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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시리아, '중동의 화약고' 될까?

복잡한 시리아 사태 관전법

[취재파일] 시리아, '중동의 화약고' 될까?
 지난주 일촉즉발로 치달았던 미국과 서방국가의 시리아 공습 계획이 중대한 차질을 빚게 됐습니다. 영국이 시리아 군사작전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히면서 당장이라도 공습 결정을 내릴 것 같았던 오바마 대통령도 재고에 들어갔습니다. 앞서 영국 하원은 시리아 제재 동의안에 대해 표결을 붙여 반대 285표 대 찬성 275표로 승인을 거부했습니다. 군사 개입을 앞장서 추진한 캐머런 총리를 발목을 붙잡은 셈입니다. 유엔 안보리도 이틀째 회의를 열었지만 아무런 합의점을 찾지 못했기 때문에 이제 미국 혼자 공습에 나설지 여부만 남게 됐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의회에 공을 넘기고 이 와중에도 골프를 치러 가는 바람에 또다시 구설에 올랐는데요. 결론적으로 미국은 의회의 승인 여부에 관계없이 시리아에 대해 화학무기 사용 책임을 물어 제한적 공습을 가할 수는 있겠지만 내전에 깊숙이 개입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미국과 서방국가의 공습 계획은 지난 21일 수도 다마스쿠스 인근에서 화학무기 사용으로 민간인 사망자가 300명 넘게 속출한 직후 추진됐습니다. 시리아는 내전 이후 2년 6개월 넘게 10만 명의 사망자가 나오고, 난민이 200만 명 가까이 발생했습니다. 그런데도 미국과 서방 국가들은 계속 내전 개입을 꺼려왔습니다. 그런 입장에서 갑자기 선회한 이유에 대해 미국은 시리아 정부가 '레드라인'(금지선)을 넘어섰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아직까지 시리아가 화학무기를 사용했다 증거는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고 있습니다. 유엔 조사단이 현장에서 혈액과 소변, 머리카락 표본을 채취해 분석하고 있는데, 조사 결과는 다음 주 나올 것으로 예상됩니다. 영국 정부는 당초 유엔의 조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겠다는 입장이었지만, 조사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영국 의회는 시리아 제재안을 부결시켰습니다. 이는 화학무기 사용 여부와 관계없이 시리아 내전에 뭔가 복잡한 문제가 얽혀 있다는 점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미국이든 서방 국가든 시리아 내전에 개입하길 꺼려왔던 본질적인 이유에 대해 살펴볼까 합니다. 미국과 서방 국가의 입장을 자세히 살펴보면 '뜨거운 감자' 혹은 '중동의 화약고'로 떠오른 시리아 사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쉬운 얘기부터 시작할까요? 시리아 정부와 맞서 싸우는 반군에는 알 카에다가 포함돼 있습니다. 1만 명 정도의 알 카에다 조직원의 반군에 속해 있는데요. 국제 테러조직으로 2001년 9.11 사태를 일으킨 주범인 알 카에다가 반군에 포함돼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미국은 곤혹스러울 수 있습니다. 그동안 미국과 서방 국가들이 측면에서 반군에 무기를 지원해왔는데요. 비록 현대식 무기가 아닌 개량무기를 지원하더라도 그 중 일부가 알 카에다 수중에 들어간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미국 입장에서는 대놓고 정부군을 지원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반군을 지원할 수도 없는 어정쩡한 처지에 놓일 수 밖에 없습니다.

시리아 캡쳐_500

 
 레바논의 무장 정파 헤즈볼라가 내전에 직접 참가해 반군과 전투를 벌이고 있는 점도 미국과 서방 국가를 어렵게 만들고 있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 헤즈볼라는 레바논 시아파의 최정예 무장 세력입니다. 이들은 알 카에다와 비교할 없을 정도로 뛰어난 막강 전투력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2000년 이후 12명의 의원을 낸 공식 정당으로 변모했지만, 중동 곳곳에서 예전의 위용을 바탕으로 세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슬람 원리주의를 표방하는 헤즈볼라는 그동안 주로 미국과 이스라엘을 상대로 한 테러를 자행해왔는데요. 지난 1983년 10월 23일 베이루트에 있는 미국 해병대 사령부 건물 정면으로 헤즈볼라 자살 특공대가 1만 파운드가 넘는 폭약을 실은 트럭을 몰고 돌진해 미군 241명을 살상하기도 했습니다. 미국과 서방 국가가 헤즈볼라를 잘못 건드릴 경우, 걷잡을 수 없는 테러 전쟁으로 확산될 수 있다는 점도 고려 대상에 포함됩니다. 

 더 놀라운 사실은 알 아사드 정권에 맞서 싸우는 반정부 세력이 110개나 된다는 사실입니다. 정부군과 달리 반군은 뚜렷한 지휘체계 없이 자신이 속한 지역과 그룹 안에서 게릴라처럼 정부군과 싸우고 있습니다. 일부 지역 전문가들은 반군이 죽인 시민이 정부군보다 더 많다고 이야기 하고 있을 정도로 반군이 난립하고 있는 상황인데요. 현 정부군도 반군에 대응하기 쉽지 않고, 미국과 서방국가 입장에서도 정부군을 진압한 뒤 시리아를 정상화 시키는 과정에서 100개가 넘는 반군 세력은 오히려 더 심각한 방해가 될 수 있다고 판단할 수 있습니다. 리비아의 경우 반군 세력은 왕정복고 세력과 팔레스타인 불만 세력, 정치적 반대세력, 알 카에다 정도였는데, 지금 시리아에는 반군 세력이 과도하게 난립해 있어 사태를 더 어렵게 만들고  있습니다.        

