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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합격 성적 받고도 영훈중 떨어진 보호시설 아동 5명

[취재파일] 합격 성적 받고도 영훈중 떨어진 보호시설 아동 5명
1. "여기 류란 학생이라고 있습니까?"

요즘같이 장맛비가 쏟아지던 여름 어느 날이었습니다. 방학을 앞둔 초등학교 교실 앞문이 열리고, 학교 경비 아저씨가 얼굴을 빼꼼히 내밀더니 제 이름을 불렀습니다.

"네, 그런데요. 무슨 일이시죠?"

담임선생님이 '무슨 일인지 알고 있니?'라고 물어보기라도 하듯 재빨리 제 얼굴을 한번 쳐다보고, 경비 아저씨 쪽으로 다가가며 물었습니다.

"아니 류란 학생 어머님이, 어머님 여기가 맞네요."

경비 아저씨가 뒤돌아 몸을 비키자 비에 홀딱 젖은 엄마의 모습이 나타났습니다. 머리카락과 옷에서 빗물이 뚝뚝 떨어졌습니다. 수줍음 많아 반상회에 가서도 손만 들다 오는 엄마는 서른 명 넘는 반 친구들과 담임선생님의 시선이 한데 고정되자 얼굴이 새빨개졌습니다.

"저 란이 엄마예요. 오늘 방학식... 책걸이하면 좋을 것 같아서."

엄마의 양손엔 무게를 이기지 못해 찢어지기 일보 직전인 검은 비닐봉지가 들려 있었습니다. 책걸이라니, 그런 용어가 익숙치 않았던 친구들은 웅성대기 시작했고 담임선생님은 그제서야 상황을 알았다는 듯 달려나가 엄마의 손에서 짐을 받아들었습니다. 이내 문이 닫혔고 그렇게 엄마는 사라졌습니다. 선생님은 란이 엄마가 우리가 한 학기 동안 공부 열심히 하느라 수고했다고 가져오신 거라 설명하며 분단장을 불러내 비닐봉지에서 김이 솔솔 나는 하얀 백설기를 꺼내 나눠줬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수업하기 싫어 엉덩이가 들썩이던 친구들은 기회다 싶었던지 떡을 핑계삼아 서넛이 무리지어 소란을 피우기 시작했고, 저는 꿈을 꾼 건가 싶어 뒷문으로 달려나가 뛰었지만, 엄마는 사라진 후였습니다.

그날 오후, 모두 떠난 교실에서 전 친구들이 건포도만 쏙 빼 먹고 버린, 돌처럼 굳어버린 떡 수십 개를 가방에 챙기며 펑펑 울었습니다. 집으로 오는 내내 눈물이 그치지 않았습니다. 엄마가 왜 다녀간 건지 알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반장을 해도, 시험에서 1등을 해도, 한 학기 내내 '이달의 모범학생상'은 저에게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매달 대여섯 명씩 주는 상이라 받지 않은 친구보다 받은 친구들이 더 많아지기 시작할 때였습니다. 아이들일수록 더 예민하고 더 눈치 빠르게 마련입니다. 내 문제가 아님을 눈치챌 때쯤 동네 아줌마들이 엄마에게 학교에 한 번 다녀가라고, 그 반 담임이 이전 학교에서부터 봉투 챙기는 걸로 유난스러웠다고 충고하는 것을 엿들었습니다. 엄마는 봉투를 준비하는 대신, 딸과 함께 공부하는 반 친구들에게 떡을 해 먹이는 것으로 저에 대한 미안함을 표현했습니다.
교실

2. 지난주, 북부지검에서 영훈국제중학교 수사결과 발표가 있었습니다. 그날 메인 뉴스에 리포트를 맡게 돼 브리핑 자료를 받아들고 설명을 듣는데 울컥하며 떡을 해서 학교로 찾아왔던 엄마가 생각났습니다. 교육계 비리의 죄악성에 대해, 말해 무엇하겠습니까만, 그래도 첨언한다면, 어린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 비리일수록 정말 안 될 일입니다. 해당 사건이 몰고 올 악영향과 파장이 세대에 이어지며 학습되기 때문입니다.

