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취재파일] 이 곳은 어디일까요

-1948년 촬영된 연평도 해안-

[취재파일] 이 곳은 어디일까요
  이곳은 어딜까요. 각지에서 몰려든 어선들이 즐비하고, 물동이를 이고 걸어가는 아낙들 옆으로 하얗게 조기 더미가 쌓여있습니다. 저 멀리에 모여 앉아 조기를 손질하는 아낙들의 모습도 보입니다. 한 눈에도, 분주하게 돌아가는 어항의 활력이 느껴지죠. 바로 1948년에 촬영된 연평도 해안의 모습입니다.

  지난 2월 북한의 3차 핵실험 강행 이후 대북 긴장상황이 계속되고 있죠. 유엔안보리의 고강도 제재안 채택 등 국제사회의 압박에 불바다 운운하는 북측의 ‘군사대응’ 위협이 이어지더니, 이젠 10년 공든 탑 개성공단으로 갈등의 초점이 옮겨갔습니다. 무슨 ‘대북 긴장 국면의 단계별 매뉴얼’인 양 반복되는 이 상황들에 정작 우리는 다소 무뎌지기도 합니다. 개개인이 대응할 수 없는 상존하는 위협에 대해 늘 안테나를 곤두세운다는 게, 사실 못 할 짓이기도 하고요. 기자로서 일하고 있지만 북한 관련 취재 경험이 많지 않은 저도 얼마 전까진, 솔직히 어느 정도는 ‘불구경’하는 자세로 북한 관련 뉴스들을 접해왔던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제 험악한 북한 소식을 듣게 되면, 저는 얼마 전부터 이 사진이 떠오르곤 합니다.

  이 사진은 제가 지난달 초 연평도 출장에서 묵었던 민박집 거실에 걸려있었습니다. 유엔의 대북제재 결의안 채택을 전후해 북한이 연일 도발 위협에 나서기 시작하고 한미 키 리졸브 훈련개시일이 다가오면서, 저는 연평도 출장길에 올라 닷새간 그곳에서 지냈습니다. 갑작스러운 출장이라 미처 준비를 하지 못하고 연평도의 항구 대연평항에 도착해 이곳저곳 전화를 돌려본 끝에 어렵게 구한 이 민박집의 주인 부부가 다행히 취재에도 많은 도움을 주셨습니다. 한국전쟁 발발 2년 전인 1948년은 연평도에서 평생을 살아오신 민박집 사장님이 8살 땝니다. 어르신은 그 시절에 대해 “조기가 많이 잡히다 보니 조기철에는 전국의 어선들이 모였다. 뱃사람들로 늘 붐벼 가게도 참 많았다”고 회상하셨습니다. 지금의 연평도에서 상상하기 힘든 평화로운 활기와 느긋한 사람 냄새가 물씬 묻어나는 이 사진에서, 더 이상의 설명 없이도 저 역시 그 시절의 공기를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의 연평도는 사실 가본 사람은 많지 않은 섬이지만, 전국민이 그 이름을 모두 들어본 곳이죠. 이런저런 단편적인 이미지들이 중첩돼 있는 섬. 뭐가 있을까요. 최전방, NLL, 3년전(2010년 11월) 포탄이 떨어진 곳… 꽃게? 한 마디로, 북한과의 갈등이 고조될 때마다 단골처럼 등장하는 이름이란 이미지. 거기까지입니다. 그러나 막상 연평도에 머물렀던 닷새 동안 제가 가장 깊게 깨달은 것은 ‘포격’ 이라는 단어만으로는 포격을 겪어보지 않은 우리가 포격을 ‘이해’할 수 없고 ‘느낄’ 수 없다는 사실이었습니다.

  평범한 11월의 어느 오후, 하늘에서 갑작스럽게 죽음이 떨어진 겁니다. 뱃속부터 뒤집어대는 것 같은 굉음이 연신 들려와 밖으로 나가보니, 사방에서 불기둥이 치솟고 있더랍니다. 포탄과 부서진 가옥의 파편이 날아와 담이 무너지고 지붕이 날아가고 전기가 끊기고… 제가 만난 어르신 중 한 분은 “어디로 가야 할 지 몰라 갈팡질팡하다가 당황한 나머지 위험천만 집으로 다시 들어가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워있었다. 누가 데리러 오지 않았으면 큰일날 뻔”했다고 회상하셨습니다.
 
  그나마 이런 ‘후일담’은 그래도 무사히 그 날을 넘긴 주민들로부터 들은 얘깁니다. 그날, 해병대원 2명과 민간인 2명이 숨졌고 20명이 크고 작은 부상을 입었습니다. 숨진 해병대원 중 1명은 저와 함께 연평도 출장에 나섰던 SBS 취재팀 오디오맨의 사촌동생이었습니다. 그에게 연평도는 “이름도 비슷하고 얼굴도 닮은, 형제처럼 함께 자란 사촌이 죽었다는 말에 정신 없이 처음으로 와봤던 섬”입니다. 그 친구가 올해 스물 다섯, 3년전 연평도에서 사망한 그의 동생은 영원히 스물입니다.

