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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복잡한 전자결제 시스템, "당연한 걸까?"

[취재파일] 복잡한 전자결제 시스템, "당연한 걸까?"
주말에 영화 한편 보려고 하면 무엇부터 하십니까? 전 스마트폰으로 근처 극장을 검색해 남은 좌석 수부터 확인합니다. 인기 영화일수록 자리 나기 쉽지 않습니다. 상영이 시작되려면 한 시간도 더 남은 것 같은데 스크린 앞 첫줄이나 가장자리밖에 남지 않은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고속버스나 비행기를 탈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언제부터 이렇게 빨리 자리가 동이 난 걸까?

모두가 스마트폰이나 PC로 결제를 시작한 후부터, 현금을 내고 현장에서 구매 혹은 예매하는 일이 낯설어지면서부터, 서둘러도 서두른 게 아닌 세상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흐름 속에 알게 모르게 소외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고가의 전자기기를 구입하지 못하는 사람들, 전자금융거래에 익숙하지 않은 노년층이 대표적입니다. 또 있습니다. 국내 체류 외국인들입니다.  

국내 체류 외국인의 수는 2012년 기준 140만 명이 넘습니다. 주요 광역시 1개 인구 수준이죠. 이들이 급변하는 인터넷 환경에서 소외되고 있다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높아지고 있습니다. 제가 만나본 영국인 콜린 그레이 씨는 이러한 불편을 글로 써 신문에 기고했습니다. 누구라도 제목을 본다면 한눈에 들어오게 마련인 글이었습니다. ‘나도 클릭해서 치킨 시켜먹고 싶다’ 음식배달업까지 온라인 판매에 진출하면서 전자결제가 어려운 외국인들이 겪는 불편을 재치 있게 표현한 제목이었는데요, 실상은 그리 가볍지 않았습니다.

처음엔 외국인들이 국내 체류하면서 겪는, 일종의 에피소드 종합 사례를 나열하는 기사가 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취재해 보니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외국인이 겪는 온라인 금융결제 불편엔 두 가지 현상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었습니다. 내국인과 달리 외국인에게만 특히 불리하게 작용되는 실제적인 부분과 외국인이기에 더욱 불편하다고 느낄 수밖에 없는 정서, 인식 상의 문제가 그것이었습니다.

국내 사이트가 특수하게 요구하는 공인인증서와 액티브 엑스(Active-X)에 대한 불만과 우려는 이미 많이 나온 이야기입니다. 국회에서 관련법 개정안도 계류 중이고요. 이건 국내 사이트를 이용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경험한 적 있는 성격의 것입니다. 결제 한번 할 때마다 쉴 새 없이 뜨는 팝업창, 본인 인증 절차단계에서 오류가 났다며 중도 포기를 해야 한다거나 하는 경험 많을 텐데요, 이런 건 모두 내·외국인의 구분 없이 겪게 되는 불편사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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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외국인의 경우 이 과정에서 느끼는 혼란이 더욱 큽니다. 외국 어느 사이트에도 이토록 복잡한 절차를 요구하는 곳은 없거든요. 국내 사이트에서만 요구하는 결제에 필요한 프로그램 설치와 본인인증 절차 자체가 생소하고 당혹스럽게 느껴집니다. 게다가 이 모든 과정이 한글이다 보니 섣불리 매 단계 확인 버튼을 클릭하기 겁나는 거죠. 어느 정도 한글을 읽을 줄 아는 수준의 능력을 갖췄다고 해도 안내문에 쓰인 글을 이해하기는 어려운 게 사실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외국인이라면 추가로 겪어야 하는 불편사항이 있습니다. 어찌어찌 한국인 지인의 도움을 얻어 전자 결제를 진행한다고 해도 본인인증 단계에서 필수적인 휴대폰 인증은 국내에서 개통한 폰이어야 가능하고, 세계적인 외국계 기업의 신용카드도 국내 카드결제 대행사와 체결이 되어있지 않아 결제가 불가한 경우가 대다수입니다. 또 30만 원 이상 구매 시 필요한 공인인증서는 직접 국내 관련 기관을 옮겨다니며 발급받아야 하는데요, 이건 국내 체류 외국인 뿐만 아니라 외국에 거주하면서 국내 사이트를 통해 구매를 시도하는 한국인이나 외국인에게도 큰 장벽이 됩니다. 거추장스러운 결제 방식 때문에 내 외국인 가릴 것 없이 같은 물건이라도 국내 사이트가 아닌 외국 오픈마켓에서 구입하게 되는 거죠.

