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최고지도자가 미국의 스포츠 스타와 만나는 것이 일상적이지 않은 일임에는 틀림없지만, 로드먼에 대한 북한의 과도하다싶은 보도는 다소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북한은 정말 로드먼의 방북을 통해 북미관계의 돌파구를 열기라도 바랬던 것일까?
로드먼에 대한 지나친 기대들
2월 방북으로 인한 여파 때문인지 로드먼의 9월 방북 일정이 알려지자 로드먼에 대한 정치적 역할 기대론이 제기됐다. 로드먼이 TV 출연에서 ‘케네스 배’의 석방을 요청할 것이라고 밝힌 적도 있는 만큼, 김정은 제1비서와 로드먼의 친분을 고려할 때 실제로 배 씨가 석방될 가능성이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북한이 로버트 킹 미 국무부 북한인권특사의 방북을 거부한 점으로 볼 때 이는 지나친 기대였지만, 로드먼의 2월 방북이 남긴 잔상은 이런 기대를 무시할 수 만은 없게 만들었다.
9월 3일 평양의 순안공항. 로드먼은 이번 방북에서도 파격적인 대우를 받았다. 중국 CC-TV가 평양발로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로드먼은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북한 당국이 준비해둔 벤츠 승용차를 타고 숙소로 이동했고, 그 과정에서 경찰차의 호위를 받기도 했다. 또, 방북 이후 영국 일간 ‘가디언’과 한 인터뷰를 보면, 로드먼은 김정은 가족과 해변에서 편안한 시간을 보내며 식사와 술을 함께 하기도 했고 김정은 제1비서의 딸 ‘주애’를 직접 안아보기도 했다.
하지만, 북한의 보도는 이번에는 차분했다. 9월 3일 로드먼의 평양 도착 사실이 조선중앙TV의 ‘20시 보도’에 보도된 이후, 7일 김정은과 로드먼이 농구경기를 관람했다는 보도가 나올 때까지 조선중앙TV에는 로드먼과 관련된 어떠한 소식도 나오지 않았다. 7일 보도에서도 조선중앙TV는 동영상이나 사진을 사용하지 않고 아나운서 멘트로만 보도를 했고, 이후 기록영화 같은 것도 방송하지 않았다.
7일 평양에서 베이징 공항으로 나온 로드먼. 그의 곁에 역시 ‘케네스 배’는 없었다. 로드먼은 배 씨의 석방 문제를 물어보는 기자들에게 “그 문제는 오바마나 힐러리 클린턴에게 물어보라”며 짜증 섞인 반응을 보였다.
사실, 로드먼이 ‘케네스 배’ 씨를 석방시키지 못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북한이 대미관계에 있어 중요한 카드인 배 씨를 로드먼 같은 스포츠 스타에게 내 줄 수는 없는 것이다. 농구스타 로드먼은 그야말로 농구스타일 뿐이기 때문이다. 이런 면에서 볼 때, 로드먼에 대한 북한의 보도가 줄어든 것은 북미관계의 현실을 좀 더 차분하게 바라보는 북한의 모습이 반영된 듯도 하다.
김정은, 로드먼을 통한 ‘농구외교’ 꿈꾸나?
김정은의 신뢰에 화답하기라도 하듯 로드먼은 이제 김정은 제1비서의 충실한 대변자가 되버린 듯 하다. 로드먼은 기자들을 만나 “다른 사람이 뭐라고 하든 김정은 제1비서는 자신의 친구”라며 “김정은은 좋은 사람”이라고 거침없이 말하고 있다. 김정은 제1비서로서는 ‘제어’없이 떠들고 다니는 ‘스피커’를 통해 어떤 언론보다도 자신을 홍보하는 효과를 거두고 있는 지도 모른다.
스포츠스타는 스포츠스타일 뿐
하지만, 북미관계의 진전은 로드먼과 같은 스포츠 스타를 통해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스포츠가 양측의 관계진전에 가교가 될 수는 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양측의 정책담당자들 사이에 정치적 공감대가 형성됐을 때에만 가능한 일이다. 유감스럽게도 로드먼의 방북을 바라보는 미국 정부의 시선은 차가운 듯 하다.
김정은 제1비서가 혹시라도 로드먼과 같은 우회로를 통해 북미관계의 돌파구를 열어가겠다는 생각이라면 그런 기대는 빨리 접는 게 좋다. 스포츠스타의 방북은 단순한 스포츠스타의 방북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