  ‘그때 나는 뭘 봤는지, 무슨 생각을 했는지’ 들려줄 수 없는 포격의 희생자는 다른 스무살 해병대원일 수도 있었고, 당황해서 집으로 다시 들어가 이불을 뒤집어써버렸다는 어르신일 수도 있었죠. 청천벽력 같은 연락을 받은 가족은 우리 취재진 오디오맨이 아닌 다른 사람이 될 수도 있었습니다. ‘우리 중 누구나’일 수 있었던 겁니다. 그리고 포격이란, 그런 끔찍한 순간의 기억과 그 뒤의 긴 무력감을 그곳에 있던 2천여 명이 모두 함께 공유하는 사건이라는 것을, 저는 이번 연평도 출장에서 처음으로 마음 깊이 깨달았습니다.

  연평도 주민들은 대북 긴장상황에서도 외부에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침착하게 일상생활에 임하고 있습니다. 북한의 ‘전술적인 위협’이 하루이틀 일도 아니고, 일일이 대응할 필요 없이 삶은 계속된다는 거지요. 그러나 연평도 주민들과 몇 마디 말을 나눠보면, 마치 약속이나 한 것처럼 한 사람도 빠짐없이 공통적으로 “(2010년 11월 포격) 그 날 이후 밤에 잠이 잘 오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늘 옷을 입고 잔다는 분도 있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그때 얻은 심장이 쿵쾅거리는 증상 때문에 여전히 고통을 겪고 있다고 호소하십니다. 이런 게 바로 집단 트라우마, 라는 것을 굳이 누구로부터 설명을 듣지 않아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민박집 사장님이 저희 취재진에게 섬 이 곳 저 곳을 소개시켜 주시다 문득 하신 말씀에 연평도 주민들의 마음이 모두 요약돼 있는 것 같습니다. “내가 여기서 70평생을 살았어. 6.25 때 피난도 가봤고 북한이 바다에 이것저것 쏜 적도 있지만, (한국전쟁 이후) 뭍을 공격할 것이라고는 한 번도 상상한 적이 없었어. 그래서 (2010년 11월 포격) 전엔 진짜 걱정을 해 본 적은 없었어. 그때 놀란 걸 생각하면… 그때 이후로 분위기가 달라진 거야. 사람들을 봐. 다들 긴장해서… 일도 손에 잡히지 않고, 불안해서 나태한 분위기가 감돌잖아. 나도 애들은 내보냈지. 그런데 나는 여기에 모든 게 다 있는데, 집이고 재산이고 일이고 다 있는데, 이 나이에 나갈 수 있나? 불안하지만, 설마 또, 하면서 이렇게 사는 거지.”      

  인천시 옹진군은 포격 당시 훼손된 일부 가옥을 그대로 보존하고 ‘안보교육장’이라고 이름 붙여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오히려, 검게 그을려 내려앉은 그 폐허와 ‘안보교육장’이란 이름이 참으로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폐허들을 모두 복구한다고 해서 어느 날 갑자기 점심상을 물리는 평화로운 오후 위로 굉음이 쏟아지고 불구덩이가 된 집에서 도망쳤던 날들을 잊을 수 있겠습니까. 반대로, 민간인 주민들이 ‘안보 태세’를 갖춘다고 해서 어느 날 문득 떨어진 미사일을 되돌릴 수 있는 게 아닌 것처럼요. 제가 폐허에서 느낀 것은 ‘안보’에 대한 경각심보다는 이런 일이 정말 우리에게 일어날 수 있구나 하는 슬픔과 두려움이었습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연평도는 우리 나라의 많은 섬들 가운데서 “잘 나갈 만한” 요건들을 두루 갖춘 섬입니다. 수도권 인천에서 고속페리로 2시간 밖에 걸리지 않는 거리에 있는데다 규모도 꽤 큰 편이죠. 지금도 꽃게 조업으로 유명한 전통의 서해 어장이기도 합니다. 누군가 부러 깎아놓은 것처럼 사람의 옆모습을 한 이 '얼굴바위'처럼, 은근히 볼 것도 많습니다. 그런데 ‘하필이면’ 이 섬 바로 위로 북방한계선이 그어지면서, 남북분단의 현실을 첨예하게 드러내는 곳, 누가 부러 나서 말하지 않아도 바람 불 때마다 느껴지는 히스테리가 고여있는 섬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미지
  연평도에서 최단 거리에 있는 북한 섬은 불과 3km밖에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북쪽이 내려다 보이는 언덕에 올라가 망원경을 통해 보면 연평도를 빙 둘러싼 북한 섬들의 부대 모습과 해안포문, 북한 군함 위에서 움직이는 병사들의 모습까지 똑똑히 볼 수 있습니다. 아 남북분단은 구호가 아니라 현실이다, 는 것을 마음 깊이 느끼게 됩니다.

  하얀 옷의 아낙들이 느긋하게 둘러앉아 하얀 조기더미를 손질하는 아름다운 해안가 풍경. 연평도가 대북 긴장이 높아질 때마다 어수선해지는 ‘최북단 그곳’이 아니라, 이때의 활기찬 어항의 이미지를 되찾을 수 있을 날은 언제일까요. 연일 들려오는 날선 소식들을 접하면서, 문득 이 풍경이 다시 한 번 떠올랐습니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