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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드라마 같은 사랑과 결혼 그리고 파국…

[월드리포트] 드라마 같은 사랑과 결혼 그리고 파국…
'세기의 재판'으로 불린 보시라이 전 충칭시 당서기의 재판이 끝났습니다.

뇌물수수와 횡령, 직권 남용 혐의를 두고 보시라이는 검찰 측과 치열하게 논쟁했습니다. 무죄를 주장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외도 사실을 고백하는 등 재판정에서는 그의 치부가 고스란히 드러나기도 했습니다.

특히 남편 보시라이의 '유죄'를 주장하는 아내 구카이라이의 증언에 대해 보시라이는 "웃기고 가소롭다",
아내는 "미쳤고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맞받아쳤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관계가 소원한 것으로 알려진 보시라이 구카이라이 부부가 다시 합쳐지기는 이제 불가능해보였습니다.

보시라이는 최후 변론에서 "만감이 교차한다. 나에게는 이제 여생밖에 남지 않았다"고 탄식했습니다.

그의 회한에 찬 말처럼 한때 중국의 '케네디'와 '재클린'으로 세상 사람들의 부러움과 시기를 한 몸에 받던
보시라이와 구카이라이 부부에게 이제는 사랑도, 권력도, 명예도, 아무것도 남지 않은 것처럼 보입니다.

보시라이와 구카이라이, 두 사람의 운명적인 사랑과 결혼 그리고 파국은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 극적입니다.

보시라이는 27살이던 1976년 리단위란 여성과 첫번째로 결혼합니다. 보시라이의 부친은 8대 혁명 원로로 추앙받는 보이보 전 부총리로 리단위의 부친인 리쉐펑 전 베이징시 당서기와는 혁명 전우 사이였습니다. 집안끼리 정략 결혼한 측면도 있지만 180cm가 넘는 휜칠한 키에 준수한 외모인 보시라이에게 리단위가 적극적으로 구애하면서 둘은 결혼에 성공합니다.

결혼 당시 보이보는 문화대혁명에 휩싸여 공장에 하방돼 있었던 반면 리쉐펑은 계속해서 잘 나가는 당 간부였습니다. 두 사람의 러브스토리가 명문가의 딸이 몰락한 집안의 아들과 사랑에 빠져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에 골인한 것으로 알려진 이유입니다. 보시라이와 리단위 사이에는 아들 보왕즈가 있습니다. 보왕즈는 부모가 이혼한 뒤 어머니의 성을 따라 리왕즈로 나중에 개명합니다.

보시라이와 리단위의 사이가 벌어진 것은 문화혁명이 끝나고 보시라이가 베이징대학에 입학해 구카이라이를 만나면서부터입니다. 보시라이와 구카이라이는 결혼 전 이미 사돈지간이었습니다. 보시라이의 첫 번째 부인인 리단위의 오빠가 구카이라이의 언니와 결혼했기 때문에 보시라이와 구카이라이는 처가 사돈 관계로 먼저 만났습니다. 리단위에게는 악연도 이런 악연이 없습니다.

애까지 있는 유부남이었지만 보시라이는 학교에서 구카이라이를 만나 사랑을 키워 나갔고 아들 보왕즈의 4살 생일날 부인 리단위에게 이혼해달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리단위 집안은 완강히 이혼을 반대했습니다. 리단위는 "구카이라이가 가정을 파탄시키려 한다"고 비난하고 다녔고, 당시 군인들의 혼인을 보호하기 위해 제정된 군혼파괴죄 등 갖가지 죄목으로 소송전도 불사했습니다. 결국 4년간의 소송 끝에 보시라이는 리단위와 이혼합니다.
[월드리포트]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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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시라이와 구카이라이는 이런 난관을 뚫고 1984년 결혼에 성공했습니다. 보시라이가 결혼 후 중앙정부에서 랴오닝성으로 좌천되자 전처 장인이 뒤에서 힘을 써 보복한 것이란 소문이 퍼지기도 했습니다.

구카이라이는 인민해방군 총정치부 부주임(소장)을 지낸 구징성 장군의 딸로 어릴 때부터 총명했습니다. 하지만 문화혁명때 부모가 압송되는 바람에 어렸을적에는 고생을 많이했는데 4명의 언니들이 모두 농촌에서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했습니다. 구카이라이는 정육점에서 일을 하고 생계를 위해 비파도 배웠는데 연주 실력이 뛰어났다고 합니다.

아버지 구징성이 막내 딸의 이름을 카이라이(開萊)라고 지은 것은 어릴 때 너무 고생을 많이 했기 때문에 커서는 정의와 행복으로 활짝 열려 있으라는 바람에서 지어줬다고 합니다. 본래는 카이라이(開萊)였으나 보시라이(薄熙來)와 결혼한 뒤 남편 이름의 끝 글자와 같도록 라이(萊)에서 초두머리(++)를 뗀 라이(來)로 바꿨습니다.
[월드리포트]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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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혁명이 끝난 뒤인 1977년 대학 입시가 부활됐고 총명했던 구카이라이는 다음해 베이징대에 입학합니다. 이후 보시라이와 운명적으로 만나게 됩니다. 구카이라이는 보시라이를 만났을 당시 미국 대학에 장학금을 받고 유학을 가려던 참이었습니다. 하지만 보시라이를 만난 뒤 유학 대신 결혼하기로 결심합니다. 예쁘고 야무진 구카이라이에게 보시라이가 반했고, 구카이라이 역시 능력 있고 잘 생긴 보시라이에게 빠져들어갔습니다. 결혼 뒤 보시라이와 구카이라이 부부 사이에서 아들 보과과가 태어났습니다. 아들 보과과 역시 아버지를 닮아 용모가 준수한 편입니다.

보시라이는 재혼 후 다롄시장과 충칭시 당 서기 등을 지내며 최고 지도부인 상무위원 진입을 노릴 만큼 잘 나가는 정치인으로 성공했고 구카이라이 역시 변호사로 이름을 날립니다.

남 부러울게 없어보였던 보시라이와 구카이라이 부부는 그러나 보시라이의 왕성한 여성 편력 때문에 부부 사이가 삐거덕 거리기 시작했고, 지난 2011년 구카이라이의 영국인 사업가 살해 사건 그리고 이를 은폐하려는 과정에서 보시라이의 심복이었던 왕리쥔 전 공안국장의 배신과 미 영사관 망명 시도 등으로 보시라이가 실각하면서 결국 파국을 맞게 됩니다.

구카이라이와 보시라이에 대한 재판이 진행되면서 보시라이의 '외도' 외에도 구카이라이와 영국인 사업가 또 왕리쥔과의 '부적절한 관계' 등이 공개되면서 재판은 거의 막장 드라마를 방불케했습니다.

구카이라이는 살인 혐의로 이미 사형 집행 유예 선고를 받고 복역중이고 보시라이는 재판을 끝내고 이제 선고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보시라이가 무죄를 주장하고 있지만 두 사람 모두 남은 여생의 상당 부분을 감옥에서 보내야 할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월드리포트]

보시라이 구카이라이 부부의 드라마 같은 사랑과 결혼, 성공과 실각 그리고 파국에 이르기까지…참 파란만장한 인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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