이번 기사를 쓰면서 혼란스럽기도 하고, 방향을 달리하며 가기사 작성하기를 수없이 했었는데요, 이런 복잡한 현상, 그러니까 국내 체류 외국인에게만 제한되는 내용과 국내 시스템 자체가 갖는 한계를 모두 지적하려 하니 보통 골치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약간은 아쉬움이 남는 기사가 되었는데요. 아니나 다를까 이번 기사에 대한 네티즌 반응 역시 대개 ‘외국인만 겪는 불편이 아니다’와 ‘외국인 편의를 위해 사이트 개선 목적의 추가 비용을 지불하기엔 이들의 수요가 그리 많지 않다’였습니다.

하지만, 한가지. 네티즌들을 비롯해 일반인들이 알았으면 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기사에도 잠깐 언급했지만, 현재 국내 기업들이 결제 과정에서 요구하는 절차들 대부분이 어쩌면 간소화되어도 좋을, 간소화될 수 있는 수준의 것입니다. 여러 프로그램을 깔고, 겹겹의 보안 인증을 거쳐도 쉽게 보안이 뚫려 여전히 손해를 보는 사례가 적지 않은데요, 이 모든 과정이 무용하다고 말할 순 없지만, 정말 ‘필수불가결’한 것인가, 대체할 수 없는 것인가에 대한 질문은 계속 제기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은 심리적으로 ‘나는 지금 누구도 접근할 수 없는 방식으로 안전한 금융결제를 하고 있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만 특수하게 사용되는 액티브 엑스와 공인인증서 방식이 국제 표준화에 맞지 않을뿐더러, 국내 상업계를 외국으로부터 고립시키는데 일조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됩니다. 아마존닷컴이나 이베이 같은 세계적인 사이트들이 ‘원클릭’ 간편결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마당에 국내 사이트들의 지금 같은 방식은 결국 세계적인 흐름 속에 스스로를 고립시킬 뿐이라는 전망입니다. 보안상의 책임을 개인에게 전가하는 방식이 더 이상 공감을 얻지 못하는 시기가 찾아올 것이란 뜻입니다.

관련해서 진행한 전문가 인터뷰 가운데 이 말이 귀를 번뜩이게 했습니다.
“국내 사이트는 1%도 안 되는 범죄자로부터 보호한다는 명목 하에 99%의 선량한 이용자를 복잡한 절차로 괴롭히고 있죠. 그런데 그마저도 정말 보호하고 있는지 의문입니다. 외국의 주요한 사이트들은 다릅니다. 99% 선량한 이용자의 시간과 노력을 최소화하는 결제 방식을 도입하고, 1% 미만의 범죄자를 찾기 위한 비용 지불은 기업 차원에서 하고 있는 거죠. 그건 응당 기업이 감당해야 하는 책임이고 제공해야 하는 서비스니까요.” 

기사를 통해 외국인에게만 어려운 금융거래가 아니라 이제 국내 전자결제 시스템이 국제적인 표준화작업을 필요로 하는 시점을 마주하게 됐다, 라는 사실을 이야기하고 싶었는데 시청자 분들에게 전달이 잘 됐을지 모르겠습니다. 부족했다면 더욱 더 내공을 다져 의미있고 유용한 기사를 전달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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