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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불쾌함의 예술…채프만 형제의 예술세계

[취재파일] 불쾌함의 예술…채프만 형제의 예술세계
추상화 앞에 꼬마들이 올망졸망 몰려있다. 칙칙한 색깔에 알 수 없는 형상까지 아이들이 별로 좋아하지 않을 법한 그림인데, 뭘 그리 열심히 보고 있을까. 그 얼굴이 궁금해 다가갔다가 화들짝 놀랐다. 아이들의 얼굴에 코와 입 대신 쥐, 오리, 개의 주둥이가 달려있다. 귀여워야만 할 아이들 얼굴을 누가 이렇게 만들어 놓았을까. 채프만 형제의 소행이다.
권란 취재파일 2
<Minderwertigkinder 설치전경>
 
채프만 형제는 ‘아이들은 순수하다’는 기존의 생각에 대해 ‘꼭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반대 의견에서 ‘어린이(child)' 시리즈를 시작했다. 영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소녀들이 작품의 주인공이다. 하지만, 아이들의 얼굴에 동물의 얼굴을 접합했으니 기괴하기 짝이 없다. 천진난만한 아이의 얼굴을 기대했던 어른들은 이 작품을 보고 경악한다. 심지어는 공포와 불쾌함마저 느낀다. 심지어 아이들의 옷에는 나치 문양과 함께 ‘THEY TEACH US NOTHING(그들은 우리에게 아무것도 가르치지 않는다)’이라는 문구가 새겨져있다. 예술을 통해 무언가 배울 수 있다는 ‘예술교육론’에 딴지를 거는 것인가.
권란 취재파일
<Bedtime Tales for Sleepless Nights, 2010>
 
아이들의 이런 발칙한 모습은 어디에서 나온 것인가. 채프만 형제의 ‘잠자리 동화’ 시리즈를 보면 어렴풋이 그 근원을 알 수 있을 것만 같다. 보통 잠자리 동화라고 하면, 아름답고 교훈적인 내용이 주가 된다. 하지만 채프만 형제의 잠자리 동화는 좀 다르다. 머리가 여러n개 달린 괴물, 위협적인 눈알 같은 이미지로 뒤덮여 있는데다, 내용은 더 심하다. 살갗을 벗겨내고, 치아와 눈알을 뽑는다는 문장이 스스럼없이 등장한다. ‘19금’을 넘어 ‘5금’, ‘3금’ 정도 되는 듯하다. 채프만 형제는 우리의 어린 시절을 생각해보라고 한다. 순수하다고만 생각하는 아이들의 상상력은 오히려 괴기스러움까지 넘어설 것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어린이’와 ‘잠자리 동화’ 시리즈를 본 어린 아이들은 어른들보다 더 흥미를 느끼고, 심지어 ‘마법같다’고 좋아한다고 한다. 예술의 아름다움, 어린이의 순수함, 모두 머리 속에서만 존재하는 개념이라는 것이다.
 
권란 취재파일
<채프만 형제. 자신들의 모습을 담으려는 기자들이 몰리자 그 모습을 스마트폰 카메라로 다시 찍고 있다.>
 
제이크 채프만과 디노스 채프만은 형제 작가로, yBa(young British artists) 작가로 꼽힌다. yBa는 현대 영국 미술계를 대표하는 젊은 작가들로, 실험적이고 개성적인 작업을 선보여 세계 미술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그 유명한 데미안 허스트, 마크 퀸도 yBa 군단에 속해있다. 채프만 형제는 전쟁, 대량학살, 죽음, 소비지상주의 같은 우리 사회의 어두운 면을 주제로 작업을 하고 있다. 채프만 형제는 전쟁의 참상을 가장 적나라한 모습으로 그렸던 스페인 낭만주의 화가 고야를 ‘롤 모델’로 꼽는다. 당시 사회를 지배하고 있던 ‘교회’적인 생각에서 벗어나 인간의 심리에 주목했던 작가였던 고야, 그를 동경하는 채프만 형제의 작품에는 당연히 ‘극단으로 치달은 인간의 모습’의 흔적이 그대로 드러난다.
 
