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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배멀미에 결항까지…험난했던 독도 출장기 ①

[취재파일] 배멀미에 결항까지…험난했던 독도 출장기 ①
지난해 개봉한 영화 ‘케빈에 대하여(2012)’는 관객에게 재미있는 질문을 던집니다. '모성애가 자연발생적인 감정인가, 학습된 것인가?'에 대한 건데요. 영화는 우리가 당연하다 여기는 감정 가운데 어떤 것은, 그렇게 느낄 것을 강요받았기 때문에 발생한 것일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한 주간 독도로 출장을 다녀왔습니다. 지난 25일 독도의 날 당일, 8시 뉴스를 통해 현장을 생중계하기 위해서였는데요, 출장 후기를 쓰기에 앞서 뜬금없이 모성애 이야기를 꺼낸 건, 출장을 떠나기 전, 제 마음 한 켠에 생긴 우려 때문입니다.
류란 취파
우리의 것이 확실한 영토에 기념일을 지정하고, 우리 땅이라 노래를 부르는 일. 끊임없는 일본의 도발에 분노하고 지켜내야 한다고 다짐하는 일. 이런 행동의 기저에 작용하는 감정이 있다면, 그건 자연발생적인 걸까요, 학습된 것일까요? 가본 적도 없는 땅, 독도에 대해 각자가 느끼는 감정의 순도는 어느 정도일까요.

저의 경우엔, 그저 뉴스에 나오는 망망대해 위 작은 섬에 막연한 애정을 느끼고 습관적인 구호와 응원을 보냈던 것 같습니다. 부끄럽지만 기사를 써야 하는 기자인 저부터, 독도에 대해 뜨거운 감정을 느껴본 적 없었습니다. 그리고 독도로 떠나는 그 순간까지도, 이 사실이 걸려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류란 취파
출장은 오가는 날까지 더해 꼬박 일주일이 걸렸습니다. 독도에 들어가기 위해선 울릉도에서 배를 타야 하는데요, 강원 동해와 강릉, 경북 포항의 항구에서 각각 하루에 한 두차례 씩 울릉도행 여객선을 띄웁니다. 저희 취재진은 강원 동해시에 있는 묵호항을 이용했습니다. 하지만 가을 태풍이 상륙하면서 배를 타는 데에만 이틀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파도는 높았고, 기상 상황은 좋지 않았습니다. 겨우 몸을 실었더니, 이번엔 배멀미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함께 배를 탄 여고생들이 ‘바이킹’을 타는 것 같다며 소리를 지르고 구토를 했습니다. ‘오마이갓.’ 세시간 넘게 진이 빠질 때쯤, 울릉도 도동항에 도착했다는 안내방송이 흘러나왔습니다.

갈수록 기상이 악화돼, 독도로 들어가는 배를 기다리는 데엔 또 이틀이 더 걸렸습니다. 뱃길은 더 험난했습니다. 여객선의 크기도 워낙 작은데다, 파도가 심해 배멀미는 상상을 초월했습니다. 승객의 상당수가 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누워 가며 비닐봉지에 구토를 했습니다. 냄새가 진동을 했습니다. 저야 취재를 하러 간다지만, 이렇게 고생하면서까지 독도를 가 보려 하는 이 많은 사람들은 뭘까 궁금해질 정도였습니다. 앞서 선배들이 독도 입도는 하늘이 허락하는 일이라며 걱정했는데, 이쯤되니 왜 그런 이야기를 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류란 취파
시간이 지나 이윽고, 비바람으로 희뿌옇게 변한 유리창 너머 두 섬이 보였습니다. 동도와 서도, 독도에 도착한 겁니다. 서울을 떠난지 만 나흘 만이었습니다. 선장으로부터 기상이 워낙 좋지 않아 접안을 할 수 없다 판단되면 섬 주변만 둘러보고 다시 울릉도로 돌아갈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터였습니다. 가슴이 조마조마했습니다. 하지만 다행히 갑판 위 직원이 줄을 던지고, 독도 경비대원 한 명이 이를 받아 안전하게 걸면서 접안에도 성공했습니다.

마중 나온 경비대원들이 경례를 하며 관광객들을 반겼습니다. 저희 취재진은 며칠간 독도에 머무를 예정이었지만, 사람들은 허락된 20분 안에 섬을 돌아다니며 관광을 마치고 다시 배에 올라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부랴부랴 내리는 사람들을 따라 저도 떠밀리듯 섬에 발을 디뎠습니다.

그런데 그때, 갑자기 울컥하는 감정이 몰려왔습니다. 그리고 예상치 않게 울음이 터졌습니다. 태극기를 흔들고 소란스럽게 움직이는 사람들 사이에서 서럽게 눈물이 났습니다. 중계하기로 정해진 날까지 섬에 못 들어가는 게 아닌가, 마음을 졸이긴 했지만 울 정도는 아니었는데, 설명할 수 없는 이상한 감정이 한 동안 계속됐습니다.
류란 취파
그로부터 총 나흘을 독도에서 지냈습니다. 중계 방송은 무사히 마쳤지만, 날씨가 좋지 않아 뭍으로 나가는 배가 며칠째 결항됐기 때문입니다. 설상가상으로, 하필이면 저희가 도착한 날, 담수 기계가 고장나는 불행한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물티슈로 눈꼽만 떼고, 생수 한컵을 아껴가며 이를 닦고, 화장실도 못 가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며칠 째 머리를 못 감아 독도경비대 대장님 표현을 빌리자면 정말 기름이 '좔좔' 흘렀습니다. 대원들이 먹는 부식을 쌓아둔 창고에서 그렇게 나흘을 견뎠습니다. 돈 주고도 못할 귀한 경험이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좋았던 건, 막연히 우리 땅이라 외치던 독도에 대한 감정이 남달라졌다는 겁니다. 말 뿐인 기사를 쓰게 되면 어쩌나 걱정했던 건 기우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발을 딛자 마자 가슴으로 반갑고 좋아 눈물이 날 정도였으니까요. 누구라도, 우뚝 서 있는 섬 앞에선 저처럼 울컥하는 감정을 느끼게 될 겁니다. 앞으로 독도와 관련된 소식이 들려오면 누구보다 귀 기울여 듣고, 마음으로 반응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독도에 있는 동안 겪었던 경험들은 '본격적으로' 다음 취재파일을 통해 기록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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