의 한 사람인 군 법무관을 독립된 사법기관인 법관이나 군판사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부대장보다 낮은 계급으로 구성된 징계위원회

영창처분을 결정할 때는 징계위원회를 거치게 돼 있습니다. 하지만 보고서는 이 또한 유명무실하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관련 법령에는 징계위원회 구성과 관련해서는 인원, 계급 등에 대해서만 정하고 있고(대상이 병인 경우에는 장교와 그보다 선임인 부사관 3명 이상으로 구성한다고 돼 있습니다.) 법률적인 자격에 대한 구체적인 조항이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대강의 구성만 나와 있다 보니 법적인 지식이 없는, 결정권자보다 낮은 계급의 군인들로 징계위원회가 구성될 가능성도 매우 크고, 상명하복의 군 문화 특성상 징계권자의 거수기 노릇을 하게 될 우려가 클 수밖에 없습니다.

'헌법 예외 지역' 영창 처분 보완책은?

남북한의 대치 상황이라는 우리 군의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영장 없이 영창처분이 남발되는 현실은 분명히 제도적인 보완이 필요해 보입니다. 우리 헌법 제12조제3항은 "체포·구속·압수 또는 수색을 할 때는 적법한 절차에 따라 검사의 신청에 의하여 법관이 발부한 영장을 제시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군인도 인간인데, 군인이라고 해서 헌법의 예외 지역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보고서는 영장주의의 보완을 위해 법관의 확인제도를 도입하고 영창처분의 기준을 명확히 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군법무관이 지휘관으로부터 독립해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제도적인 뒷받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영장주의를 강화하자는 입법조사처의 지적은 합리적 대안이라고 평가를 내릴 수 있을 거 같습니다. 하지만 군 내부의 반발은 불가피해 보입니다. 지휘관의 권한을 일정 부분 제한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국회 입법조사처에서 자료를 내고 정면으로 군 영창제도에 대한 문제 제기를 한 만큼, 국회에서도 여야 의원들의 의견 제시가 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영장도 없이 부대장의 결정으로만 신체가 구금되는 영창제도는 분명 보완이 필요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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