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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굿바이 퍼기" 퍼거슨 감독의 위대한 퇴장

퍼거슨 감독 고별 홈경기 관전기

[데스크칼럼] "굿바이 퍼기" 퍼거슨 감독의 위대한 퇴장
 오늘(13일) 새벽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홈구장인 ‘올드트래포드’에서 열린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37라운드 맨유 대 스완지시티 경기는 퍼거슨 감독의 홈경기 고별전이자 맨유의 이번 시즌 EPL 우승을 확정짓는 의미있는 경기였습니다. 위대한 감독의 위대한 은퇴식도 벌어져 축구팬들의 감동을 자아냈죠.

‘올드트래포드’는 경기 시작전부터 구장을 가득 메운 7만여 관중들의 함성과 ‘2013 챔피언’이라 쓰여진 붉은 깃발들로 뒤덮였습니다. 곳곳에는 “좋은 추억을 남겨준 퍼기를 기억하며”“불가능한 꿈을 가능하게 해준 퍼거슨감독에게 감사를”등의 내용이 적힌 플래카드가 걸렸습니다. 그라운드 입구에 맨유와 스완지시티 선수들이 양쪽에 도열해 서서 예의를 갖추고 그 한가운데로 퍼거슨 감독이 입장하면서 분위기는 절정을 이뤘습니다. 다소 상기된듯 밝은 표정과 여전히 껌을 씹는 모습 그리고 쌀쌀한 날이면 어김없이 입고 나오는 지퍼가 목까지 올라오는 외투차림도 한결같았습니다. 맨유 측 벤치로 몰려든 팬들에게 다가가 일일이 사인하는 모습도 여유로웠습니다.
[ESPN] 멘유
마지막 홈경기가 벌어지는 90분동안 화면에 비친 퍼거슨 감독의 모습은 평소 때와 큰 차이가 없었습니다. 38분 치차리토의 첫 골과 86분 리오 퍼디낸드의 결승골이 터졌을때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일어나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환호하는 어린아이같은 모습이나 48분 스완지시티 미추에게 실점했을때 인상이 구겨지며 껌씹는 속도가 빨라진 점도 여느 경기때와 똑같았습니다. 저 모습도 이젠 마지막 보는구나 싶어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맨유 선수들은 퍼거슨 감독이 지켜보는 마지막 홈경기를 승리로 장식하겠다는 생각였는지 최선을 다한 경기로 결국 2-1 승리를 감독에게 안겨주어 떠나는 노(老)감독을 기쁘게 했습니다. 오늘 경기는 더구나 지난 93년 맨유 선수로 데뷔한 폴 스콜스의 은퇴경기이기도 해서 더욱 뜻깊었습니다.

우리 나이로 불혹의 나이가 된 폴 스콜스는 지난 20년간 총 717경기에 출전해 155골을 기록한 퍼거슨 감독의 애제자 중 한명이죠. 서른살만 넘어도 전성기가 지났다는 평가를 받는 축구계에서 마흔까지 뛰기가,그것도 오로지 한 팀에서만 뛰다가 은퇴하기가 어디 쉬운 일입니까? 축구와 가정이외에는 아무데도 관심이 없다는 폴 스콜스는 특유의 덤덤한 표정으로 마지막 경기를 마쳤습니다.
퍼거슨 연합 500
경기가 끝난 뒤 퍼거슨 감독의 고별 연설과 2012-2013 시즌 맨유의 EPL 우승 세레모니가 이어졌죠. 그라운드 중앙에 서서 마이크를 잡은 퍼거슨 감독은 관중들의 환호속에 감격적인 고별사를 남겼습니다. “승리의 순간뿐만 아니라 쓰라린 패배들도 위대한 맨유의 일부였음을 기억하겠다”며 구단과 스탭, 선수와 팬들에게 골고루 고마운 마음을 전했습니다. 특히 “이제는 새 매니저에게 힘을 실어주는게 아주 중요한 일”이라며 자신의 후임으로 맨유를 이끌 데이비드 모예스 감독에 대한 지지를 호소했습니다. 고별사를 마친뒤 그라운드를 천천히 돌며 기립박수를 보내는 팬들의 성원에 손을 흔들어 답했고 맨유 선수들과 일일이 포옹했습니다. 맨유의 리그 20번째 우승이자 자신의 13번째 리그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리며 마지막 감격의 순간을 즐겼습니다. 맨유가 우승하는 가장 극적이고 환희의 순간에 은퇴하는 퍼거슨 감독에게 팬들은 눈물보다는 밝은 미소와 박수를 선사했습니다.

퍼거슨 감독이 고별사에서 “안 좋았던 기억도 있었다”고 상기한 순간, 오늘 경기명단에서 제외돼 관중석 ‘스카이박스’에서 관전하던 웨인 루니의 모습이 화면에 비쳤습니다. 루니의 이적요청에 따라 명단에서 제외됐다곤 하지만 지난 십년동안 퍼거슨 감독의 애제자이자 팀의 기둥 루니가 마지막 경기에서 제외된 것은 안타까웠습니다. 더구나 후임감독 데이비드 모예스와의 불화로 맨유를 떠나고자 하는 루니의 심경은 착잡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퍼거슨 - ESPN
퍼거슨 감독은 은퇴이유와 관련해 “지난해 말 처형의 사망을 계기로 가장 친한 친구를 잃은 아내와 시간을 함께 보내기 위해서“라고 말했죠. 또 지난 27년간 계속된 승부에 따른 엄청난 압박과 부담으로부터 벗어나고 싶다고도 주변의 지인들에게 털어놓았습니다. 그의 나이나 경력으로 볼때 리그우승이라는 기록을 이룬 지금이 퇴장할 가장 좋은 시점이라고 마음먹을 법합니다. 명문클럽 감독으로 영국축구사에 전무후무한 금자탑을 쌓은 그를 상원의원으로 추대하자는 움직임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지난 99년에 받은 경(卿,sir) 칭호에 이어 아예 귀족원에 해당하는 상원으로 모시자는 주장이죠. 그가 상원의원이 될지 여부는 좀더 지켜볼일이지만 그는 이제 맨유의 친선 ,홍보대사로 나서 승부스트레스에서 벗어나 실컷 즐기기만 한다니 얼마나 멋있습니까? 이제 그는 충분히 즐길만한 자격이 있지않습니까?

퍼거슨 감독은 그동안 맨유를 거쳐간 많은 스타 선수들이 사고(?)를 칠때마다 “팀보다 위대한 선수는 없다”며 선수들의 기강을 잡고 팀분위기를 다졌습니다. 그의 말대로라면 팀보다 위대한 감독도 있을수 없는거죠. 위대한 선수와 감독 모두 언젠간 사라지지만 맨유라는 클럽은 여전히 남을테고, 축구라는 스포츠가 지금처럼 지구촌 전역에서 맹위를 떨치는한 명문클럽들은 축구팬들의 사랑을 받을 겁니다.

스코틀랜드 부두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나 B급 선수를 전전하다,40대 이후에 축구감독으로 대기만성해 축구인으로 누릴수 있는 모든 영예를 누리고 은퇴하는 퍼거슨 감독. 손자뻘의 선수들과 한데 뒤엉켜 우승기념 샴페인 세례를 받고 손수건을 꺼내 천천히 안경을 닦는 그의 환한 미소를 전세계 축구팬들은 오래도록 기억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굿바이 퍼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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