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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작은소참진드기, 신물질 연구 대상이라고?"

[취재파일] "작은소참진드기, 신물질 연구 대상이라고?"
서울 서대문구에 있는 연세대 의과대학 신관 건물을 찾았습니다. 전문가 인터뷰가 예정된 신관 2층 사무실에 들어갔더니, 그리 넓지 않은 공간의 사육실이라는 곳이 있었습니다. 뭘 기르나 싶었는데... 바퀴벌레, 진드기, 벼룩, 모기가 가득했습니다. 그것도 국가가 지정해 이런 동물들을 사육한다는 이 곳. 의용절지동물 소재은행이었습니다.

생소한 용어인 의용절지동물이란 뭘까요? 학창 시절에 배운 절지동물이라함은 몸이 딱딱한 외골격으로 쌓여 있고, 몸, 다리에 마디로 구분되는 동물이라고 배운 기억이 납니다. 의용절지동물도 그런 절지동물류일 것으로 보이는데, 이런 절지동물 중에도 모기, 진드기, 바퀴벌레 등  직간접적으로 인간의 건강에 해를 끼치는 것들이라고 합니다. 이런 의용절지동물을 자체적으로 채집, 사육하거나 외부기관으로부터 받아서 필요한 연구에 제공하는 역할을 하는 곳이라는 거죠. 주로 기초의학과 생명과학 연구에 많이 쓰인다고 합니다.

작은소참진드기에 의해 퍼지는 SFTS 취재 과정에서 의용절지동물 소재은행 박사님들께 많은 조언을 받았습니다. 특히 1991년부터 각종 진드기 연구를 계속해오셨던 이인용 박사님께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 현장21 '가깝고도 낯선 공포'편 제작에 많은 도움을 주셨는데요, 취재 도중 이 박사님으로부터 작은소참드기와 관련한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그 내용을 간단히 소개할까 합니다.

작은소참진드기에 물렸던 사람들의 증언을 들어보면, 대체로 본인이 언제, 어떻게 물렸는지 잘 모른다는 겁니다. 그건 진드기에 물렸던 당시 별다른 고통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하는데요. 진드기 입장에선 생존에 필요한 흡혈을 위해 최적의 몸구조를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진드기는 발바닥 밑이 스폰지 형태의 발판을 갖고 있다고 합니다. 일종의 큐션 역할을 한다는 거죠. 그래서 흡혈 대상 숙주에 기어오르더라도 간질간질한 느낌을 최소화할 수 있습니다.

그런 다음 흡혈 위치를 잡으면 주둥이를 그냥 찌르는 게 아니라 먼저 갈고리 모양의 턱부분으로 흡혈 위치를 일(一)자로 찢는다고 합니다. 그리고 나서 돌기가 있는 구하체를 찢긴 상처 속으로 박아넣는다고 합니다. 이렇게 구하체를 박으면 우둘투둘한 돌기 때문에 진드기를 피부에서 떼어내기가 쉽지 않다고 합니다.
살인진드기_500

놀라운 사실은 그 다음입니다. 진드기가 구하체를 깊이 박은 상처에 마취제를 투입한다고 합니다. 자체적으로 생성한 마취제를 투입해 숙주가 흡혈 과정에서 느끼는 고통을 못 느끼게 한다는 거죠. 농촌에서 소를 키우시는 분들은 진드기가 잔뜩 붙은 소가 그대로 쓰러지는 걸 목격한 분도 계실텐데요. 물론 흡혈로 인한 빈혈도 그 원인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다수의 진드기에서 대량(?)으로 살포된 마취제의 영향으로 볼 수 있다고 합니다.

학계에서 주목하고 있는 연구 대상은 바로 이 진드기가 뿜어내는 마취제라고 합니다. 절지동물이 스스로 만들어내는 마취제가 신물질 연구 대상으로 가치가 있다는 겁니다.

작은소참진드기와 관련한 연구 대상은 여기에 그치지 않습니다.

보통 참진드기는 봄철에 알에서 부화해 유충이 되면 흡혈을 충분히 해서 자충이 됩니다. 그런 다음 성충이 되기 위해 또 다시 흡혈이 필요하구요. 성충이 되어 겨울을 나고 봄에 알을 낳는 과정에서는 또 다시 다량의 흡혈이 필요합니다. 이렇게 보통 2번 정도의 싸이클을 보내며 생을 마친다고 합니다.

그런데 진드기 입장에서 문제는 충분한 흡혈을 하는 것이 생각만큼 쉽지 않다는 거죠. 인간이나 진드기나 먹고 사는 문제가 쉽지 않은 건 마찬가지라는 겁니다. 이동성이 적은 소나 말, 돼지를 기르는 축사 주변에 진드기들이 많은 이유도 바로 흡혈을 안정적으로 할 수 있는 공간이기 때문입니다.

풀숲에서 생활하는 진드기는 흡혈 숙주를 찾기가 쉽지 않을 겁니다. 숙주 대상으로 지목되는 대상은 야생노루, 오소리, 토끼, 쥐나 개, 고양이 종류라고 합니다. 하지만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활동력 왕성한 이들 숙주에 진드기가 안착하기란 쉽지 않겠죠.

그렇기 때문에 진드기는 흡혈 대상 숙주에 달라붙을 때까지 기다리고, 또 기다립니다. 마냥 기다리는 동안엔 아무 것도 먹지 않습니다. 오직 흡혈만하는 동물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태에서 진드기는 야생에서는 3개월, 실험실에서는 최대 6개월을 버틴다고 합니다. 수분만 섭취한 상태로 최장 6개월까지 살 수 있다는 말입니다. 학계에선 이 대단한 단식력(?)도 진드기를 상대로 한 연구 대상이라고 합니다.

지금 상황에선 작은소참진드기는 사람을 해친 공포의 대상입니다. 말 그대로 해충입니다. 하지만 생태계에서 사는 생물들은 나름대로 존재 의의를 갖고 있게 마련입니다. 사실 작은소참진드기는 조류나 다른 곤충의 먹이 역할을 하며 생태계 먹이사슬을 구성합니다. 더욱이 위에서 언급했듯이 인간의 생활에도 이로움을 줄 수 있는 날도 언젠가 올 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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