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형의 사소하게] 경계인으로 살아가기

이주형 기자 joolee@sbs.co.kr

작성 2013.05.02 11:38 수정 2017.02.08 16:16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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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과 직업 사이를 오가는 위태로운 줄타기가 그 뒤로도 있었다. 동물원의 음악 전반에 한 곳으로 들어서지 못하는 '경계인의 정서'가 있다" (박기영, 동물원, 경향신문 인터뷰)

고등학교 1학년 때인가, 어느 과목이었는지 기억나지 않는 한 수업시간에 지금도 -서글서글 잘 생기고 반곱슬머리를 한- 얼굴이 또렷이 기억나는 같은 반 아이 하나가 후줄근한 진회색 점퍼를 입고 나와 '거리에서'를 불렀다. 처음 듣는 노래였는데, 이내 그 친구 얼굴은 내 머릿 속에서 사라지고 나는 노래 속으로 빨려들어갔다.

"포크계에는 노찾사나 정태춘,안치환과 같이 포크 정신에 충만한 흐름, 시인과 촌장처럼 포크에 탐미적인 예술로 끌고 가려는 흐름 등 두 갈래가 있었는데, 동물원은 '운동'과 '예술'도 아닌 다른 제3부류였다... 처절한 시대, 한쪽으로 서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던 사람들, 그리고 소심하고 자기 확신이 없던 사람들에게 동물원은 평범한 위로의 언어로 다가섰다" (박기영)

'거리에서'는 가요사에 남을만한 걸출한 보컬리스트 김광석이 부른 노래로 누가 들어도 잘 부른 노래였다. 하지만 옆자리 짝지의 노래잘하는 대학생 형이 부른 것 같은 '변해가네', '말하지 못한 내 사랑', '별빛 가득한 밤에'같은 노래 역시 가요톱텐이나 듣던 한 고등학생의 감성을 휘저어놓기에 충분한 노래였다.

김광석, 김창기, 박기영, 유준열, 박경찬, 이성우, 최형우. 동물원의 7인이다. 김광석은 내가 기자 생활을 막 시작할  무렵 세상을 떴고, 김창기는 소아정신과 의사, 박경찬은 LG전자 연구원이다. 동물원에 남은 유준열(신한과학옵틱스 대표), 박기영(홍대 공연예술대학원 교수), 배영길(시나리오 작가 겸 음악프로듀서)은 경계인으로 살아왔고 지금도 경계인이다. 다만 그들도 이제 오십줄인만큼 그 경계가 예전같진 않을 것이다.

기자도 경계인으로 산다. 현장을 누비되 현장 사람이 아니고 현장 사람도 아니면서 현장 사람인 것처럼 지낸다. 그 어디에도 확 끼지 못하는 경계인이라는 동지의식이 기자들을 그 어떤 집단보다 집단 의식이 강한 집단으로 만들어놓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도 옛말, 지금은 현장과 지나치게 유착하거나 아니면 현장과 동떨어진 메신저에 지나지 않는 기자들이 과거보다 늘었다는 얘기가 자주 들린다. 경계에서 위태롭게 흔들리면서도 중심을 잡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존재가 아니라 한쪽에 안정적으로 연착륙하면서 밥벌이를 해나가는 존재가 된 것인가.

편집부에 온 지 다섯달 째에 접어든다. 보도국 편집부 기자는 보도국 내에서도 경계인으로 산다. 기자도 아니고 프로듀서도 아닌 우리는 시청자와 기자 사이에 선 경계인이다. 우리는 그 사이에서 위태롭게 흔들린다.

동물원이 25주년을 맞아 '봄,종로에서'(16~26일, 반쥴)란 공연을 한다. 신곡도 3곡 발표하는데 ''햇살1g','안구건조증' 등이 그 제목이다. 최소한 나쁜 짓은 하지 않을 것 같은 사람들이 부르는 노래일 것 같은 제목들이다. 동물원이 평범하고 착하게 살아가는 소시민들에게 위안을 줘왔듯 최소한 이 사회에 해악을 끼치지 않는 저널리스트로 살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