영훈중에 입학하기 위해 원서를 냈던 아이들. 복닥복닥한 교실 한 칸에서 뻔히 옆에 앉은 친구와 자신의 성적을 알고 있었을 텐데, 나보다 낮은 점수의 친구가 합격한 학교에서 떨어지는 경험을 한다는 것. 초등학교 내신(77점 만점) 말고는 해당 학교 측이 채점한다는 교사추천서(8점 만점)와 자기학습계발서(15점 만점)가 전부인데, 보이지도 않는 평가기준과 심사위원들이 매긴 점수에 의해 당락이 뒤바뀌었을 때, 아이들은 분명 '평소 성적과는 별도의 어떤 것'의 존재에 대해 직감했을 겁니다. 동네 엄마들은 누구네 아들이 용케 들어갔는데 평소 성적을 보니 수상하다는 둥 수군댔을 테고, 그들이 만들어낸 음모론에 언급된 아이들의 수는 실제 영훈중에 위법하게 입학한 수보다 훨씬 많았을 겁니다. 학교 측에 전권이 위임된 상황에서 모든 것이 불투명하기에, 카더라 카더라는 불어나기만 할 뿐 검증되지 못했을 테고, 그렇기에 부패한 사학재단은 부모들의 염려와 불안을 악용해 손쉽게 거액을 얻어냈을 겁니다.

3.  검찰의 수사결과 발표에서 크게 다뤄지진 않았지만, 가장 아픈 부분은 사회적배려대상자 전형지원 성적조작, 그 중에서도 합격이 되기에 충분한 성적을 받아놓고도 아동보호시설 운영 초등학교 출신이라는 이유로 떨어진 5명일 겁니다. 


** 최종원 북부지검 차장검사/수사결과 브리핑 中

"사회적배려대상자 전형지원자 총 28명의 성적 조작을 확인하였습니다...(중략) 이 가운데 아동보호시설운영초등학교 출신 지원자 5명을 불합격시키기 위하여 주관적 점수를 조작하여 해당 학생들을 탈락시킨 사실을 확인하였습니다...(중략) 사회적 배려자 제도는 국제중학교 등이 신설됨과 동시에 소외계층에 대하여 교육 기회의 균등을 보장하기 위한 제도입니다. 그러나 영훈국제중은 한부모가정자녀전형 등에 지원한 일부 부유층 및 영훈초 출신을 합격시키기 위하여 아동보호시설운영초등학교 출신자를 불합격시키고 영훈초 출신들을 성적조작하여 합격시키는 등 사배자 제도의 원 취지를 악용하였음이 확인되었습니다."

합격될 성적임에도 떨어졌던 5명이 누군지 우린 알 수 없습니다. 아마 본인들도 스스로 성적 잘 받아놓고 떨어진 줄 모르고 있을 겁니다. 이번 사건의 극악성이 드러나는 대목입니다. 그 아이들은 저처럼 방앗간 들려 떡 사들고 와 줄 엄마도 없었고, 그래서 그 친구들에게 너무 미안합니다. 그 친구 중 한 명이라도 자신이 5명 중 1명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전해듣거나 눈치챘을까 봐 두렵습니다. 그 친구에게 세상이 조금씩 나아지고 있으니 딴 생각 말고 지금까지 했듯이 공부 열심히 하라고 말해줘야 하는데, 그게 거짓말이 될까 봐 주저됩니다.

이번 영훈중 사건이 특정 유명인 연루에 촛점이 맞춰지고 있을 때, 진짜 아픈 피해자들을 외면하고 있었던 건 아닌지 생각해 봅니다. 그나마 저희 뉴스엔 불합격한 보호시설 아동 5명에 대한 언급이 있었는데, 그마저도 너무 짧게 언급된 거라 아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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