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취재파일] 앓아 봐야 아는 선거 '공천병'

[취재파일] 앓아 봐야 아는 선거 '공천병'
국회의원이나 지방자치단체장을 뽑는 선거가 있을 때마다 정치권은 공천문제로 홍역을 앓습니다.  정당이 공직자선거에 내보낼 자당 후보를 추천하는 것이 '공직자후보추천' 즉 '공천'이죠.

특히 어떤 지역에서는 특정 당의 공천을 받은 후보라는 이유만으로도 당선이 확실시되기도 하니, 정당공천을 둘러싼 치열한 경쟁이 벌어집니다. 정당은 당 대표나 사무총장 등 당 안에서도 권력이 집중돼 있는 사람이 마음대로 하는 공천이 아니라는 걸 강조하기 위해 공천심사위원회를 꾸리고, 여기에 교수와 각종 전문가 등 외부인사를 채워 넣기도 합니다.

그러나 공천에서 떨어진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의 경쟁력이 공정하게 평가받아 나온 결과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권력자의 입김에 의해서 뒷거래에 의해서 자신이 떨어졌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공천심사의 틀을 공정하게 만들고 외부 심사위원을 수혈해도 공천 결과가 당내 알력다툼의 영향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다는 것이죠.

선거 때 마다 반복되는 이 갈등을 끝내자고, 한 의원이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발의했습니다.
내용은, 모든 공직선거 공천은 지역별 경선을 통해 결정하자는 겁니다. 당은 후보들을 두 명이상으로 선정한 뒤에 지역별로 당 후보를 뽑는 사전선거를 통해 당선된 사람만 정당 후보로 출마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겁니다. 그리고 경선관리는 각 시도당위원회에 맡겨서, 중앙당이 좌지우지 하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새누리 새누리당 김
중앙당의 입김을 최소화하자는 건데, 이 법안을 발의한 국회의원들의 면면이 눈에 띕니다.
우선 대표 발의한 사람은 새누리당의 김재원 의원입니다.  그리고 공동발의자로 7선의 정몽준 의원, 6선의 이인제 의원, 5선의 남경필, 정의화, 김무성 의원, 4선의 이주영 의원과 송광호 의원 등 24명이 나섰습니다.

지난 2008년 18대 국회의원 선거 때는 당시 한나라당에서 2007년 12월 대선 후보를 정하는 당내 경선의 후유증으로 '친박 학살'이라는 말이 정치권에 회자됐습니다. 김재원 의원은 17대 국회에 입성한 초선의원으로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이명박 캠프에 맞선 박근혜 캠프에서 전략통으로 힘을 보탰습니다. 김 의원은 낙선을 통보 받은 뒤 당사 기자실에서 간단한 기자회견을 했습니다.

2008년 3월 김재원 의원은 "보복공천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뭐 보복 당할 일은 없다고 보고요, 도덕적인 흠결이나 지역 관리의 문제도 아니라고 보고요" "제가 여당을 한 십여일 했죠? 정치인이 나라에 기여하는 일은 꼭 권력을 누리는..(눈시울 붉어져 말을 잇지 못함) 그런 일 뿐만 아니고 권력이 잘 가도록 그렇게 도와주는 여러가지 길이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지난 2008년 3월 14일에 집중됐던 친박계 의원들의 인터뷰를 다시 봤더니, 야당에서 여당으로 당이 정권을 잡게 되자 마자, 공천에서 떨어져 꿈꿔왔던 정치적인 역할, 국회의원으로서 역할을 하나도 못 하는 상황이 됐다는 것에 상당한 상실감과 자신은 내려놓고 '여당호'에 타게 된 동료들에 대해 배신감을 느끼는 것 같았습니다.

김무성
김무성 의원도 당시 낙천됐는데, 기자회견 내용을 보면 이렇습니다.
"10년 동안 고생고생하며 한나라당을 지켜온 아무 하자 없는 우리 동지들이 낙천했습니다."  "제가 그동안 사랑하고 헌신했던 한나라당이 여기까지 온 데 대해서 비통한 심정을 금치 못하겠습니다." "이런 무원칙한 공천을 일삼는 세력이 한나라당을 망치는 것을 더이상 두고 볼 수 없기에..."

김무성 의원은 울분을 삼키며 긴 탈당 기자회견문을 낭독했습니다.  그리고 무소속으로 자신의 지역구에 출마해 당선됐습니다. 김무성 의원은 5선의 고지에 올랐지만 이번 19대 국회 입성도 순탄치는 않았습니다. 새누리당으로 바뀐 뒤에 당 공천심사위원회는 여론조사 기법으로 경쟁력 순위를 매겨서 일명 '물갈이 공천'에 주력하게 되는데, 공천심사 초기 김무성 의원이 물갈이 대상에 포함될 가능성이 높다는 소문이 당내에 돌았습니다. 김무성 의원은 이내 '총선 불출마, 백의종군'을 선언합니다. 총선을 지나 대선까지 1년정도 야인생활을 한 뒤 지난 4월 재보선에서 부산 영도로 지역구를 옮겨서 19대국회 입성에 성공합니다.

김재원, 김무성, 두 의원 모두 '공천 마음 고생'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울 분들입니다. 국회 부의장까지 지낸 정의화 의원도 19대 총선에서 공천 때문에 속앓이를 했었습니다. 중앙당에서 자신의 지역구를 '물갈이' 대상에 넣었다는 소문이 파다했고, 이를 알고 자신의 지역구에서 새로 출마해 보려는 후보자들의 움직임이 감지됐었습니다.

공천 때 마다 속앓이를 하는 것은 대부분 국회의원들이 겪는 일이지만, 이번 공직선거법 개정안에 공동발의한 의원들 중에 4선 이상의 굵직한 정치인들이 많은 것을 보면 겪는 횟수에 비례해 중앙당의 공천권에 대한 문제점 인식이 큰 가 봅니다.

대표발의한 김재원 의원은 중진 의원들의 대거 동참에 대해 "초선 의원들은 이 법이 왜 필요한지 잘 못느끼는 것이 사실입니다. 정치권에서 오래 있을 수록, 정말 이 거는 고쳐야 겠다고 느끼는 거죠" 라고 말했습니다.

지난 19대 총선 전에도 '국민경선제 도입' 문제가 화두가 됐었습니다. 정당이 기득권을 내려놓는 차원에서 공천권을 국민들에게 돌려주겠다는 거였습니다. 그러나 경선을 하면 오히려 지역에서는 정치신인들에게 불리해지고 결국 조직이 있고 인지도가 높은 현역 의원들이 재공천을 받을 것이라는 논리에 밀려 경선은 일부 지역에서만 시행됐습니다. 또 공천이라는 권한을 내어줄 마음도 당 지도부에는 별로 없었습니다. 경선은 중앙당이 최종 결정을 하기 곤란한 지역에서 면피용으로 치러진다는 느낌이었습니다.

국회의원들을 보면, 현실적으로 그들을 속박하는 가장 큰 것이 '공천'인 것 같습니다. 특히 한번 누군가의 입김으로 공천을 받고 나면, 의정 생활을 하는 4년동안 소위 그 '계'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정치적 현안이나 심지어 정책 현안에서도 '계'의 입장을 표출합니다. 그러다보니 의원 개개인의 소신을 발휘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정치개혁을 위해서, 말 많고 탈도 많았던 '정당 공천' 개혁이 이번에는 이뤄질 수 있을까요? 혹자는 주요 선거 공천권을 어차피 갖지 못하는 현재 여야 대표가 공천 개혁 실천의 적임자라고들 하던데 말이죠.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