 시라아 내전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는 종파 간 대결 구도라는 점입니다. 종파 간 갈등 구도는 미국과 서방 국가가 내전에 개입하길 꺼리는 대표적인 이유 가운데 하나입니다. 종파 간 갈등 문제는 내전에 개입한 뒤 향후 재건 과정에서 큰 골칫거리가 될 수 있습니다. 시리아 종파는 소수의 시아파와 수니파, 기독교 등 기타 종교로 나뉩니다. 국민의 10%가 조금 넘는 이슬람 시아파 분파 '알라위파'가 정권을 잡고 있습니다. 74%의 수니파가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고, 나머지 14%는 기독교 등 기타 종교를 믿고 있습니다. 과거로 거슬러 올라 632년 예언자 무함마드가 숨진 뒤 수니파와 시아파는 후계자 선정 문제를 놓고 갈라지게 됩니다. 이후 1400년간 두 종파는 계속 대립과 갈등의 세월을 보내왔습니다. 참고로 수니파는 인내와 침묵으로 힘을 키우며 때를 기다리는 법을 가르치고 있는 반면 시아파는 언젠가 구세주가 나타나 구원할 것이라고 믿는 점에서 차이가 납니다.

 중동 국가 중에서 사우디아라비아와 카타르, 아랍에미리트, 터키가 대표적인 수니파 종주국에 속합니다. 시아파 국가는 이란과 레바논이 대표적인데, 국민의 86%가 시아파를 믿는 이란은 시아파의 맹주로 꼽히기도 합니다. 아랍의 봄 이후 민주 정부를 수립한 무르시 대통령은 수니파인 무슬림 형제단의 지지를 받기도 했지요. 중동 전역에서 종파간 대립 구도가 벌어지고 있기 때문에 자칫 시리아 내전에 개입할 경우 중동 국가 사이의 종파간 갈등 문제를 확대시킬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합니다.

알 아사드


 시리아 내전은 지난 2010년 말 '아랍의 봄' 이후 촉발된 반정부 시위에서 촉발됐습니다. 시리아 반정부 시위대의 핵심적인 요구사항은 40년 넘게 독재정치를 한 알 아사드 정권의 퇴진이었습니다. 현 아사드 대통령은 1971년부터 정권을 잡은 아버지 하페즈 알 아사드의 아들입니다. 안과를 전공한 의사 출신이었지만, 아버지가 2000년 6월 숨진 뒤 곧바로 정권을 넘겨받은 아사드 현 대통령은 시장경제 시스템을 도입하고 국영기업을 민영화 하는 등 개혁적인 조치를 단행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아랍의 봄' 이후 거세진 시민들의 요구를 반영하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급기야 알 아사드 대통령 부자의 40년 장기 집권에 반대하는 시위가 봇물처럼 터져나오자 당황한 정부군은 탱크까지 동원해 반정부 시위대를 유혈 진압하기에 이릅니다.

 현 알아사드 정권은 세속주의 정권입니다. 시리아의 세속주의 정권이 반정부 시위대를 유혈 진압했다는 점은 지금의 이집트 상황하도 비슷합니다. 미국이나 서방국가 입장에서 보면 이슬람 정권보다 세속주의 정권이 다루기 편할 수 있습니다. 그런 이유 때문에 미국은 40년 간 이어진 알 아사드 부자의 철권 통치를 방치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미국은 이집트에서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켰을 때에도 쿠데타 여부조차 규정하지 않았습니다. 군부 과도정부가 시위대에 총격을 가해 1200여 명이 학살했을 때에도 미국은 예정된 군사 훈련만 중단하는 조치에 그쳤습니다.

 이번 시리아 사태와 관련해 일각에서는 오바마 대통령을 '햄릿형' 지도자로 비유하며 비난하고 있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이 수차례 회의를 거듭하고 참모들과 난상토론을 벌이지만 중요한 건 결단을 계속 미루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만큼 시리아 사태가 간단하지 않다는 반증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이유를 살펴보면 누구든지 선뜻 시리아 사태와 관련해 돈키호테처럼 나서기 어려울 겁니다. 오바마 대통령이 공격에 필요한 '국제법적 근거'도 없는 상황에서 대량살상무기를 썼다는 이유만으로 공습에 나설 경우 그 결정에 따른 부담은 고스란히 오바마 대통령의 몫이 됩니다.

 아무런 실익도 없는 시리아 사태 개입을 꺼리는 건 어찌보면 합리적인 선택일 수도 있습니다. 또 그동안의 파병과 전쟁 개입 후유증을 감안한 미국의 경험에서 나온 결과물일 수도 있습니다. '팍스 아메리카나'의 몰락을 가장 아쉬워할 미국인들조차도 이번 공습에 대해 1/4만 찬성 의견을 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시리아의 대량살상무기 사용에 따른 책임을 물어 경고 차원에서 미국이 제한적 공습에 나설 수는 있겠지만, 전면적인 군사개입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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