권란 취재파일 2
<Oneday You will no longer be loved, 2013>

 
채프만 형제는 초상화도 곱게 보지 않았다. 영국 빅토리아 시대는 산업 혁명으로 엄청난 경제 발전을 이루면서 ‘그레이트 브리튼’, ‘대영제국’의 절정을 이룬 시기이다. 부와 명예를 동시에 쥐고 있던 귀족들 사이에서는 ‘초상화 그리기’가 유행처럼 번졌다. 가장 화려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그림으로 남겼던 것이다. 채프만 형제는 당시 초상화를 자신들의 방식으로 재해석한다. 부티가 흘렀던 얼굴은 괴물 같은 얼굴로 변해버렸다. 채프만 형제는 골동품 가게에서 구입한 초상화 속 얼굴을 마구 훼손한다. 당시 그림 속 주인공들은 자기들이 가지고 있었던 재물이 영원할 줄로만 알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그들을 모습을 담은 초상화는 이제는 골동품으로 전락해 버렸다. 채프만 형제는 쓸모없이 구닥다리가 되어 버린 초상화에 자기들이 다시 생명을 불어넣었다고 주장한다. 파괴하고 훼손하지 않았다면 누가 거들떠나 봤었겠냐는 것이냐는건데, 지극히 자만심 넘치는 주장인데도 고개가 끄덕여지는 건 ‘인생무상’에 대한 공감이 있어서일까.
권란 취재파일 2
<No Woman, No Cry의 일부, 2009>
 
채프만 형제의 다소 ‘시니컬한’ 시선은 설치 작업에서 절정을 이룬다. 형제가 유명해지게 된 작품도 ‘Hell(지옥)’이라는 설치작업이었다. 커다란 유리 상자 속에 작은 인형이 자잘하게 늘어서 있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자기도 모르게 ‘헉!’하는 소리를 내게 된다. ‘No Woman, No Cry'라는 밥 말리의 노래와 동명의 제목이 붙은 작품에는 1천 개도 넘는 인간 모형이 들어가 있다. 모두가 칼을 들고 총을 들고 누군가를 살육하는 현장이다. 피가 낭자하다. 이런 잔혹한 전쟁 현장에 유유히 그림을 그리고 있는 사람이 있다. 그것도 자기 초상화를 그리고 있다. 채프만 형제는 그가 ‘히틀러’라고 소개한다. 실제로 히틀러는 한때 화가를 꿈꿨었다고 하는데, 완전히 상반되는 듯한 ‘예술’과 ‘전쟁’, ‘비인간성’이 히틀러 덕분(?)에 공통점을 얻은 듯하기도 하다.
권란 취재파일
<Unhappy Feet의 부분, 2010>
 
이 작품에서는 지구 남극과 북극, 정반대편에 살고 있는 펭귄과 고래가 만났다. 워너브라더스의 유쾌한 애니메이션 ‘Happy Feet'에 등장하는 펭귄들이 ’Unhappy Feet'에서는 살육자로 변신했다. 진짜 세상은 애니메이션 속 세상처럼 재미있거나 아름답지만은 않다는 걸 표현했다.

사람에 따라 눈살이 찌푸려질 수도 있는 작품들의 연속이다. 기자들이 몰려들어 사진 찍는 모습이 재미있었는지, 주머니 속에서 스마트폰을 꺼내들고 그 모습을 다시 촬영할 정도로 장난기 있는 채프만 형제인데, 왜 이리 불편한 작품을 만드는걸까. 채프만 형제는 자신들의 작품을 ‘세상에 대한 진실한 투영’이라고 표현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 자체가 혼란스럽고 어두운데 그걸 미화해서 표현하는 게 오히려 거짓 아니냐고 반문한다. 형제는 그런 ‘예술에 대한 고정관념’을 타파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예술이 ‘목적’이 있어야 하고, 예술가가 ‘사회적 역할’을 해야한다는 생각에 반대한단다. 예술은 경계가 없는 영역이고, 작가는 누구보다 자유로운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불편함을 느끼게 하는 게 '예술인지 아닌지‘는 각자의 판단에 따라 다를 것이다. 그에 따라 채프만 형제의 작품도 ‘사회의 본질을 꿰뚫는 대단한 예술’이 되거나, ‘잔혹함으로 튀어보려고 하는 시도’로 치부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예술만큼은 어떤 고정관념이나 한계 없이 이뤄져야 한다는 채프만 형제의 말에는 전적으로 동감한다. '예술의 영역과 역할‘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주기 때문에 세상도 ’불편한‘ 그들의 작품에 주목하고 있나보다.

* 채프만 형제 : The Sleep of Reason
/송은아트스페이스, ~12월 7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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