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취재파일] 최연소 사형수의 출소와 희망 이야기

27년 만에 찾아온 제 2의 인생

[취재파일] 최연소 사형수의 출소와 희망 이야기
 미국에서 사형폐지론의 아이콘인 여자 사형수 44살 폴라 쿠퍼가 그제(17일) 인디애나주 록빌 교도소에서 출소했습니다. 그녀는 16살 때 마리화나를 피우고 술을 마신 상태에서 흉기로 70대 할머니를 살해한 뒤 단돈 10달러를 훔쳤습니다. 피해자는 당시 78살의 루스 펠케 할머니로 교회에서 성경을 가르치는 일을 했는데, 쿠퍼와 다른 친구 3명이 함께 성경을 배우러 왔다고 속이고 집에 들어가 끔찍한 살인, 절도 사건을 벌인 겁니다.

 이듬해인 1986년 사형을 선고받은 그녀는 미국 역사상 최연소 여자사형수가 됐습니다. 하지만 너무 어린 나이의 소녀를 전기의자에 앉혀 사형을 시키는 것에 대한 반대 여론이 일기 시작했습니다. 무려 200만 명이 인디애나주 대법원에 청원을 넣었고,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주지사에게 연락해 감형을 호소하기도 했습니다. 요지부동이던 법원을 움직인 건 다름 아닌 피해자의 손자 빌 펠케였습니다. 빌 역시 다른 유족들처럼 처형을 원했지만 정작 그녀가 사형을 선고받자 구명 운동에 발벗고 나섰습니다.

최연소 사형수 출소
 할머니를 여읜 뒤 분노로 가득찼던 그가 구명운동에 나선 이유는 뭘까요? 그는 "할머니의 삶과 선행을 생각해보니 그녀를 돕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고 말했습니다. CNN과 인터뷰에서 그는 "생전에 교회에서 성경을 가르치던 할머니가 살아 계셨다면 가해자를 용서하고 사랑했을 거란 확신이 들었다"고 털어놨습니다. 특히 그는 용서하는 과정을 통해 마음을 치유하는 힘(Healing power of forgiveness)에 대한 중요한 교훈을 얻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2백만 명이 넘는 청원에 피해자 유족까지 구명 운동에 나서면서 그녀의 형은 사형에서 징역 60년형으로 감형됐습니다. 피해자 손자인 빌 펠케는 그때부터 '가해자를 용서하는 살인 피해자 유족회'라는 시민단체를 조직해, 매년 가을 '희망 여행'(Journey of Hope)이란 행사을 열기 시작했습니다. 가해자와 피해자 가족들이 한 데 모여 함께 먹고 자면서 상처를 보듬는 자리였습니다. 

그는 가해자인 쿠퍼를 용서하는 일에서 더 나아가 할머니의 믿음과 사랑을 세상에 널리 전하는 일을 하기 시작한 겁니다. 그가 만든 살인 피해자 유족회는 사형제를 유지하는 주에서 사형폐지 운동도 벌이기도 했습니다. 이 단체의 대표로 있는 빌 펠케는 지난 2003년 쿠퍼를 용서한 이야기를 담은 '희망 여행'이란 책도 펴냈습니다.

 어린 나이에 끔찍한 일을 저지르고 감옥생활을 해온 그녀는 어땠을까요? 이런 구명 운동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처음에는 교도소에 적응하지 못해 23차례나 말썽을 일으켰습니다. 사건 초기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순순히 모든 것을 자백을 했지만, 교도소에서 60년을 갇혀 지내야 하는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겁니다. 피해자의 손자 빌이 면회를 신청했지만 이에 응하지도 않았습니다. 가해자와 피해자의 손자가 만나기까지 결국 8년이란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쿠퍼는 용서의 손길을 내미는 빌에게 점차 마음의 문을 열었고 지금은 매주 이메일을 주고 받을 정도로 친한 사이가 됐습니다.
최연소 사형수 출소

 최연소 사형수였던 그녀는 교도소에서 초기 부적응 기간을 거친 뒤 교회에 다니면서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교정 프로그램에도 적극 참여했고, 지난 2001년에는 교육학으로 학사학위까지 취득했습니다. 그러는 사이 그녀는 온화한 표정의 사람으로 거듭났습니다.

교정 프로그램에 적극 참여하면서 변화의 가능성을 확인한 교정 당국은 결국 그녀를 27년 만에 출소시키기로 결정했습니다. 피해자 유족의 용서로 제2의 인생을 살게 된 그녀는 출소 직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어렵사리 갖게 된 두번째 삶의 기회를 절대 놓치지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  
최연소 사형수 출소
 "여러분들은 교도소가 어떤 곳인지 모를겁니다.교도소는 모든 걸 빼앗습니다. 저는 밖에 나가면 무슨 일이든 열심히 해서 제 2의 인생이란 기회를 준 것에 보답하고 싶어요.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에게 기회를 줬다는 말을 듣고 싶습니다." <폴라 쿠퍼(44), 인디애나주 록빌 교도소 출소 직전 인터뷰>

 결코 쉽지 않은 '용서'에서 시작된 최연소 사형수의 출소 이야기가 피해자 손자가 펴낸 책 제목처럼 '희망 여행'(Journey of Hope)으로 끝나길 바랍니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